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거꾸로 가는 서울시 전자정부

전문가 칼럼입력 :2021/04/13 06:00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서울특별시 시장실에는 ‘디지털 시민시장실’이라는 시스템이 있었다.

디지털 시민시장실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수백개가 넘는 각종 행정 시스템을 온라인으로 연결한 시스템이다. 시정운영에 필요한 각종 시정 지표 등의 데이터, 그리고 시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재난 안전, 교통상황, 대기환경 분야 등의 현황을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일일이 보고 받지 않아도 언제든 필요할 때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해당 시스템은 2017년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도입 당시 약 1천만건의 행정 빅데이터에서 시작해 2019년에는 3천200만건의 행정 빅데이터와 3억건에 이르는 데이터로 콘텐츠가 대폭 강화됐다. 서울 시내 2천800여 대 CCTV 영상 정보도 시장실에서 터치 한 번이면 바로 상황 파악이 가능했다. 응급상황 발생 시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민간기업에서는 의사결정지원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시스템이다. 매일 쏟아지는 각종 현안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정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필요한 시스템이다.

필자가 2019년 후쿠다 미네유키 전 일본 IT담당 부대신, 일본 IT 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시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방문해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시의 디지털 시민시장실은 우수성과 필요성이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배우고 도입하려는 국내외 도시가 서울시에 견학 올 정도로 관심도 높아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만으로도 중국 베이징시 등 해외 250여개 도시와 중앙정부 관계자가 벤치마킹을 위해 서울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스테판 뢰벤 스웨덴 총리, 필립 벨기에 국왕,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마르따 루시아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 세드리크 오 프랑스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 장궈칭 중국 톈진시장, 만수르 야바시 터키 앙카라시장, 글로벌 IT 기업 시스코의 척 로빈스 회장 등이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참관하는 등 대한민국 전자정부 수준을 만천하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재작년부터는 이러한 귀중한 자료를 서울시장만 볼 것이 아니라 서울시민들도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개인정보와 관련한 정보를 제외한 모든 콘텐츠를 주요 환승역 3곳(홍대입구역, 여의도역, 창동역) 대형 스크린과 PC, 모바일에서 제공하고 있다.

필자가 전자정부 컨설팅을 하는 일본에서도 앞선 서울시 디지털 시민시장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전자정부에 관심 있는 국회의원, IT 기업 관계자들과 함께 서울시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유용성과 뛰어난 기능에 모두 감탄하고 도입을 검토하자는 의견들이 들려오고 있다.

며칠 전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폐쇄했다는 뉴스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뉴스에는 오세훈 시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소위 브리핑 패널을 앞에 놓고 현황보고를 받는 사진과 함께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철거했다는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아 중구 코로나19 현황 및 조치사항에 대해 보고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시장은 정치가이므로 시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든, 세계가 극찬하는 훌륭한 시스템이고 세계 각국 정부와 지자체에 한국 전자정부 혹은 서울시 전자정부 우수성을 가장 쉽게 알릴 수 있는 시스템임에도 전임시장이 만든 것이라 폄하하고 일부러 세금을 들여가며 철거했다.

디지털 시민시장실 시스템을 이용하면 시장실에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현장을 방문해 관계자들이 시장에게 브리핑하기 위해 만든 브리핑 패널 앞에서 보고받는 오세훈 시장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정보화 선진국이며 행정 정보화 부문의 선진화를 평가하는 유엔 전자정부 랭킹에서 10여 년간 여러 차례 1위를 차지했고 2020년에는 2위를 마크하는 등 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 전자정부도 세계 전자정부 도시랭킹에서 늘 상위에 오르는 등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호평받는 전자정부와 각종 IT시스템은 대한민국의 훌륭한 수출품 가운데 하나다. 세계 각국이 한국 전자정부 시스템을 도입했거나 도입 검토 중이거나 도입을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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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도쿄도청 요청으로 서울시 디지털 시민시장실을 고위관계자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그들이 그렇게 훌륭한 시스템을 왜 철거했냐고 물어본다면 뭐라 답해야 할지 막막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지금, 전자정부 구축과 운영은 국가와 도시 경영 효율화, 고도화를 위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구축한 정보화 인프라가 정치적 이유로 용도 폐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는 서울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본계 부품기업에서 전산관련 업무를 하다가 일본 정보화 시장에 뛰어들었다. 2000년 이후 한국의 선진 정보기술(IT)을 일본에 소개하고 전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정보화컨설팅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지자체에서 정보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겸했고 병원과 기업 등에서 IT어드바이저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30년간 일본인과 같은 신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며 보고 겪고 느낀 점을 압축 정리한 ‘일본관찰 30년-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라는 일본 정보서적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