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상자산 시장은 역대급 악재의 연속이다. 거시 경제의 불확실성과 맞물려 하락을 거듭하던 시장에 테라-루나 사태라는 악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 최근 인플레이션 피크가 점쳐지며 반등 기회를 엿보던 시장은 FTX 사태로 인해 장기 지지선을 내어주며 더 깊은 유동성 고갈의 늪에 빠졌다.
지난 11일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했다. 파산법원에 신고한 부채 규모는 66조원이다.
FTX가 신청한 '챕터 11' 파산은 기업의 자산과 채무를 구조조정해 회생 기회를 주는 파산이다. 2019년 5월 비교적 늦은 시기에 법인을 설립, 단기간에 몸집을 불리며 업계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샘 뱅크먼 프라이드(SBF) 최고경영자는 사임했다. 그 뒤는 구조조정 전문가로 활약했던 존 J. 레이 3세가 이어간다. 130여개의 계열사도 파산 절차를 밟게 됐다.
FTX가 거래소 예치금을 자매기업인 알라메다 리서치에 대출해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지난 2일 코인데스크는 FTX의 보유 자산 대부분이 자체발행 토큰인 FTT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46억 달러 상당의 자산 중 보유 FTT와 FTT 담보물의 합만 58억 달러가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접한 바이낸스가 보유한 FTT를 매도하겠다고 선언하며 시장은 급격하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FTX는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애썼지만, 이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과 이러한 사실이 알려진 지 일주일 만에 파산에 이르렀다.
블록체인의 탄생 배경을 되짚어보면 이번 FTX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촉발된 전통 금융권에 대한 반기이자 대안으로 탄생한 '탈중앙화'가 블록체인의 핵심 컨셉이기 때문이다. 분산원장으로 영구 기록되고 공유되는 체인을 통해 중앙기관을 거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오늘날의 블록체인이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현재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는 곳은 전통 금융사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중앙화 거래소다. 껍데기만 다르고 내부 시스템에 있어 은행과 큰 차이가 없는 이 서비스는 투자자 자금 관리의 편의성과 투자자 보호 및 자금세탁, 일련의 규제 사항들의 법제화를 위해 도입됐다.
이런 거래소에서 탈이 난 것이 FTX 사태다. 거래소를 믿지 못하게 된 이용자들은 거래소에 보관된 자금을 인출해 개인 지갑에 보관하고 있다. 그 결과 전세계 거래소 비트코인 보유량은 2018년 당시 수준으로 회귀했다.
이번 사태로 블록체인 생태계의 중앙화 이슈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가상 자산이 특정인에게 위탁돼 중앙화된 체계 아래 관리되는 이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투자자는 앞으로도 같은 위험에 계속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탈중앙화 거래소는 모든 원장이 공개되어 있고 개인 키를 사용자들이 소유하므로 중앙화 이슈로부터 자유롭다.
인류는 항상 과거를 통해 학습하고 정진해 나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블록체인의 탈중앙화에 대한 기본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한다. 투자자를 포함한 모든 생태계 참여자들을 위한 옳은 방향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진정성 있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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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국은 금융 후진국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전향적이고 열려 있는 자세와 산업 이해에 대한 열의가 갖춰져야 한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실사 없이 무조건 안된다는 식으로 젊은 리더들이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도록 내몰고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억압만 해서는 이를 벗어날 수 없다.
가상자산은 우수한 인적 자원을 보유한 한국에 찾아온 큰 기회다. 길어질 수 있는 시장 침체기에 관련 부처와 생태계 구성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 지 건설적인 논의를 나눠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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