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자의 '똑똑한' 보고 메일, 미디어 혁신 이끌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악시오스의 'Smart Brevity'

데스크 칼럼입력 :2022/10/12 17:03    수정: 2022/10/12 21:27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미디어는 붕괴됐다. 너무도 자주, 속이려 든다.”

2017년 1월 첫 선을 보인 미국 뉴스 사이트 악시오스(Axios)의 출범 선언문에 담긴 말이다. 당돌한 선언문엔 “독자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허덕인다. 가치 있는 뉴스 찾기가 갈수록 힘들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정보 홍수 속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악시오스가 그 방법 중 하나로 내세운 것이 ‘똑똑한 간결함(smart brevity)’이다.

악시소스는 출범과 동시에 굵직한 특종을 쏟아내면서 ‘필독 매체’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임기 만료 직전엔 ‘묻지마 사면’ 특종을 해 워싱턴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놨다. 트럼프가 지난 해 초 발생한 의사당 난동 주범은 자신의 지지자가 아니라 안티파(ANTIFA, 극좌파)라고 주장했다는 특종 보도 역시 악시오스 작품이다.

악시오스를 이끌고 있는 3인방. 왼쪽부터 짐 반더하이, 마이크 앨런, 로이 슈워츠. (사진=악시오스)

하지만 특종 못지 않게 중요한 성공 무기가 바로 ‘똑똑한 간결함’이다.

악시오스 기사는 정갈하다. 모든 기사들은 ‘왜 중요할까(why it matters)’ 같은 핵심 질문들로 구성돼 있다. 읽기 쉽고, 기억하기 쉽도록 구성돼 있다.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된 글쓰기다. 군더더기는 빼고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해당 분야를 간략하고 깔끔하게 정리한 모범생들의 필기 노트. 그게 악시오스가 내세우는 ‘똑똑한 간결함’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다.

■ "모든 기자가 밥 우드워드가 될 순 없다. 그러니…"

‘Smart Brevity’는 짐 밴더하이를 비롯한 악시오스 삼총사가 동명의 히트 상품을 소개한 책이다.

책 내용은 짐작하는 대로다. 모바일 시대에 독자들은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으니, 가능하면 짧고 간결한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쓸데 없는 미사여구 다 빼고,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글을 써야만 통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악시오스는 'smart brevity'를 실현할 수 있는 Axios HQ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기업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참고할만한 책이다. 모바일 시대를 살아가는 기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론 이 책의 논지에 대해선 비판할 부분도 많다. 이를테면 "짧은 게 능사인가? 길고 멋진 글을 읽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지 않는가?”란 의문이 계속 고개를 들었다. “모바일 독자를 너무 단순화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다가 살짝 무릎을 쳤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마이크(Mike)는 열정적이고 재주 많은 기자였다. 하지만 그는 밥 우드워드나 도리스 컨스 굿윈이 될 순 없었다. 우아한 산문을 쓰거나 폭로거리를 잡아내는 건 그가 잘 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는 키보드 앞에서 보다는, 직접 소통하는 데 훨씬 더 재능이 많다." (116쪽)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마이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길고 웅장한 글로 독자를 몰입시킬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을 극히 드물다는 것. 대부분은 글을 쓸 때보다는, 말로 하는 게 훨씬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똑똑한 간결함'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똑똑한 간결함’이 탄생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역시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마이크 앨런이 2007년 폴리티코 기자로 활동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 때 짐 밴더하이는 마이크의 보스였다. 그런데 마이크가 매일 아침 밴더하이에게 보내오는 이메일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아마도 기자들이 매일 담당 데스크에게 보내는 일보 메일이었을 것이다.)

마이크는 매일 아침 ’How can we rock today'란 제목을 단 메일을 보내왔다. 그날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다룰 지 담은 메일이었는데, 그 형식이 아주 기가 막혔다.

전날 취재한 따끈따끈한 뉴스와 인사이트를 담고, 거대 신문들이 보도한 기사 중 액기스를 담아서 보고하고, 전날 취재원에게 들은 내용들을 정리한 메일이었다. 그리고는 오늘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지를 담았다. 때론 재미 있는 얘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짐 밴더하이 등은 마이크의 이메일을 보면서 "이거 물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이게 그들이 폴리티코를 거쳐 악시오스를 만들 때 창안한 'smart brevity'의 모태가 됐다고 한다.

결국 마이크가 온갖 정성을 다해 보낸 '일보 메일’이 매체 혁신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 하나. 기자들에겐 일보 보내는 것 자체가 뛰어난 기사 쓰기 훈련의 출발점이다. 가장 까칠한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니.)

■ '똑똑함'의 출발지점은 선택 

악시오스의 성공 비결에서 중요한 도 다른 요인은 ‘smart’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똑똑한' 간결함일까? 물론 사안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능력과 지식이 중요하다.  똑똑하지 않으면 간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들은 'smart'의 핵심은 ‘선택(selection)’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간결함’은 '자신감(confidence)'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금은 뻔한 얘기지만 결국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의미인 셈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정작 기자들은 '선택'부터 잘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엉뚱한 것에 집중하거나, 그도 아니면 이것 저것 건드리느라 아무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스템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게다. 어쨌든 새겨들을 부분이다.

금언(axiom)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 역시 ‘똑똑한 간결함’의 성공 비결 중 하나다. 악시오스의 기사는 why it matters, between the lines, big picture 같은 항목들로 구성돼 있다. 이런 항목에 따라 그 기사가 왜 중요한 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전체 맥락에서 어떻게 봐야 하는 지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악시오스가 즐겨 사용하는 why it matters 같은 말들은 그 자체로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이 책은 언론사 보다는 오히려 기업 커뮤니케이션 쪽에서 더 응용할 부분이 많을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이메일 쓰는 법부터, 회의진행, 프레젠테이션, 연설,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에서 smart brevity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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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악시오스는 최근 글로벌 대기업인 콕스 엔터프라이즈에 매각됐다. 매각 대금 5억2천500만 달러는 올해 예상 매출(1억 달러)의 5.3배에 이를 정도로 좋은 조건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