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블루스(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 Bank)의 의료서비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민간 및 NGO등을 통해 제공되고 있지만, 이스라엘 점령 하에서 PA의 지원 부족 등으로 인해 한계 상황을 맞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 1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Nablus) 소재 일차의료기관과 우리나라의 상급종합병원에 해당하는 대학병원을 방문해 현지 의료 실정을 들었다. 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접하기 어려운 현지 실정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사실 관계를 확인해야 할 부분도 존재했다.
당일 오전 기자는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 내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를 방문해 지부 담당자인 나세르 나제(61) 공중보건의를 인터뷰했다.
■ 환자 넘쳐나는데 일손은 부족
-운영 예산은 어떻게 마련하나.
“나블루스 지부는 1984년 나블루스의 빈곤층 의료서비스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이곳엔 분쟁과 사고로 환자가 많다. 예산 마련은 사업(프로젝트)과 소액의 진료비 수입으로 이뤄진다. 전체 예산 통제는 라말라(Ramallah) 본부에서 맡고 있다.”
-이곳에선 어떤 진료와 치료가 이뤄지나.
“여성 건강, 산전(임산부의 위험인자를 미리 발견하고 조기에 치료·예방하는 것), 임신, 모자보건(母子保健,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건강 보호해 건강한 출산과 양육을 위한 일체의 의료행위), 정신건강 치료 등이 실시된다.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임신·출산·부인병 치료가 많이 이뤄진다. ‘원만한 성생활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다.”
-어떤 환자들이 내원하나.
“16세 이상의 환자들이 내원하면 20개 항목의 문진에 따라 정신과 진료 여부까지 결정한다. 환자 상황에 따라 정신과 여성과 통합진료를 연계해 치료가 이뤄진다.”
-어떤 질환이 많나.
“계절성 질환이 많다. 겨울에는 인플루엔자, 여름에는 설사와 위장염(gastroenteritis)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다. 특히 여성 환자들은 산과(Obstetrics, 임신·출산 진료과)와 부인과(Gynecology, 산과를 제외한 여성 질환 진료)를 비롯해 모자보건 및 정신건강 진료를 받기 위해 내원한다.”
-한 달 평균 환자 수는.
“1천~1천200명이다. 소아과에서는 생후 1개월 태아부터 5살 아동까지 진료가 이뤄진다. 각종 백신 접종과 성장·발달을 위한 치료가 실시된다.”
-이곳의 의료인력 규모는.
“한 명만 남자의사이고 나머지는 다 여성 의료진이다. 여성의사 1명, 간호사 3명, 연구소(영양관련, 여성교육) 2명, 안내데스크에 1명이 있다. 다른 한 명의 의사는 비상근으로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하고 있다.”
-환자 수 대비 의료진의 수는 어떤가.
“일손이 부족한데, 운영 예산이 너무 모자라다.”
-어떤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나.
“일차의료시설이라 혈압측정기 외에는 구비하고 있지 않다.”
-의약품은 수급은 어떻게 이뤄지나.
“자체 구매하기도 하고 기부를 받기도 한다. 스페인 소재 센터에서 기부를 받고 있다.”
-의약품은 부족하지 않나.
“호흡기 환자를 위한 의약품이 부족한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로부터 보조를 받아서 의약품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 정부가 의료교육에 큰 관심이 없어서 우린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부족한 의약품은 있지만,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대답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황 상 팔레스타인 보건부(PMOH)와의 협력 관계를 의식한 발언일 가능성이 존재했다. 방어적인 대답으로 판단됐다.
-진료비 수준은.
“질환별 차이가 있지만 진료비는 25세켈(약 1만158원), 치료비는 20~40셰켈(약 8천원~1만6천원)이다. 약값은 환자 부담이다. 정치 수감자 및 가족, 순교자(점령국인 이스라엘과의 시위·저항 등의 과정에서의 사망자)는 돈을 받지 않는다.”
-진료비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국가건강보험 적용이 되나.
“여기서 건강보험 여부는 고려되지 않는다.”
-수술이 필요하거나 중병 환자는 어디로 전원시키나.
“우리보다 높은 단계의 대형병원으로 보낸다.”
기자는 대형병원의 높은 진료비에 부담을 느낄 극빈층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어 이런 질문을 했지만, 인터뷰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이곳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의료 교육과 마스크 착용 등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세정제와 마스크를 나눠주기도 했다.”
-지역에서 여성 및 아동 확진자의 사망 사례가 많았나.
“보지 못했다.”
-나블루스의 보건 의료상황이 어떻다고 보나.
“공중보건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환자 수는 많은데 국가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환자가 적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다.”
인터뷰로 인해 진료가 늦어진 환자들이 있어 인터뷰는 짧은 시간동안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 취재 중 카메라를 피해 구석으로 숨곤 젊은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는 얻지는 못했다.
■ 서안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병원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나블루스 지부에 이어 방문한 곳은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이었다. 지난 2013년 나블루스에 설립된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은 팔레스타인 의과대학에서 만든 첫 번째 대학병원이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어거스트 빅토리아 병원(Augusta Victoria Hospital) 다음으로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인데, 의료 인력은 의사 65명, 간호사 240명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연간 외래환자의 수만 1만5천명~1만6천명이었다.
현재 120개의 병상이 운영되고 있고,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1일(현지시간) 350병상이 들어설 건물 증축이 한창이었다. 인터뷰에 응한 병원 고위 관계자는 자부심이 상당해 보였다.
“지난 2005년 안나자 의대가 신설됐는데 대학병원 필요했다. 의대생들이 공부와 수련을 할 공간이 있어야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와 협정을 맺고, 병원이 조성돼 현재 일반의료와 신장 관련한 질환 등 모든 진료가 이뤄진다. 산부인과 건물도 추가로 짓고 있다.
안나자 대학병원에는 영국·요르단·유엔과 협력해 선진국의 의료시스템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뼈안에 세포를 이식하는 수술은 250례 시행됐으며, 뇌와 심장 등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 가야만 가능했던 힘든 수술도 성공시켰다. 의대생들이 인턴과 전공의 실습을 거쳐 전문의로 길러내는 시스템을 갖췄고, 의과교육 수준도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환자들을 위해 방사선과와 병실을 증축 중이고, 방사선 치료는 서안지구에서 우리 병원만 가능하다. 이스라엘군의 검문소(checkpoint)를 거치지 않고도 우리 병원에 올 수 있어서 접근도 용이하다.”
-병원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입원병실에는 120병상이 있고, 현재 350개 병상을 보유한 건물을 짓고 있다. 100개의 인공투석기기도 마련해놨다.”
투석(dialysis)은 몸에서 노폐물과 과도 체액을 제거하는 인공적인 과정으로,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만성신부전 환자의 혈액에서 노폐물을 제거하는 것을 말하는데, 투석의 종류에는 혈액투석과 복막투석이 있다. 특히 혈액투석은 혈액투석장치를 통해 혈액 속의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고 전해질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팔레스타인에는 신장 관련 질환 환자가 많아 인공투석이 많이 요구된다.
-암환자의 비중은 어떤가.
“전체 환자의 38~40% 가량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어거스트 빅토리아 병원을 제외하면 안나자 대학병원은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암병원이다.”
-이스라엘군과의 분쟁으로 발생한 총격 피해 등 중증외상 환자 빈도는 높은가.
“그렇다. 중증 응급 상황이 많고 중환자실(IOU)에서 이들을 위한 수술과 의료지원이 이뤄진다(고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통계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중증외상 환자는 병원에 얼마나 내원하나.
“부상자와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되고, 가끔 우리 병원으로도 오는데 통상 라피디아 외과병원(Rafidia Surgical Hospital)이 시위 중 부상환자를 주로 맡는다.”
1976년 설립된 라피디아 외과병원(Rafidia Surgical Hospital)은 나블루스에 위치해 있는데, 팔레스타인 보건부(PMOH)가 운영하는 국립병원이다. 200병상 규모로 의사와 간호사, 약사 등을 비롯해 620여명의 의료 인력이 소속돼 있다.
-중증환자 이송은 검문소 등 이스라엘군의 도로 통제로 지연되는 일이 많지 않나.
“가자지구(Gaza Strip)에서는 이스라엘 당국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아야만 안나자 대학병원에 올 수 있다. 나블루스 인근 거주 환자가 병원에 오지 못하는 경우는 이스라엘군이 도로를 막거나 검문소 때문인데, 최근에는 그런 경우가 적다.”
최근 나블루스와 제닌(Jenin)에서의 유혈분쟁으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고, 검문이 강화됐던 탓에 병원까지의 이송 지연이 다수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답변은 달랐다. 관련해 나블루스 인근은 이스라엘군의 상시적 검문과 통행 제한 등 도로 상황도 원활치 않은 상황이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OCH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나블루스(Nablus)에는 이스라엘군의 이동 제한 시설은 ▲검문소 6개 ▲지역별 부분 검문소 1개 ▲개방 철문 4개 ▲방어벽 1개 ▲흙더미 9개 ▲흙벽 3개 ▲도로장벽 3개 등 총 27개가 있었다.
-최근 나블루스와 제닌에서의 유혈분쟁으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많나.
“환자가 있긴 한데, 구체적인 환자의 사례까지는 알지 못한다.”
-안나자 대학병원에서 암 수술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수술, 항암치료, 면역치료, 방사선치료 비용은 매우 비싸다(환자 1인당 평균 치료비용은 들을 수 없었다). 안나자 대학병원은 연간 1000건, 누적 5000건 이상의 치료 경험을 갖고 있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보건의료 서비스 재원 부족이다. 전체 치료비를 충당하려면 PA는 300만 달러(약 43억 원)가 추가로 더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의 수는 얼마나 되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암 치료와 인공투석을 보장하고 있다. 2만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들은 국가 의료보험의 수혜자다. 국가건강보험에 가입하면 100% 치료비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매달 PA에 세금을 지급하지만, 암과 신장 질환은 이스라엘로부터 세금을 적게 받아서 어려움이 있다. 환자 이송 건수도 많지만 이송 과정에서 환자는 악화되는 상황이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나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확진자에 대한 격리병동 운영 및 치료 대응은 어떻게 이뤄졌나.
“유행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물품을 환자, 의사, 병원 방문자에게 지급했다. 코로나19 전담 부서를 만들어서 산소호흡 치료(위중증 환자를 위한)를 실시했다. 우린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코로나19 가이드라인을 대중들에게 안내하고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우린 코로나19와 충분히 잘 싸워서 이겼다. 안나자 출신 의사들이 8개 의료기관에 파견돼 성공적으로 대응했다. 안나자 대학은 코로나19 대응의 랜드마크가 됐다.”
고위 관계자의 ‘성공적인 대응’이나 ‘코로나19와 싸워 이겼다’는 발언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통계를 고려할 때 주관적인 해석으로 판단된다.
존스홉킨스 코로나19 리소스 센터에 따르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누적 확진자 수는 70만3천14명이며, 누적 사망자는 5천708명이다. 참고로 서안지구의 인구는 315만 명이며, 가자지구 212만 명이다.
확진자 및 사망자 수만 놓고 보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진단검사시설의 한계로 사각지대의 존재를 고려하면 누적 수치는 현재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총 374만8천571 회분의 백신이 투약됐고, 적어도 예방접종 1회분만 투여 받은 사람의 수는 201만2천767명, 1회 이상 투여 받은 비중은 39.46%에 불과했다.
-이팔분쟁이 심각해지면 의약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나.
“이달에도 이송돼야 할 의료품목이 이스라엘의 유대 명절로 허가가 지연돼 수송이 늦어지고 있다. 운송업체도 이스라엘 업체인데, 모든 의약품은 이스라엘에 사전등록을 해야 한다. 사전등록의 어려움도 있거니와 분쟁 자체가 의료품 이송에 어려움을 주진 않지만, 이송 업체들이 이송을 거부하거나 이스라엘군의 검문이 강화돼 이송이 지연되고 있다.”
-서안지구의 보건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개선을 위해 PA는 장기적인 해결책을 갖고 있다고 보나.
“PA는 모자보건에 잘 대응하고 있다. 우린 치료와 개입은 가능한데 예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 치료 환자에 대한 전반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한 곳에서 예방, 진료, 치료, 회복이 이뤄져야 하고, 이것을 하려고 한다.”
인터뷰 이후 고위 관계자와 병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환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자, 이 관계자는 “왜 환자를 만나고 싶어 하느냐”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환자들과는 대화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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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창 너머로 본 인턴 의사들은 환자를 돌보는데 열심이었다.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PA의 무능도 한편으론 현실이었다.
일차의료기관과 종합병원의 입장은 일정부분 대치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서안지구의 보건의료 상황은 매우 열악하고, 그 이유는 이스라엘 점령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