아침 출근길이었다. 늘 지나는 공원에 설치된 ‘아이를 업은 엄마’라는 동상이 왠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왜 그럴까 싶어 발길을 돌려 동상을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가 엄마와 아기에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놓은 것이었다.
엄마 마스크와 아이 마스크는 각각 성인용과 유아용 마스크로 세심한 배려를 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장난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은 참으로 친절하구나’하는 생각을 하려다가 문득 예전에 읽은 ‘공기의 연구’라는 책을 떠올렸다.
최근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 태도가 강경하게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할 때도 있지만 저들은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기 않을 때가 많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 주권을 강탈하고 36년간 강점했던 것을 포함해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 그리고 독도 영유권 문제 등에 대해 우리 국민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황당하게도 저들은 사과는커녕 황당무계한 논리로 과거를 미화하고 스스로 정당화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해 불능에 빠질 때가 많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인이 악해서 그렇다’는 말로 결론을 내리려고 하지만 일본에서 30년 이상 살아본 사람으로서 일본인이 악하다는 단순한 논리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나라 국민은 선하고 어느 나라 국민은 악하다는 것은 논리의 과도한 비약일 뿐 아니라 정확한 현실을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미운 사람들과는 상종을 안 하면 된다고 하지만 일본과 한국은 물리적으로 이웃한 나라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70만에 가까운 재일본 국민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양국관계를 재정립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저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사고 구조를 하고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일관계 회복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본 일본 지인 소개로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라는 책을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책자에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저들의 사고방식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책 내용에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있다.
저자는 일본인의 친절에 대해 흥미로운 실화를 두 가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 일화는 어느 시골 노인이 추운 겨울날 키우던 병아리가 추워 보여 안타까운 마음에 뜨거운 물을 줬는데 먹고 죄다 폐사했다는 이야기이다.
노인은 병아리가 추워 보여 따뜻한 물을 주는 선의를 베풀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노인 생각이었다. 정작 노인의 친절로 인해 병아리는 폐사해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또 하나는 구마모토 지방 어느 소도시에서 실제 벌어진 실화다. 젊은 산모가 미숙아를 출산했고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자라게 됐다. 어느 날 산모가 인큐베이터에서 자는 아기가 추울 것 같아 인큐베이터에 주머니 난로를 넣어주었다. 주머니 난로 연료에서 나온 유독가스로 아이가 사망해 산모가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됐다는 슬프고도 황당한 이야기다.
나는 두 가지 사례를 들어 일본인의 자기중심적인 친절이 낳은 부작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일본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만에 기증했다고 한다. 일본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300만회분을 구입했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일본인에게는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폐기할 뻔했는데 마침 대만이 코로나 때문에 어렵다고 하니 기증하기로 했다는 이야기이고 베트남에도 제공할 예정이라 한다.
자국에서는 안심할 수 없어 사용하지 않기로 한 백신을 소위 서로 가장 신뢰한다는 대만에 제공하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의 친절은 특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인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대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강점한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지 않지만 당시 세계정세로 볼 때 어차피 조선은 구미 열강의 식민지가 될 운영이었고 오히려 형제 나라인 일본이 합병을 했기에 피해가 적었을 것이고, 강점 기간 철도도 놓아주고 발전소도 지어주는 등 일본이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얼굴색도 바꾸지 않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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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황당한 논리는 실제 적지 않은 일본인이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편으로는 앞에 든 사례처럼 그들 나름대로는 선의로 벌어진 일 일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들의 황당무계한 논리를 우리가 이해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저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에게 언어도단이라며 무조건 목청을 높이고 윽박지른다고 해서 상황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사고방식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그들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에 반박할 논리를 개발해 대화에 임할 필요가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