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데이터, 관건은 규제와 활용의 균형"

우리보다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빠른 덴마크, 입법·활용 균형 노력 우리도 받아들여야

헬스케어입력 :2022/06/10 13:19    수정: 2022/06/10 13:39

“법은 기술보다 느리다. 관건은 규제와 활용을 어떻게 적절하게 균형시키느냐다.”

주한덴마크대사관 랜디 멍크 보건의료 참사관의 말이다. 그의 설명에 함의돼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보건의료 데이터’이며, 또 하나는 ‘시간’이다. 특히 덴마크의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구축은 20여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 왔다는 점, 관련 입법도 충분한 숙고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 걸쳐 데이터 기반 4차 산업혁명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더욱 가속화시킨 계기로 받아들여진다. 이 가운데에서도 마이 데이터 분야는 핵심 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보건의료 데이터에 있어 덴마크의 사례 분석은 우리에게 의미가 깊다. 그들이 일찍부터 구축한 선진 시스템이나 입법, 정책 등은 이제 막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우리나라에게 요긴하다고 볼 수 있다.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를 통해 공공연히 보건의료 빅데이터 기반 연구개발을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관련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덴마크 의약청은 지난 2016년 건강보험과 보건의료 정보 공유 협약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덴마크 의약청과 건강정보청 방문 시 의료 마이 데이터에 감명을 받았다”며 “섬세한 차이를 만드는 게 덴마크의 위력”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 치료·약제 사용의 사각지대는 없다

덴마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화가 잘 된 보건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료데이터 구축이 비교적 용이했던 이유는 500만 명 가량의 적은 인구와 출생 시부터 부여되는 고유 통합 아이디번호 등의 활용 덕분이다. 

덴마크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선택할 때 우선 실시되는 것이 바로 환자 식별이다. 어떤 의료기관에 내원해도 환자에게 부여된 사회보장번호로 환자 식별이 가능하다.

환자 데이터 수집은 다양한 경로는 진행된다. 덴마크는 개인정보를 ‘개인에 대해 식별된 모든 정보’로 규정한다. 환자 데이터의 기밀성, 공공보건분야에서의 데이터 활용에 적용될 때는 그의 상응하는 규제가 적용되기 마련. 의료인이 환자 데이터 발송을 해야 할 때는 환자 동의가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서 재밌는 부분은 응급 상황처럼 환자 동의가 어렵고, 이른바 ‘골든타임’에 환자를 살려야 하는 예외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다. 이때 덴마크 의료진은 환자 정보 접속 권한을 갖고, 정보에 접근에 이를 활용한다. 또 약제 부작용을 연구하려는 과학자들 역시 환자 동의 없이도 환자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

토마스 삭슬리드 원장은 덴마크 현지에서 일차의료 주치의로 활동하는 의사다. 그는 덴마크 내 진료와 치료, 환자 이송 등에 있어 현지에 구축된 디지털 플랫폼 기술에 기댄 바가 크다고 말한다.

덴마크의 의료체계에는 1차의료를 담당하는 주치의의 역할은 우리보다 더 크다. 덴마크 의료체계에서 주치의의 중요도는 “환자를 1% 주치의에 더 보내면 종합병원 내원 환자는 10% 감소한다”는 말로 설명된다.

이러한 덴마크의 주치의 제도는 의료 환경 전반에 활용되는 ‘게이트키퍼 시스템’의 힘을 빌려 운용된다. 주치의 중심의 의료시스템은 100% 디지털화 돼 있다. 디지털을 활용한 소통은 상시적으로 진행된다.

‘메드콤(Medcom)’이란 표준 시스템도 현지에서는 활발히 사용된다. 해당 플랫폼에는 환자 이름 및 직업, 연락처, 담당 주치의 등의 정보가 표준화 돼 저장되어 있다. 시스템을 통해 지역 내 전원이 가능한 의료기관 검색 및 환자 전원 진행도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이때 주치의는 환자의 진단명과 약제, 환자 상태 등을 일괄 입력해 전송하게 된다.

‘다이내믹 시스템’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방암 환자의 경우, 병원 진료 이력과 검사 결과가 기록돼 있는데, 환자를 전원 받은 의료진은 과거 환자 상태의 열람은 물론, 추가적으로 바뀌는 환자 상태를 추가 기록할 수 있다.

약제 플랫폼은 각기 다른 요양기관이 환자에게 사용한 모든 약제 정보가 누적 저장된다. 이를 통해 “약제사용 사각지대가 사라졌다”는 게 토마스 삭슬리드 원장의 설명이다. 약제 플랫폼은 의료진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환자의 적확한 치료와 처방을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방 과정은 흡사 쇼핑몰에서 구매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방식과 비슷하다. 의료진은 특정 환자에 대한 처방 시 약의 사용량과 처방 횟수, 새로운 처방전 요청 등을 플랫폼을 통해 입력할 수 있다. 그러면 환자는 처방전을 전달받아 약국에서 해당 약을 조제 받는 방식이다.

환자-의료진 간 소통은 ‘마이 닥터’, ‘마이 메디슨’ 등의 앱을 통해 이뤄진다. 해당 앱을 통해 환자는 주치의에게 직접 연락해 처방전 교체나 진료 예약 등을 진행한다. 해당 앱에는 치료 이력이나 병원 내원 이력, 검사 여부 등의 정보도 포함하고 있다.

관련해 라스 세드린 크넛슨 덴마크 건강정보청 공공의료카드 이사는 ‘공유투약기록(SMR) 시스템’을 통해 덴마크 전 국민의 약 투약 이력이 일괄 관리된다고 설명한다. SMR 시스템은 현지 시스템 기반으로 운영되며, 개인화돼 있다. 의료진은 실시간으로 최신 약제를 검토하고, 사용된 약제 내역은 기록으로 남겨져 관련 대상에게 제공된다.

뿐만 아니다. 진료와 처방 정보 확인, 처방 재발급, 갱신 등이 가능하다. 향후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해 투약 변경 사항 모니터링 및 투약 변경 정보도 제공될 예정이다.

라스 세드린 크넛슨 이사는 “의료기관·의료진·환자는 모두 연결돼 있다”며 “세 연계 주체는 궁극적으로 어떠한 약제가 환자에게 실제 전달되는 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 법과 실용의 간극

이쯤에서 궁금증이 나온다. 덴마크의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한 플랫폼 구축 및 법제화 과정에서 환자 정보 유출 등에 대한 우려는 없었을까? 변호사 출신인 주한덴마크대사관의 랜디 멍크 야콥슨 보건의료 참사관은 “20여 년간 보건의료 데이터의 디지털화가 진행됐다”며 “법과 데이터 활용은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SMR 활용에 있어서도 개인정보보호 이슈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스 세드린 크넛슨 이사는 “덴마크인들이 보건의료 시스템에 대한 정부 신뢰가 높아 시스템 구축 및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다.

랜디 멍크 참사관은 데이터의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시스템 구축 시 환자 정보 침해가 되지 않도록 하되, 환자 정보 접근은 모두 기록된다”며 “이를 통해 환자들은 본인의 환자 정보 접속이 정당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축적된 양질의 의료데이터 뿐만 아니라 높은 ICT기술력 등은 뛰어난 편이다. 다만, 의료법상 의료기관외에 개인 동의가 있어도 제3자 제공이 불가능하다. 또 환자 정보의 관리 주체가 모호하고, 악용 가능성, 정보 주체인 국민 각자가 직접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관련해 지난해 2월 정부는 ‘마이 헬스웨이 도입방안’을 발표, 2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마이헬스웨이 시스템’ 일명 ‘건강정보 고속도로’가 구축 중이다. 핵심은 인프라 구축이다. 제도 개선도 진행 중이다. 정부는 오는 8월 ‘디지털헬스케어·보건의료데이터 진흥 및 촉진법’ 정부 발의를 준비 중이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과제에 포함된 ‘바이오헬스·디지털헬스케어 혁신’을 통해 ▲의료행정 간소화 ▲의료서비스의 본인주도로 혁신 ▲지역사회 중심 의료·요양·돌봄 연계 ▲연구개발을 통한 바이오헬스 성장 인프라 구축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복지부 장영진 의료정보정책과 마이데이터TF 팀장은 “정부는 데이터 저장은 지양하면서 중개시스템을 중심으로 제도와 인프라를 마련하겠다는 방향”이라며 “이를 통해 정제된 데이터를 목적에 맞게 활용토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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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건강정보 고속도로 사업) 참여 의료기관에 어떤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며 데이터를 제공하는 기관은 어떻게 선별할 것인지 고민이 있다”면서 정부 주도 보건의료 데이터 사업 안착을 위해서도 제도 개선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랜디 멍크 참사관은 “입법이 신 기술에 앞서 이뤄질 수는 없다”면서도 규제와 상업적 활용 간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덴마크에서 관련 입법은 개인정보보호와 실용적 활용의 균형에 맞춰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