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 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반도체 투자는 시간 싸움이다. 이를 가로막고 편 가르는 자는 매국노(埋國奴)다. 과거 매국노가 조선을 팔아먹었다면 이번에는 대한민국 미래를 땅에 묻는 매국노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장(국회의원·무소속)은 미래 세상을 움직일 반도체는 바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단호하게 힘줘 말했다.
양 위원장은 광주여상을 졸업하고 삼성전자 반도체 메모리설계실 연구보조원으로 시작해 메모리사업부 플래시개발실 상무까지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과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으나 지난 4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을 반대하면서 민주당을 떠나 의정을 이어가고 있다. 상임위원회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이다.
양 위원장이 지난 8월 발의한 'K칩스법'은 지난주 마무리된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다만 향후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다.
K칩스법은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아우른다.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은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원하기에 ‘반도체특별법’이라고도 불린다.
이 법 개정안에는 국가첨단전략산업위원회가 전략 산업 특화 단지를 조성할 때부터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범위를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으로 확대하고 인·허가 신속 처리 기간을 30일에서 15일로 줄였다. 또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을 늘릴 수 있도록 했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반도체 투자 기업에 세액공제율을 높여준다.
다음은 양향자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Q. K칩스법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여야 쟁점이 문제인가.
"K칩스법을 가로막는 두 가지 논리가 있다. 첫째 대기업특혜론이다. 오히려 2·3차 협력사인 중소·중견기업이 K칩스법이 통과되길 가장 바란다. 반도체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반도체 생태계가 활발해진다. 반도체는 생산량이 많으면 고정비가 내리는 규모의 경제 산업이다. 대형 생산 시설에서 확보한 시장 점유율이 이익률에 바로 이어진다. 매년 수십조원씩 투자할 수 있는 대기업이 반도체 생태계의 국가대표 선수다. 대만은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Foundry·파운드리) 업체 TSMC를 호국신산(護國神山·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존재)으로, 반도체를 호국신기(護國神器·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로 부르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내년부터 대만 정부는 첨단 산업 세액공제율을 25%로 높이려고 추진하고 있다."
Q. 광주 서구을이 지역구인 의원으로서 K칩스법이 수도권과 지방 격차를 더 벌린다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나.
"K칩스법 통과를 가로막는 둘째가 지방소외론이다.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K칩스법을 포기하자는 얘기는 지역은 물론 나라까지 공멸하자는 주장이다. 국토 균형 발전을 근거로 만든 지방 공항의 현실이 어떤가. 첨단 기술 경쟁 시대에는 우선 기술을 발전시키고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산업단지(Cluster·클러스터)로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 클러스터가 지역 인재를 그곳에 머물게 하는 힘이다. 1분 1초로 순위가 바뀌는 반도체 분야에서 조속히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 자체가 급격히 쇠퇴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지역대항전이 아닌 국가대항전이다. 각국 지방자치단체는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려고 앞다퉈 무한 혜택을 주고 있다."
Q. 여야, 국회-정부 간 K칩스법에 대한 합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지난달 29일 열린 산자위 법안 소위원회에서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을 대부분 심사했다. 이 법은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가 쟁점이다. 교육부 의견을 대변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으로 의견이 모였다. 학령 인구가 줄어 수도권 대학 정원(11만7천명)에 8천명 정도 정원이 남은 상황이다. 교육부는 이를 첨단 분야 정원을 늘리는 데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학과 간 정원을 조정하는 데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다. 스스로 반도체 인력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보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조세특례제한법은 첨단 산업시설 투자의 세액공제율이 핵심이다. 기획재정부는 재정 부담, 민주당은 대기업 특혜를 이유로 K칩스법에 반대한다. 세계가 파격적으로 세금 혜택을 주는 마당에 한국도 최소한 경쟁국 수준에 맞는 세액공제를 해야 한다. 세액공제 비율보다 투자할 때에만 혜택을 주는 등 투자 유도 조항을 포함해 법안을 조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재위 조세소위는 금융투자소득세·종합부동산세 등 문제로 파행 중이다."
Q. 법안 처리 속도와 내용 중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속도가 중요하다.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다. 업황과 기술 개발 속도를 빠르게 판단해 제때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한다. 결정의 시기가 바로 지금일 수 있다.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에 한국 첨단 산업 곳간이 말라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이 파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자 마이크론 120조원, 삼성전자 260조원, SK하이닉스 29조원 등 미국으로 대형 반도체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만약 K칩스법이 지난해 통과했다면 투자처가 미국이 아닌 한국이 될 수도 있었다."
Q. K칩스법이 통과되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K칩스법으로 반도체 시설 준공 시간을 줄이고 세제 혜택으로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다. K칩스법의 특화단지 조성 단계 국가 지원, 인·허가 간소화, 예타 면제를 공기업·공공기관으로 확대하는 조항으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같은 사례가 다시 없도록 막을 수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 부지를 선정하고부터 7년 넘은 2026년에야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할 예정이다. K칩스법의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25%(증가분 포함)로 미국과 대만(15%에서 25% 상향 추진)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이 한국에서 투자하게끔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
Q. 국회 차원 반도체특위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구성의 건이 얼마 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나는 7년 전부터 줄기차게 국회 차원 첨단 산업 콘트롤타워를 원했다. 반도체 산업 패권을 쥐고 국가 안보를 지키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기초를 다졌다.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국회 차원 특위에서 발 빠르게 논의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정파와 이념, 정당을 초월해 한국이 기술 패권 국가로 우뚝 서도록 힘을 모으겠다. 이 건이 통과하는 순간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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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양향자는 빠질 테니 K칩스법 통과시키고 특위 설치하라'고까지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 차원 반도체특위 설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내가 특위에 참여하냐 마냐가 특위가 출범하는 데 걸림돌이면 안 된다. 국회 차원 반도체특별위원장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을 위해 뛰면 된다. 권력 다툼, 자리 싸움, 수준 낮은 정쟁이 해소됐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만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