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확인한 OTT 파워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몰아서 보기 vs 모여서 보기

데스크 칼럼입력 :2022/08/19 15:30    수정: 2022/08/22 08:4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전국민이 같은 시간에 TV앞에 앉아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요?”

로버트 터섹의 ‘증발’에는 흥미로운 전망이 나온다. 미래 어느 때가 되면 선형적 편성표’에 의존하는 TV 시청 방식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손자/손녀들이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은 시간에 똑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래 학자 특유의 상상력이라고 눙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을 조금만 살펴보면 상상 속 얘기만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미 미디어 소비 생활에도 변화의 물결이 강하게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갈무리) © 뉴스1

■ 미국 TV 시장의 변화…OTT가 케이블까지 제쳤다 

점심 식사를 하면서 동료들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얘기를 하게 됐다. 어제 끝났다고 했더니, 한 동료가 “그 동안 안 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몰아 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깜짝 놀라서 “관심 있으면서 왜 안 봤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한 편씩 보고 다음 화 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너무 지겹다고 했다. 그래서 드라마는 끝나고 난 뒤 몰아서 본다고 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흥미로웠다. ‘본방 사수’나 '모여서 보기'에 익숙했던 그 동안의 미디어 소비 행태를 뒤집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했지만, 특별히 놀랄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시장 수치를 살펴봐도 이런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미디어 전문기업 닐슨(Nielsen)이 오늘 발표한 자료에 변화된 미디어 소비 행태가 잘 담겨 있었다. 

미국 TV로 시청하는 비중 (자료=닐슨)

지난 7월 미국에선 사상 처음으로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가 케이블TV 이용량을 뛰어넘었다.

닐슨에 따르면 7월 미국 TV 소비시간 중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 점유율은34.8%로 집계됐다. 반면 케이블TV 점유율은 34.4%였다. OTT가 케이블 점유율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년 전만 해도 스트리밍 시청 점유율은 28.3%로 케이블(37.7%)에 크게 뒤졌다. 하지만 1년 사이에 스트리밍 이용 시간은 22.6% 증가한 반면 케이블은 8.9% 감소하면서 둘의 순위가 뒤집어졌다.

‘모래시계’나 ‘사랑이 뭐길래’ 같은 고색창연한 드라마에 몰입했던 세대들에겐 이런 변화가 생소할 수도 있다.

SBS 창사 특집극이었던 ‘모래시계’는 한 때 ‘귀가시계’로 불렸다. 본방 사수를 위해 직장인들이 서둘러 귀가하던 세태 때문에 생긴 말이었다.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던 시간에는 수돗물 이용량이 급격하게 줄었다.

그 시절엔 전국민이 같은 시간에 같은 드라마를 보는 게 당연했다. 피치 못할 사람들이나 재방송을 보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시대엔 “드라마 끝났으니 몰아서 봐야겠다”는 말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 '자기만의 스크린'을 갖고 있는 세대의 달라진 미디어 소비 행태 

왜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TV가 ‘아재/아지매들의 기기’로 전락한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OTT들이 변화를 이끌어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한 인기 오리지널 시리즈물을 한꺼번에 전편 공개하면서 큰 바람을 몰고 왔다.

흔히 넷플릭스의 강점으로 탁월한 데이터 분석 능력을 꼽는다. 이용자 분석을 토대로 한 맞춤형 추천이 매력적이란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미디어 소비 행태에 몰고 온 가장 큰 변화는 오히려 ‘몰아보기(binge watching)’였다.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방송 방식 혁신' 덕분에 새로운 미디어 소비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기엔 '자기만의 스크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바일 세대들의 달라진 욕구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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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여러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서 레거시 미디어 시대의 시청 문법인 '모여서 보기'를 뒷전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고 해도 크게 그르진 않을 것 같다. 

점심 때 대화를 할 때는 차마 ‘모래시계 세대'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너무 고색 창연해 보일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OTT 서비스에서 어제 안 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 회나 봐야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