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혼자 하루에 250명 진료"…분리장벽만큼 높은 팔레스타인 병원 문턱

[2022 팔레스타인 보건인권 리포트] ② 유명무실 건강보험·재정 여건 따라 의료접근 격차

헬스케어입력 :2022/10/24 14:20    수정: 2022/10/25 09:43

[나블루스(팔레스타인 서안지구)=김양균 기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Palestine West Bank)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재정 상태,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 지리적 한계 등의 요인을 비롯해 이스라엘 점령하라는 특수 상황의 종합 작용으로 의료접근권의 현저한 격차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보건의료체계는 지난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 구축됐다. 서안지구의 의료서비스는 팔레스타인 보건부(Palestinian Ministry of Health, PMOH)를 비롯해 각종 국제구호단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 민간 분야가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야라 아씨(Yara M. Asi) 교수는 팔레스타인이 의료 불균형 상태에 있다고 지적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낮아 서민들의 자부담 비율이 높고, 의료 소비자의 지리적 위치 및 재정에 따라 보건의료 접근권이 불균등하다는 것이다.

기자는 서안지구의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 내 소규모 클리닉과 대학병원, 나블루스 인근 부린마을(Burin village)의 클리닉, 헤브론(Hebron) 남부 마사퍼 야타(Masfer Yatta) 내 앳투와니 마을(At Tuwani) 등을 방문해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의 의료접근권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는 사단법인 아디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헤브론 남부 마사퍼 야타 지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낙후된 지역이라 정부는 보건의료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사막을 걷고 있는 현지 인들의 모습.. 사진=김양균 기자

■ 의사 1명이 6시간 동안 250명 진료…돈 없어 무료 클리닉 환자 몰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이스라엘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3.3명, 간호사 수는 5.1명이었다.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센터(Palestinian Central Bureau of Statistics, PCBS)는 2019년 기준 서안지구의 의료인력 현황이 ▲의사 8천386명 ▲치과의사 3천643명 ▲간호사 9천751명 ▲약사 5천59명 등이라고 보고했다. 

인구 1천명 기준으로 보면, 의사 수가 3.25명, 간호사 수는 3.61명인데, OECD 회원국 평균이 3.58명임을 감안할 때 수치만 놓고 보면 의료인력의 수가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수치의 신빙성을 떠나 앞선 통계가 팔레스타인인의 건강권 보장의 척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을 현지 취재에서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나블루스 북쪽에 위치한 발라타 난민 캠프(Balata camp)의 의료 실상은 통계와 현실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RWA)에 따르면, 발라타 난민 캠프는 서안지구 내 가장 큰 규모의 난민캠프로 난민의 수만 3만 명이 넘는다. 현지 난민을 통해 확인한 발라타 캠프 내 클리닉는 매우 열악했다. 클리닉에는 4명의 의사와 12명의 간호사가 근무하는데,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돌보는 환자의 수는 250여명이었다.

진료 시간은 오전 8시에서 오후 2시까지로, 환자 수는 많고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의사 한 명이 진료실 내에 각기 다른 질환의 환자 4~5명을 앉혀놓고 진료를 실시하고 있었다. 캠프 내 환자들은 클리닉이 끝나면 민간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난민들이 그럴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환자들의 상태도 좋지 않아, 일차의료로 해결할 수준이 아닌 경우도 많다. 클리닉을 찾아온 한 유방암 환자는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갖고 있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또 다른 신장암 환자는 당뇨도 함께 앓고 있었는데 환자의 빈곤한 경제 사정은 질환을 더욱 악화시켰고 정신건강 문제까지 발생시켰다.

기자에게 클리닉의 사정을 증언한 현지 난민은 “캠프 내 클리닉에는 발라타 난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난민 캠프 거주자까지 약 5만여 명의 환자들이 몰려온다”며 “이들이 클리닉을 찾아오는 이유는 클리닉의 진료 및 치료, 의약품을 무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엔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난민 규모는 전체 인구 315만4천418명의 26.3%에 달한다.

당초 클리닉 관계자와의 인터뷰가 잡혀 있었지만, 그 시간 동안 환자들의 볼 피해를 고려해 결국 취재는 취소됐다.

나블루스 올드시티 내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나블루스 지부 내부의 모습. 지부 총괄은 환자를 돌보기 위한 예산부족을 토로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 병상 부족·유명무실 팔레스타인 건강보험 이중고

팔레스타인 중앙통계센터(PCBS)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안지구 내 의료기관은 국립병원 15개소와 민간 및 대학병원 38개소 등 총 53개소다. 병상 수는 3천950개로, 인구 1천 명당 병상 수는 1.3개로 나타났다. OECD 국가 평균 인구 1천 명당 4.4병상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서안지구 헤브론(Hebron) 남부의 십여 개의 마을로 구성된 마사퍼 야타(Masfer Yatta) 지역은 부족한 의료기관으로 어려움에 처한 곳 가운데 하나다. 마을 중 하나인 앳투와니(At Tuwani)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운영하는 일차의료기관이 있었다. 앳투와니 마을 주민의 수는 320명으로, 클리닉은 일주일에 1일~2일만 운영된다. 

의사 2명이 순환 근무를 하고 있고, 간호사 1명도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현지 주민 하페즈 후레이니(52)는 “큰 병에 걸리면 1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야타(Yatta, 인근 지역)의 큰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예루살렘응용연구소(ARIJ)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서는 국립 아부 핫산 알 카삼 병원(Abu Hasan Al Qasam governmental Hospital)과 민간 병원 3개소 등 총 4개의 의료기관이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도 진료과별 클리닉이 13개소, 약국이 21개소 가량 운영 중이다. 마사퍼 야타 지역을 포함해 인접한 지역의 환자들을 고려하면 의료기관의 수는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하페즈는 “낙후된 지역이라 아무도 이곳의 보건의료에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앳투와니에서도 10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제대로 된 치료는 이뤄지지 못했다. 하페즈는 “알아서 낫는 수 밖에 없었다”며 “앳투와니는 비교적 규모가 있어 클리닉도 운영되고 있지만 인근 마을은 치료를 받을 곳이 매우 드물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위치한 안나자 대학병원의 응급실 풍경. 비용 문제 때문에 극빈층은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진=김양균 기자

병원 문턱을 높이는 요인은 부족한 병상 외에도 더 있다. 현지 의료인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률은 환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엔에 따르면, 서안지구의 GDP는 4천197달러(약 600만원)이고, 상대적 빈곤율은 13.9%다. 남성 실업률은 12.4%이며, 여성 은 28.9%다. 특히 청년층(15~24세)의 실업률은 27.8%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나블루스에 위치한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팔레스타인 자치정부, PA)는 암과 신장투석 비용을 감당하고 있으며, 2만 명의 공무원과 그 가족은 국가 의료보험의 수혜자”라며 “국가건강보험에 가입하면 질환에 대한 100%의 보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설립된 안나자병원은 팔레스타인 의과대학에서 만든 첫 번째 대학병원이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어거스트 빅토리아 병원(Augusta Victoria Hospital) 다음으로 서안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원인데, 의료인력은 의사 65명, 간호사 240명 가량이다. 현재 120개의 병상이 운영되고 있고, 기자가 방문했던 지난 11일(현지시간) 350개의 병상의 건물을 짓고 있었다. 연간 외래환자의 수만 1만5천명~1만6천명이다.

하지만 지역 의료시설의 설명은 좀 달랐다.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의 나세르 나제(61) 총괄은 “공중보건 상황이 좋지 않다”며 “환자 수가 너무 많고 정부에서 커버하는 건강보험 환자가 적어 건강보험 적용 못 받는 사람은 의료비 부담을 너무 많이 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현지시각) 나블루스 남서쪽으로 7킬로미터 떨어진 부린마을(Burin village)에서 만난 갓산 나자르(32) 현지 활동가도 “대학병원은 비싸서 공무원들만 간다”며 “나블루스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갈수록 환자가 많아져 더 많은 병원이 필요하지만, 병원이 있어도 갈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농부인 갓산의 한 달 수입은 2000셰켈~3000세켈(약 81만원~122만원)이다. 그는 이 돈으로 가족 5명의 생계를 꾸린다.

나블루스 인근 부린마을 내 클리닉의 모습. 사진=김양균 기자

이보다 낙후된 서안지구 지역의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마사퍼 야타의 앳투와니 마을의 경우 한 달 수입은 부린마을의 절반에 불과했다. 현지 주민인 하페즈 후레이니(52)는 “과거 300마리 양이나 염소를 가진 사람이 지금은 30~40마리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며 “앳투와니의 가구당 월 소득은 최대 300달러(약 43만원)”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소규모 일차의료기관은 건강보험이 필요 없고 진료비가 대학병원보다 저렴해 미가입자들이 주로 찾아온다. 나블루스 올드시티(Nablus old city) 내 전통시장 2층 초입에는 초록색과 검은색으로 도색된 철제 계단이 있었다. 그 위에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Health Workers Community) 나블루스 지부 간판이 있었다.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는 서안지구 라말라(Ramahla)에 본부를 둔 시민단체로 지난 1984년 팔레스타인 빈곤층의 의료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단체는 팔레스타인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극빈층의 소액 진료비와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나블루스 지부의 나세르 나제(61) 총괄은 “국가건강보험 가입 여부는 이곳에서 고려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질환별로 일부 차이가 있지만 진료비는 25세켈(약 1만158원)이고, 치료비는 20~40셰켈(약 8천원~1만6천원) 가량. 이밖에 약값은 환자 부담이다. 정치 수감자 및 가족, 순교자(점령국인 이스라엘과의 시위·저항 등의 과정에서 사망자)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게 나세르 총괄의 설명이었다.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나블루스 지부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여성들과 소아(1세~5세)다. 남녀 의사가 각각 한 명씩 있고 비상근 의사는 주 1회 클리닉에서 환자를 돌봤다. 이밖에도 간호사 3명, 영양 및 여성 교육 전담요원 2명 등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총 6명의 의료진은 한 달 평균 1000명~1200명의 내원 환자를 돌본다. 

지난 11일 오전 9시께(현지시각) 나세르 총괄과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여성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세르 총괄은 “환자들을 돌보기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고 했다.

올드시티를 비롯해 나블루스 시내로부터 다수의 환자들이 이곳을 찾아오지만 나블루스 지부에는 혈압측정기외에 별도의 의료기기는 없다. 수술 등 고도화된 치료를 위해서는 대형병원으로 전원이 이뤄지지만 그 경우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하게 여겨진다.

나블루스 내 헬스 워커스 커뮤니티 일차의료시설 내부의 모습. 사진=김양균 기자

나블루스 지부에는 인플루엔자(influenza)와 설사 등 계절성 질환이 빈번하고 위장염(gastroenteritis) 등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특히 여성 환자들은 산과(Obstetrics, 임신·출산 진료과)와 부인과(Gynecology, 산과를 제외한 여성 질환 진료)를 비롯해 모자보건 및 정신건강 진료를 받기 위해 이곳에 온다. 나세르 총괄은 “환자들이 내원하면 20개 항목 문진을 하고 나서 정신과 진료 여부도 결정한다”며 “환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정신건강 및 부인과 연계 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환자들의 정신과 진료 니즈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문화와 관련이 깊다. 나블루스는 특히 이슬람 보수성이 강한 도시로, 현지 여성들은 매우 강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생활한다. 이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 가정폭력 피해 등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현지 여성들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 건강 및 심리 사회적 문제는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가장 중요한 공중 보건 문제 중 하나”라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 기자가 사단법인 아디가 나블루스 내 구축한 트라우마힐링센터(Trauma Healing Center)에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여성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은 가정폭력에 기인한 정신건강의 문제를 갖고 있었다.

관련기사

헤브론 남부 마사퍼 야타 내 소규모 마을. 현지 주민은 제대로 된 의료시설에 가려면 도시까지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의약품 수급도 원활치 않아 보였다. 안나자(An-Najah) 대학병원의 관계자도 이스라엘과의 유혈충돌 등 의약품 수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달에도 이송돼야 할 의료품목이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 지연으로 수송이 늦어지고 있다”며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 운송업체(대부분 이스라엘 업체)가 이송을 거부하거나 검문이 강화돼 배송이 지연된다”고 밝혔다.

나블루스 지부의 나세르 총괄도 “정부(팔레스타인 자치정부, PA) 기관으로부터 보조를 받고 있어 환자에게 의약품 제공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호흡기 환자를 위한 의약품이 부족한 실정으로, 의약품은 자체 구매도 하지만 스페인 등지에서 기부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