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영끌족'은 투기꾼인가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이 가져온 '시대적 희생자'

기자수첩입력 :2022/11/17 09:36    수정: 2022/11/17 12:19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무언가에 투자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영끌족'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한 때 영끌족은 '벼락 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 정도로 투자 성과를 낸 시대를 앞서간 '패스트 무버(Fast mover)'였지만, 현재 영끌족은 과시와 탐욕에 눈이 멀은 투기 세력쯤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렇지만 영끌족이 무엇에 투자하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숫자로 돌이켜본다면 영끌족은 '악마'가 아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의 중턱 쯤에 한 평생 살 집 한 채를 마련하고자 한 이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20년과 2021년 '가계 금융 복지 조사 결과' 보고서를 살펴보자. 일단 2020년과 2021년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영끌족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가계의 소득보다 부채가 늘 많았다. 2019년 39세 이하의 가구별 평균 소득은 5천935만원이며 2020년의 평균 소득은 6천177만원이다. 반면, 이들의 같은 기간 부채는 2019년 8천125만원, 2020년 9천117만원으로 소득보다 3천만~4천만원을 웃돈다.

부채 구성을 살펴보면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채 중 담보대출의 비중이 2019년 57.9%, 2020년 57.5%, 2021년 58.2%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그럼 영끌족은 왜 탄생했는가. 소득보다 빚이 많다면 불안감을 느껴 알아서 자제했어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닐까 반문할 수 있다. 기자는 영끌족을 오락가락한 부동산 정책과 유례없는 인플레이션이 가져온 시대적 희생자라고 간주된다.

2013년 이후로 정부는 '빚내서 집을 사라'고 독려했다. 집 값의 80%를 대출로 살 수 있었다. '집 한 칸서 화장실을 제외하곤 은행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당연했다. 그 기조는 쭉 이어졌지만 2018년부터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라고 쓰고 부동산 가격 잡기)를 명분으로 대출을 조였다. 대출 한도가 줄어드니 어차피 빚을 내야만 부동산을 사야했던 이들은 영혼까지 끌어 대출을 받았다. 영끌족의 탄생이다. 이 대목에서 기자는 영끌족의 투자 결정을 오롯이 투자자들의 책임만으로 봐야 하는지 묻고 싶다. 정부는 조금도 책임이 없는지 말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가계부채 관리 시점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면, 애초에 대출을 무분별하게 풀지 않았다면 가계부채가 늘었을 가능성도 적다. 이를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니 떨어질 것을 왜 예측하지 못했냐고 영끌족의 행태를 나무랄 수 있을까. 부동산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도 부동산 가격의 향방을 100%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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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유례없는 인플레이션도 마찬가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영끌족에게는 이 모든 현실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영끌족 일부는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쯤 태어나 고(高)금리 시대를 인생 처음으로 맞아보는 걸 수도 있다. 저(低)금리가 노멀(Normal)이었던 그들에게 고금리란 '뉴 노멀(New normal)'을 예측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금리가 언제까지고 1~2%에 머물러 있다면 소득으로 빚을 충당하긴 어렵지 않겠다 판단할 수 있었으며, 정 안되면 집을 팔아 빚을 갚을 수도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영혼을 끌어 모아 빚을 냈던 이들은 이제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야할 지도 모르는 순간이 왔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고 대출 이자는 점점 늘어난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나날이 오르는 중이다. 허리띠를 졸라봐야 영끌족이 할 수 있는 것은 빚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는 수밖엔 없다. 영끌족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기업사냥꾼도 아니다. 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서민이며, 정부의 정책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