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코로나 백신접종 지연으로 시끄럽다.
모 언론에서 일본은 늦어도 3월부터 백신접종을 할 수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무리 빨라도 3월이나 돼야 백신접종이 가능하다며 우리 정부에 의문의 1패를 안겨준 사안이라 그 배경이 참으로 궁금하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많은 양의 코로나 백신을 확보한 것도 사실이고 먼저 접종을 시작한다고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일본에서 접종이 늦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백신 확보도 지연되고 있다고 하니 의아하다.
8일 오후 4시 기준 한국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와 일본 후생성 홈페이지로 확인한 양국의 백신접종 수 현황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후생성은 8일 오후 4시임에도 최신정보가 5일 저녁 기준으로 돼 있고 접종자 수는 4만6천469명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8일 0시 기준으로 31만6천865명이니 일본과 비교하면 7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백신 확보문제를 보면,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백신 조달에 매달리다 보니 백신 회사가 물량공급을 좌지우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달 계약이든 납기든 백신 회사 의도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8일 아침 백신 조달 관련 일본 정부 관계자에게서 백신 조달이 늦어지는 이유를 들었다. 의외의 답변이었다. 화이자 등과 백신 공급계약을 하기는 했지만 세계적으로 백신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본은 이미 상당한 분량 백신이 제공됐는데 백신접종이 늦어져 재고가 쌓이는 상황에서 미리 공급을 해야 할 이유를 못 느낀다면서 시기를 늦추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럼 진작에 일본에 도착한 백신이 전국에 골고루 배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접종이 늦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유를 확인하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일본 후생성(한국의 보건복지부)과 지자체 간 업무 떠넘기기와 이러한 일들을 효율적으로 지원해 줄 정보시스템 부재 때문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후생성은 지난해부터 백신접종을 염두에 두고 관련 정보시스템개발에 나서 올해 들어 ‘V-SYS’라는 시스템을 론칭했다. 이 시스템은 백신을 조달해서 지자체에 넘겨주기까지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물류시스템에 가깝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접종하는지, 또 그런 통계정보를 관리하고 보고하는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행정개혁담당대신인 고노 다로씨를 책임자로 임명하고 약 3억8천만엔의 예산을 책정해 벤처기업에 개발을 의뢰해 올 4월 개통을 목표로 백신접종기록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백신접종기록시스템의 커버 범위는 다음과 같다. 지자체가 보유한 주민 전체 주민등록 데이터를 백신접종기록시스템에 CSV 데이터 등으로 넘겨주고 지자체가 백신을 접종한 후 종이로 된 접종기록대장을 데이터 입력 전문업체에 넘겨 OCR 처리를 통해 데이터화 한 후에 CSV 데이터로 만들어 백신접종기록시스템에 넘겨주면 정부는 이를 기본으로 통계 데이터를 작성해 지자체별 접종 내역을 온라인으로 국민에게 공개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일본 지자체는 기존 예방접종 관련해서도 자체 접종시스템을 보유한 곳과 없는 곳이 있다. 접종시스템이 없는 곳은 지금도 수작업으로 종이로 된 관리대장을 관리해 오고 있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의 경우는 자금까지 예방접종과 달리 전 국민이 대상이기 때문에 별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정부가 개발해서 일괄적으로 나누어 주지 않기 때문에 1천700개 지자체가 각자 예산을 들여 개별적으로 시스템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어마어마한 중복투자가 발생하고 정부 백신접종시스템과 인터페이스가 맞지 않아 온라인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지 못해 CSV 데이터 등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일본의 빗나간 디지털화를 바라보며 전자정부라는 것은 단순히 행정업무를 전산화 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경영 체계를 새롭게 바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정부 부처 간 혹은 정부와 지자체 간 역할을 전면 재조정하고 행정기관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 즉 국민중심 행정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은 아직도 국가정보화와 정보화 각 분야에서 업무 프로세스나 정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보다는 눈앞에 닥친 과제 해결에 급급한 현실이다. 디지털 패전을 극복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듯하다.
정보통신기술(ICT)에 해박한 국가지도자와 정부 기관이 국가 혁신을 위한 혁신적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 또, ICT 기업이 국가정보화 사업을 충실히 수행할 만한 기술 역량을 갖고 있어야 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줄 사용자가 삼위일체 돼야 이상적인 전자정부가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일본 상황은 참으로 어둡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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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IT담당대신으로 임명되고 정보화 지식이 짧은 관료와 소위 인력파견 같은 수주 개발만 담당해온 일본 IT 기업은 도저히 기술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에 사는 외국인의 한사람으로서 일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는 디지털청 설립과 디지털청이 추진하겠다는 혁신적인 국가정보화가 2000년 모리 요시로 총리의 ‘e-Japan 전략’ 추진 이후로 지금까지 20여 년 간 그래왔듯이 허무한 구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