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금융위원회가 애플페이의 국내 시장 진출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가운데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Today's Lunch”라는 문구와 함께 사과를 한입 배어 먹은 사진을 게재해 출시 임박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금융권에선 “애플페이의 NFC칩 접근 차단 정책 등 ‘반독점법 위반’ 논의 이슈에 대한 충분한 논의도 없이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애플페이 도입을 성급히 결정했다”는 비난이 커지고 있다.
애플, 경쟁사 NFC칩 접근 차단…기대효과 현실성 ‘제로’
6일 금융권에선 “애플페이의 독점 이슈가 국내 시장에서도 공론화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의견과 함께 “해당 이슈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제사업자에게 부과되는 비용 부담이 결국 카드 연회비 인상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금융위가 애플페이 도입에 앞서 ‘반독점 위반’ 이슈 등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언급 조차 하지 않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효과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애플페이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로 “NFC(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결제 서비스의 개발·도입 촉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 등 해외에선 애플페이의 ‘반독점법 위반’ 이슈가 심각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류창원 연구위원은 “구글과 삼성은 모든 은행과 카드 회사 앱이 NFC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반면, 애플은 보안을 이유로 NFC칩 접근을 애플페이에 한정하고 수수료도 요구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20년 6월 애플의 애플페이 독점 관행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애플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모바일 장치로 비접촉 결제에 사용되는 ‘NFC’와 ‘Tap and go’에 대해 타 개발자 및 사업자의 액세스를 제한하면서 iOS의 모바일 결제 시장 경쟁을 차단하고 독점적 권리를 행사했다는 것이다.
EU 집행위는 2년 후인 2022년 5월 “애플이 iOS 기기의 모바일 지갑(애플페이)으로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잠정의견을 낸 바 있다.
주요 외신을 종합하면, 애플은 EU 측의 개선 요구에 따라 올해부터 아이폰 NFC칩에 대한 액세스 권한을 유럽의 경쟁 금융사에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럽에서 애플페이 외 다른 결제 앱 서비스도 아이폰을 통해 제공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유럽 등에서 계속되고 있는 독점 이슈가 금융위의 도입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위 중소금융과 관계자는 지디넷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애플페이의 반독점법 위반 이슈를 논의하지 않았다”며 “관련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공정거래 관련 논의는 사후규제가 기본 원칙이긴 하지만, 문제의 소지가 될만한 사안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컨소시움을 구성하고 사전에 리뷰를 요청하는 제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위가 애플페이 도입에 앞서 독점 규제 이슈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면, ‘경쟁 제한성’, ‘경쟁자 규제’ 등의 의견을 문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물론 아이폰의 지배점유율이 상당히 높은 유럽과 미국 등에 비해 한국은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관점이 다를 수 있다”며 “유럽과 무조건 똑같은 눈높이로 접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금융권 관계자 A씨는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밝혀진 금융위 관계자 입장을 종합했을 때 도입 결정을 갑작스럽게 내린 것으로 느껴진다”며 ”업계와의 컨센서스가 충분히 합의됐다기 보다는 도입 결정 지연에 따른 여론 악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애플페이, 꿀사과 아닌 독사과”
하나금융연구소와 Statista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애플페이 사용자는 5억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애플페이 사용자가 늘어날 수록 글로벌 카드사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애플페이의 NFC칩 접근 차단 정책이 카드사들의 수수료 이슈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국 카드업계는 “안드로이드에서는 삼성페이, 구글페이 등 사용자가 결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애플은 자체 개발한 결제 수단을 사용하도록 강요한다”며 애플페이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은 바 있다.
애플의 행위가 카드 발행사뿐 아니라 소비자와 경쟁 전반에 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애플페이는 폐쇄적인 서비스 구조로 카드업계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3천억원) 이상의 수수료를 수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애플페이 허용을 발표하며 “신용카드사는 관련 수수료 등의 비용을 소비자 또는 가맹점에 부담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애플페이 결제를 위한 수수료를 카드사와 VAN(부가통신사업자)사가 전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제사업자 사이에서 “애플페이가 꿀사과가 아닌 독사과”라고 질타받는 이유다.
금융권 관계자 B씨는 “수수료를 결제사업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건 솔직히 매우 부담스러운 구조”라며 “금융 경쟁사에 대한 애플페이의 NFC칩 접근 차단 정책으로 해당 결제 기술을 활용한 iOS 앱을 따로 만들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카드는 국내 시장에 애플페이를 도입했다는 브랜드 가치 효과를 얻었겠지만, 사실상 남는 마진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EMV(유로페이, 마스터카드, 비자카드) 결제 방식을 지원하는 카드 상품의 연회비를 높이고 혜택은 줄이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애플페이 결제 수수료를 소비자와 가맹점이 일부 부담하는 사례도 있다. 리투아니아 Zen카드 내규를 보면, 애플페이로 결제할 때 가맹점과 고객에게 각각 2.50%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국회서 ‘애플페이 독점 금지법’ 등장할까?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애플이 애플페이 외에 경쟁사의 NFC 결제 방식을 막고 있다는 점 ▲애플페이 사용시 발생되는 수수료를 결제사업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리된다.
금융권에선 향후 국회에서 애플페이 독점 금지법이 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견해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 C씨는 “그간 애플의 행태를 보았을 때 적합한 규제없이 애플페이를 시장에 내놓을 때 독점적인 지위를 행사해 국내 사업자와 소비자의 부담만 가중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C씨는 “애플페이의 독점 이슈가 해외에선 뜨거운 화두이지만, 국내에선 규제 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일단 허가를 내준 것 같다”며 “애플페이를 국내 시장에 허용한다면 독점 행태를 제재할 조치를 선행적으로 조치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선 2021년 세계 최초로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이 통과된 전례가 있다”며 “규제당국이 제 역할을 못하면, 결국 국회에서 애플페이 독점 금지법이 논의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인앱결제란 애플과 구글이 자체 개발한 내부 결제 시스템을 말한다. 유료 앱과 콘텐츠를 결제할 때 다른 결제수단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인앱결제를 유도했기 때문에 논란이 됐던 바 있다.
한편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국회에서도 ‘오픈 앱 시장 법(Open App Markets Act)’을 논의하는 등 애플의 독점적 행위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를 우회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관련기사
- 애플페이, 국내서도 된다…정부, 허용키로2023.02.03
- 애플페이 필사적 저지?…금융위 "갈라파고스화 논란 오해"2023.02.01
- 애플페이 용단 못 내리는 금융위...우회로·대안책은?2023.01.30
- 애플페이 빗장 풀린다?...금융위 "금시초문"2023.01.26
최근 애플은 앱마켓에서 미국 달러화 초강세에 따른 해외 수익 감소를 막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등에서 앱스토어의 앱 가격과 인앱결제 요금을 인상하기로 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애플이 인앱결제 수수료율(30%) 대신 국내 개발사에만 부가가치세(33%) 포함한 수수료를 부과해 개발사로부터 3천500억 원을 더 챙겼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