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1일 서울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개최된 '2022년도 제32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家 오너로서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6년만이다.
문재인 정권 기간 동안 두 차례나 구속 수감됐던 이 부회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대외 경영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이 부회장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에서 영접한 것을 비롯해 대통령실 주관 재계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 대외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어 지난 30일엔 팻 겔싱어 인텔 CEO와 회동하면서 반도체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이 그동안 재판 등의 일정으로 위축됐던 경영 활동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날 감색 정장에 푸른색 넥타이 차림으로 나타난 이 부회장은 "6년만에 경영활동 재계, M&A 계획" 등에 대해 묻는 질문에 말 없이 시상식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호암재단의 호암상은 삼성그룹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의 인재제일과 사회공익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제정했다. 호암상 시상식에는 고(故) 이건희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실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그룹 오너 일가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항상 참석해왔다. 창업주의 뜻을 기리는 의미 깊은 행사인 만큼, 삼성그룹의 중요한 이벤트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5년, 2016년에는 이 부회장만 참석했고, 2017년부터는 이 부회장 또한 불참했다. 이건희 회장의 와병 기간이 길어지고, 2017년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 부회장 외에도 정현호 삼성전자 부회장,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장 사장,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전영묵 삼성생명 사장 등 10여명의 임원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 외에도 수상자 가족, 지인 및 상 관계자 등 약 1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동시에 전 과정을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됐다.
올해 호암상 수상자는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오용근(61) 포스텍 교수 ▲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장석복(60) 카이스트 특훈교수 ▲공학상 차상균(64) 서울대 교수 ▲의학상 키스 정(57) 美 하버드의대 교수 ▲예술상 김혜순(67) 시인 ▲사회봉사상 하트-하트재단 등이다. 수상자에게는 상장과 메달, 상금 3억원씩 총 18억원이 수여된다.
삼성호암상은 올해 제32회 시상까지 총 164명의 수상자들에게 307억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호암재단은 국가 과학기술 역량 육성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2021년부터 삼성호암과학상을 물리·수학 및 화학·생명과학 2개 부문으로 확대했다.
■ 빨라지는 삼성 경영시계...아직은 '피고인 신분' 경영 활동 제약 커
재계에서는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 호암상 시상식 참석 등 이 부회장의 최근 일렬의 경영 행보를 경영 복귀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오는 7월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 밸리에서 열리는 국제 비지니스 회의 '앨런&코 콘퍼런스'에도 이 부회장이 6년 만에 참석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지난 5년간 중단됐던 삼성의 대형 인수·합병(M&A)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매년 7월에 개최되는 '앨런&코 콘퍼런스'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애플 등 글로벌 미디어와 정보기술(IT) 업계 거물들이 참석하는 '억만장자 사교클럽' 행사이며, 초청받은 인사만 참석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이 행사에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참석해 왔으며, 이 곳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비즈니스를 구축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이 부회장은 2014년 선 밸리에서 팀 쿡 애플 CEO와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삼성전자와 애플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스마트폰 특허 소송을 철회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사법 리스크' 등에 묶여 2017년부터 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이 부회장은 이른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다. 지난해 8월 국정농단 사건 관련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부회장은 현재 취업 제한과 재판 리스크 등에 묶여 적극적인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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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공장에 방문한 날에도 이 부회장의 재판 일정이 잡혀 있어 행사 참석을 위해 재판부에 불출석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4월부터 매주 목요일 관련 재판으로 법원에 출석해왔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 제약, 글로벌 산업 재편 가속화, 미·중 갈등 등 각종 어려움 속에서도 시상식 참석을 결정한 것 같다"며 "선대 회장의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국가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