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없는 세상 경험...블랙아웃

[이균성의 溫技] 달라진 책임의 크기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17 10:36    수정: 2022/10/17 11:18

지난 15일 오후 3시 조금 지난 시각.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가전매장. 냉장고를 구매하려고 그곳 매니저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구매할 것은 문 4개짜리 냉장고와 문 1개짜리 냉동고. 문제는 색깔이었다. 이 냉장고는 최근 유행 제품으로 가전기기를 명품 가구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냉장고 본래의 기능보다 외부 디자인과 색깔이 결정적인 차별화 포인트. 기술을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리겠다는 개발자 의도가 엿보인다.

냉장고 앞면 디자인과 색깔은 특히 네덜란드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 디자인은 정해져 있고, 소비자는 10여 개의 색깔 가운데 나름대로의 개성과 취향을 살려 고를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냉장고 문 4개와 냉동고 문 1개의 색깔을 골라 하나의 작품을 구성해내야 하는 상황이다.

(사진=카카오톡)

아내와 나는 전시 제품을 보기도 하고, 전시되지 않은 색깔에 대해서는 태블릿으로 이리저리 조합해보기도 했지만, 끝내 최상의 예술품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우리 자신의 심미안을 믿지 못했다. 결국 우리보다 젊고 그래서 더 세련된 색감 취향을 갖고 있을 아들과 딸의 의견을 듣고 그에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서너 가지 색깔 조합을 먼저 완성한 뒤 이를 사진으로 찍어 카카오톡 가족 단톡방에 올려놓고 둘의 판단에 따르기로 한 것. 하지만 웬일인지 카카오톡은 먹통이었고 사진은 보내지지 않았다. 문자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 생각을 안 했는지, 그 순간에 문자도 안 보내졌는지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매니저가 “이상하다”면서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봤는데 전화도 안 됐던 것 같다는 기억이 살짝 있다.

냉장고가 고액이다 보니 매니저는 이런저런 할인혜택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는 어떤 회사 카드로 결제하고 그 카드를 2개월간 40만 원 이상 쓰면 20만원 깎아준다는 것이다. 우리 둘 다 이 카드가 없어 할인을 받으려면 새로 발급받아야 했다. 현장에서 온라인으로 바로 발급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할인받기 위해 잠깐 쓰고 말 카드를 여러 개 만드는 걸 평소부터 싫어해 속으로만 안 만들었으면 했는데, 아내는 “20만원이 어디냐”며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 하지 못했다.

색깔 고르는 일을 조금 더 하며 기다리다보니 카카오톡이 잠깐 살아난 것인지 매니저가 보낸 카드 생성 앱 주소가 아내 스마트폰으로 전송됐고 거기에서 작업을 하는데 무슨 문제 때문인지 결국 최종 작업을 마칠 수 없었다. 속으로 “잘 됐다”고 속웃음을 짓고 있는데, 아내가 그러면 기존 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다 이런저런 일로 다시 10여분이 흘렀고 매니저는 카드 만드는 걸 “다시 한 번 시도해보시죠”라고 했다. 아내도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그래도 끝내 카드를 만들 순 없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색깔은 우리가 결정했고 결제는 기존 체크카드로 했다.

이 일을 하는 중에 카카오톡이 불통이라는 속보가 나오기 시작했고, 일을 다 처리하고 집에 들어와 상세한 뉴스를 접하였다.

우리가 경험한 블랙아웃은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카오톡 불통으로 인한 불편이 어디 그것뿐이었으랴. 카카오톡과 연계된 서비스가 한두 개가 아니고 그 서비스 이용도가 큰 사람일수록 불편도 더 컸을 거다.

“쿠팡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 하게 만들겠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좋아했다. 그 꿈의 웅장함을 좋아했다. 기업가가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갖는 꿈을 이보다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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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면도 봐야 된다고 생각한 것은 그 꿈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된 뒤다. 지금 수많은 사람에겐 쿠팡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쿠팡의 서비스는 이미 전기나 수도나 가스나 통신처럼 기간산업이 되어 버렸다. 전기나 수도나 가스나 통신이 끊긴 도시 아파트의 삶을 생각해보라. 우리 삶은 순식간에 생지옥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카카오나 쿠팡 같은 플랫폼 사업도 이제 그 단계가 됐다.

그것들의 블랙아웃은 이제 기간산업의 블랫아웃과 다를 바 없는 시대가 됐다. 그에 맞는 안전과 책임도 마땅히 준비돼 있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