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불통'의 두 얼굴…다이하드 4.0과 월든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연결 강요하는 세상에 대한 성찰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17 16:05    수정: 2022/10/17 21:5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카카오톡이 다운되던 시간에 난 캠핑 중이었다. 캠핑장에 막 짐을 풀어놓고 한 숨 돌리던 참이었다. 주변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려 했지만 잘 되질 않았다. 처음엔 그저 우리가 있는 곳의 통신 상태가 불량한 것이려니 했다.

그러다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서비스가 다운됐다는 뉴스를 접하게 됐다. 정상화되기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다는 뉴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접하면서, 엉뚱하게 두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2007년 개봉됐던 영화 ‘다이하드 4.0’과 헨리 데비이드 소로의 명작 ‘월든’이다.

■ '국민 메신저'의 책임감, 생각보다 훨씬 더 크다 

‘다이하드’는 초고층 빌딩(1편), 공항(2편), 지하철(3편) 공격으로 초래된 혼란 상황을 소재로 많은 인기를 누렸던 액션물이다. 브루스 윌리스를 대표적인 액션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급기야 시리즈 4편에선 전산망 공격을 다뤘다. 전 정부요원 토마스 가브리엘이 정부 전산망을 공격해 미국 전역을 마비시키는 내용이다. 이 공격으로 교통, 통신, 금융, 전기 등 미국의 모든 네트워크가 끊어지면서 엄청난 혼란이 발생한다.

카카오톡 불통을 ‘다이하드 4.0’과 연결하는 것이 조금 과할 수도 있다.

영화 '다이하드 4.0' 포스터.

하지만 그 동안 ‘국민 메신저’ 대접을 받아 온 카카오톡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가기간망이나 다름 없는 역할을 해 왔다. 카카오톡이 끊어지는 순간 통신, 엔터테인먼트, 금융 활동까지 동시에 타격을 입었다. 카카오 택시 불통으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쯤 되면 카카오톡 불통은 다이하드 4.0의 국가기간통신망 마비나 다름 없는 혼란을 몰고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카카오가 자신들의 존재감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재발 방지 약속도 꼭 지키길 바란다. 특히 카카오톡, 카카오T 등의 서비스와 생계가 연계된 자영업자들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그건 '국민 메신저' 운영 기업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 연결 강요하는 세상에 대해 성찰해 본 좋은 기회 

그런데 난 카카오톡이 안 되던 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마침 그 시간에 가족들이 함께 캠핑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리고, 수시로 답을 달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 봤을 것이다. 몸은 캠핑장에 있었지만, 카카오톡을 통해 바깥 세상과 실시간 소통을 했을 것이다.

그 날은 달랐다. 가족 모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불가에 모여 앉았다. 그리곤 오랜 만에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서너 시간 동안 스마트폰 들여다보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했다. 근래 보기 드문 경험이었다.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멋진 삶을 선사해줬다. 손 안에서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모바일 라이프를 더 부드럽게 만들어준 멋진 윤활유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묵었던 월든 호숫가.

하지만 이런 편리함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도 적지 않았다. 어딜 가나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됐다. 오프라인 상태가 조금만 오래 지속되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연결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캠핑장에 있으면서 세상과 잠시 단절되어 보니, 그 경험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외부와의 소통은 차단됐지만, 앞에 있는 사람들과 좀 더 밀도 깊은 소통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 시간 계속 소통이 차단됐지만, 삶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큰 일은 생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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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월든’과 소로를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순간만은, 소로의 말이 가슴 깊숙이 와서 박혔다.

"나는 삶이 너무 소중하여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깊이 있게 살면서 삶의 정수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싶었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