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일대사에 '진짜 일본 전문가'를 기용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

주일대사는 정권의 전리품이 되어선 안 된다

전문가 칼럼입력 :2022/05/16 16:52    수정: 2022/05/16 19:36

염종순 일본 오사카부 특별참여(고문)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 일본 오사카부 특별참여(고문)

50만 재일 한국 국민을 조금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주일대사라는 귀중한 직책을 대선 논공행상 수단으로 사용하지 말기를 바란다.

한일관계는 왜 역대 최악인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위안부합의·징용공 문제 등으로 인해 한일관계가 경색됐다.

자민당 내 극우 정치가들이 일본 정권을 장악한 후 한국 정부에 ‘무조건 과거사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의도적으로 제시해 극한대립을 조장했다. 그 결과 조장된 대립은 일본 극우세력 기반을 공고히 했다.

더구나 아베 정부는 한국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대한민국 핵심산업인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물자를 수출규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수출 중단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일본이 수출한 물자가 북한으로 건너간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였다.

당시 일본 정계는 주요 물자를 수출 금지하면 한국은 반도체 등의 생산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되고, 그 결과 한국경제가 파탄 날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되면 한국 정부가 두손 두발 다 들고 일본 정부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역 제재를 실행했다.

(사진=뉴스1)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정반대로 돌아왔다. 정치적 이유로 경제적 보복을 당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은 한국 대기업들은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해주는 일본 기업에 전폭적으로 의지하던 주요 소재를 서둘러 국산화했고,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던 국내 중소기업들과 협업해 상당량을 국산 소재로 충당했다.

한편, 일본 소재 업계는 일본 정부의 뜬금없는 수출규제로 매출이 곤두박질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한국 경쟁업체들이 급성장함에 따라 앞으로 수출규제 이전 수준으로 수요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요원해졌다.

필자는 일본에 살면서 일본 정관계, 재계 및 언론계 인사들과 만나 양국 정세에 관한 의견교환을 자주 하는 편이라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수출규제 시행 6개월 전부터 듣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행하면 당장 한국기업이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나 이른 시일 안에 수입선 다변화를 실시하면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무엇보다 일본 기업들이 생산량 상당 부분을 한국시장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를 하게 되면 오히려 일본 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또 이를 기회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를 국산화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치기 어린 농담으로 끝날 줄 알았으나 결국 현실이 됐다.

최악의 관계는 최악의 무지의 산물이다.

일본 정부는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것일까?

필자는 일본 정부가 한국기업 기술 수준이나 한국 정부의 대처능력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벌였다고 추론한다. 일본에서 한국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브레인이 없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가령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는 혐한 서적을 집필하고 각종 방송 등에 나가 한국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진실인 듯 떠들어대는 전 주한일본대사 무토 마사토시씨의 한국관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듯도 하다. 적어도 한국대사를 했다는 직업외교관이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고 본인의 지식과 편견 등으로 인한 오해와 확증 편향적인 경향들로 인해 본인조차도 거짓을 진실로 믿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0년 3월 6일 각료회의에서 발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일본 수상관저)

그럼 우리나라 정치가들이나 외교관들은 일본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정치가나 외교관도 일본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믿기엔 너무나도 많은 외교적 오류가 있다.

앞서 이야기 한 수출규제를 일본이 추진하는 것을 몰랐을까? 몰랐다면 정말 정보수집능력이 일천한 것이고 알고도 못 막았다면 이 또한 일본 외교당국자들과 협상을 통해 막아냈어야 할 일을 막지 못했으니 외교적 무능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본래부터 일본과는 서로 이렇게 불통이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역대 정권의 대일외교 형태를 곰곰이 따져보면 겨울연가로 대변되는 일본 내 한국 드라마 붐으로 한일 화해무드가 정점에 달한 김대중 정부 이후부터 한일관계가 서서히 냉각기에 들어갔고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라고 할 수 있는 오늘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

한일 외교마찰은 당연히 아베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일본 우익 급부상과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가 근본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독도 상륙은 독도 존재조차 알지 못하고, 일본 정부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섬이라는 것조차 모르던 수많은 일본 국민에게 독도를 둘러싼 한일 영토분쟁이 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준 꼴이 됐다.

일본 우익세력 의도대로 한국이 일본 영토를 불법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배운 적 없는 평범한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악화한 것이 사실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상륙을 두고 속이 후련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역사적으로도 확실한 우리 영토이며 실효 지배를 하는 우리나라 땅에 굳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상륙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어필할 필요가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일본 측에 시비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한국 정부나 외교관들이 과연 몰랐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냉랭한 한일관계를 이어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오히려 중국에 접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가 미국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주문에 따라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없이 아베 정권과 한일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를 발표해 우리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발을 사는 등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반발해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동한다. (사진=픽사베이)

한일 과거사가 한국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원만하게 처리되기를 바랐던 한사람으로서 안 하느니만 못한 한일위안부 합의로 일본과는 더욱더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양국의 외교적 대립이 격화하는 계기가 된 것에 참으로 속상하고 안타까운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미 사상 최악의 한일관계인 상황에서 기존 위안부합의문제 외에 징용공 배상문제까지 불거졌다.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원만하게 해결해 나가자는 한국 정부 제안에 대해 ‘한일관계에서 역대 최악의 정권이라 여겨지는 아베 총리’의 반한/혐한 정책, 그리고 그 후계자인 스가 요시히데 총리, 그리고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 이르기까지 무시로 일관해왔다.

그러던 차에 한국에서는 진보정권에서 보수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자 시절부터 한일관계 회복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는 판단을 하게 된 일본 정부는 윤석열 인수위가 파견한 정진석 국회 부의장이 이끄는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의 방일을 받아들였고 하야시 외무대신과의 면담, 기시다 총리와의 면담도 성사되면서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취임식에 하야시 외무대신의 참석까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한일관계의 봄은 오는가’라며 많은 일본인이 기대 섞인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필자는 양국정치가의 섣부른 교류와 움직임이 오히려 스스로 발목을 잡아 한일관계 악화가 더 심해지지 않을까 내심 불편하고 불안하다.

얼마 전 필자의 지인인 전 내각부 부대신이며 중의원 의원이었던 후쿠다 미네유키씨의 칼럼을 읽다가 ‘한국과 일본 정부는 입을 모아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이야기하지만 일본은 과거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고, 한국은 과거문제를 말끔하게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고 하는 것이다. 결국 양국의 스타트라인이 달라서 틀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는 구절을 읽고 머리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 국회에서 자주 통용되는 고항논법(ご飯論法)이라는 것이 있다.

주로 아베 총리나 일본의 집권 세력이 야당 국회의원의 추궁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수법으로 법정대학교 우에니시 교수가 작명해 퍼져 나간 말이라고 한다.

고항논법은 갑과 을이 만나서 갑이 을에게 ‘밥은 드셨는가’라고 물으니 을은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갑이 다시 을에게 ‘정말 식사를 안 하셨습니까’라고 물으니, 이번엔 을이 ‘밥은 안 먹고 빵을 먹었다’고 한다.

갑이 을에게 ‘조금 전에 식사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안 했었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따지자, 을은 갑에게 ‘조금 전의 질문은 밥 먹었는가를 물어보길래 난 밥을 안 먹고 빵을 먹었으므로 식사를 안 했다고 했다’고 대답을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사람들과 그 어렵디 어려운 과거사 문제와 영토문제, 그리고 양국의 정치 현안을 다룬다. 따라서 일본과 이러한 중차대한 외교협상을 하는 외교관에게는 고도의 일본어 구사 능력과 일본의 정치경제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2019년 5월 한일 외교장관 회담. 고노 타로 일본 외무대신(왼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하지 않는가. 국익을 다투는 일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어 나가서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것이 외교관이면 상대 국가 언어가 원어민 수준이어야 함은 몰론이고 그 나라 풍습과 역사에도 조예가 깊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해당 국가에서 근무한 경험이나 공부를 한 사람이면 개인적인 인맥도 풍부할 터이니 그 또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이 외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2019년 청융화(程永華)씨의 주일중국대사 퇴임 파티에는 아베 총리도 참석해 축하해주는 등 개인적 친분을 과시했다. 청융화씨의 프로필을 보면 중국 외무성 관료로 일본에 유학해 와코대학(和光大学)과 소카대학(創価大学)에서 학사를 마치고 귀국 후 주일중국대사관에 사무관으로 부임한 이후 참사관, 그리고 공사로 부임해 수년씩 근무했다. 마지막엔 주일대사로 10 여년 근무하는 등 그의 일본근무 경력은 4차례에 걸쳐 24년에 이른다.

또한 재임 중 오우비린대학(桜美林大学), 소카대학(創価大学), 히로시마대학(広島大学)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폭넓은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후임으로 부임한 쿵쉬안유(孔鉉佑) 대사도 부임하기 전 일본 근무경력이 3회에 12년이고 보면 중국 역시 일본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한 외교관 경력관리를 하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는가.

‘진짜 일본 전문가’의 주일대사 임용이 첫 단추다

순망치한이라는 말처럼 미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가장 중요한 국가임에는 틀림없는 일본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진보정권이건 보수정권이건 정권만 잡으면 대일외교의 맨 앞줄에 서야 할 핵심 인물인 주일한국대사로 임명하는 인사 면면을 보면 탄식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주한일본대사로서 필요한 전문성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사를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혹은 선거캠프에 몸담았다고 해서, 혹은 여당 중진이라 해서 논공행상으로 자리 나누기로 임명해왔다. 또 외교전문가인 외교관 출신을 임명할 때도 대부분 일본주재 경험이 몇 년에 불과한 인사를 배치했다. 어찌 케케묵은 양국 갈등을 풀어내고 협력을 끌어 내겠나 싶다.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사진=국회방송 유튜브 캡처)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으로서 한일 양국 협력을 위해 다방면에서 활동해온 필자가 볼 때 한국과 일본은 경쟁하고 대립하기보다는 협력과 교류를 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필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식자들도 그리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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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한 세기가 다가오는 마당에 아직도 과거 일로 반목하고, 또 후손들에게 적대감을 심어줘야 하는 현실을 타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과거사 문제 관련해서 일본 측으로부터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사과를 끌어 내야하고 또 우리 국민을 설득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하다.

부디 새로 탄생한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권처럼 정권 초기에는 화해와 협력을 외치다 종국에는 극한대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끊고 화해와 협력으로 동아시아의 번영을 끌어낼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아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빌어본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