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 개인정보를 나보다 더 끔찍이 관리하는 일본 국세청

전문가 칼럼입력 :2021/06/03 06:00    수정: 2021/06/03 10:01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얼마 전 일이다. 주택 구입에 은행융자가 필요해 과거 3년 치 확정신고서 사본을 발급받고자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확정신고서 사본 발행메뉴를 하루 종일 뒤졌지만 보이질 않는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관련한 서비스메뉴가 보이지 않아 국세청에 문의하니 확정신고 전자신고를 할 때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신고 했는지 아니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이용해서 했는지 묻는다.

일본은 공인인증서 보급률이 전 국민의 30% 남짓에 불과하다. 전자신고 이용자가 늘지 않자 공인인증서 없는 사람을 위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발급해 공인인증서 없이도 전자신고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 뒀다.

마침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이용해서 신고를 했다고 하니 그럼 전자발급은 불가하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통한 발급시스템은 보안 수준이 낮아 확정신고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시스템 데이터를 초기화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확정신고를 공인인증서나 아이디 패스워드 방식으로 선택해서 할 수 있다.

‘그럼 세무서 창구를 찾아서 직접 신청을 하면 되겠지’ 싶어서 마침 회사 앞 니혼바시 세무서를 찾았다. 내가 거주하는 현주소 관할 세무서는 아니지만 국세청 온라인 시스템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니혼바시 세무서에 들러 창구 담당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온라인 시스템이 없으므로 거주지 관할 세무서로 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일본 정보화 수준을 알고 있는 나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거주지 관할 가와구치 세무서로 향했다.

관할 세무서 안내창구에서 확정신고서 과거 3년 치 사본 발행을 요구했다. 담당자가 신청서를 내주며 작성하라고 한다. 그런데 신청서 제목이 좀 이상하다. ‘보유 개인정보 공개신청서’라는 명칭이다. 이해가 가지 않아 담당자에게 질문하니 확정신고서는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규정상 한 달 내 발급이니 최장 한 달을 기다리라고 한다. 너무나 황당해서 재차 질문했다. 왜 한 달씩이나 기다려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직원은 요청하신 정보가 민감한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내부 개인정보 공개심사 프로세스를 밟아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본인 확정신고서(개인정보)를 본인이 와서 요구하는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공개심사회를 거쳐야 한다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었지만 저들에게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 나는 알겠다고 이야기하고 자리를 떴다.

일주일 후 세무서에서 보낸 우편물이 도착했다. 최장 한 달이라더니 일주일 만에 회신이 와서 나름 반가운 마음에 서류를 보니 ‘불개시 통고’라고 적힌 것이 아닌가.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순간 눈을 의심했지만 아무리 봐도 불개시 통고임에 틀림없다.

황당한 마음을 추스르며 공개 불가능 사유를 살펴봤다.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확정신고서에는 민감한 개인정보가 기록돼 있어서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공개하게 되면 기재내용 중 전자신고시스템 해킹 등 부정 사용 우려가 있는 정보가 혼재해 공개할 수 없다고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일본 국세청이 정보제공을 할 수 없다고 보내온 통지문

상상을 초월하는 대응에 더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어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황당무계한 상황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페이스북 친구인 지방자치단체장이 댓글을 달아줬다.

한 분은 ‘디지털 후진국인 줄은 알지만 그보다도 수준이 낮군요’라는 댓글을, 다른 한 분은 ‘말도 안 되는 이유와 논리로 무책임한 대응을 혁신해야 하겠네요. 이건 디지털 개혁 이전의 문제입니다’라고 달았다.

며칠 후였다. 발급할 수 없다던 확정신고서 사본이 우편으로 왔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이, 그것도 수취자 우편비용 부담 우편물로 말이다. 아마도 페친 중 재무성과 정부 고위인사들이 사연을 읽고 지시를 내린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적으로 개인 목적은 달성했지만 공식적으로 서비스 개선이 된 것이 아니니 뒷맛이 씁쓸하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정보화를 추진할 때 가장 먼저 업무 프로세스개선/정보화전략계획(BPR/ISP)을 수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은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다. 따라서 각 부처가 정보화를 추진할 때 현재의 수작업 업무를 그대로 전산시스템으로 옮기는 것이 대부분이고 그러한 일들로 인해 내가 겪은 황당무계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일본의 정보화 후진성이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여실히 드러나자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디지털 패전 운운하며 디지털청을 신설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얼마 전 디지털청 신설을 위한 입법이 완료돼 500명 규모 디지털청이 9월경에 출범한다. 하지만 직원 절반 이상이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올 컴퓨터 비전문가들이고 정부가 제시한 민간인 특별채용을 위해 정부가 제시한 처우 조건은 유능한 인재가 응모할 수 없는 열악한 조건이다.

문득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현인의 말이 떠오른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산업혁명의 흐름에 탁월한 적응력을 보이며 세계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일본 국민의 능력을 뛰어넘는 과분한 성장은 강력한 수구세력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조직적 저항으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보화시대, 디지털혁명 시대 전환에 적응할 수 없는 패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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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라는 이솝우화가 있다. 우리는 구한말 세계가 혁신을 거듭할 때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나라를 잃는 설움을 겪었다. 경제적으로도 저들의 하청기지로 전락해 ‘가마우지경제’라는 서글픈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일본은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잠자는 토끼 수준을 넘어 혼수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일본을 넘어서서 확실한 기술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저들이 깨어나더라도 다시 추월 당하지 않을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