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혁신' 선구자 아이팟, 21년만에 사라지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단종되는 아이팟에 보내는 헌사

데스크 칼럼입력 :2022/05/11 13:07    수정: 2022/05/11 14:4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오늘 한 기사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애플이 아이팟을 단종시키기로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뭐야? 아직도 아이팟이 유통되고 있었나"란 생각이 먼저 뇌리를 스쳤습니다. 잊고 있던 옛 사랑 소식을 들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한 동안 아이팟 판매를 중단했던 애플이 2019년 7세대 아이팟 터치를 내놨더군요. 불과 3년 전에 최신 모델을 내놨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습니다. 

요즘 아이팟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보긴 힘듭니다. 스마트폰이 MP3 플레이어 기능까지 흡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애플 제품 이용자라면 아이폰으로 아이팟의 모든 기능을 즐길 수 있습니다. 사실상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제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단종 소식에 유난히 강하게 반응한 건 아이팟의 상징성 때문입니다. 전 지금도 아이팟이 없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한 애플의 혁신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2001년 아이팟을 처음 공개하던 모습. (사진=애플 유튜브 캡처)

■ MP3 플레이어 시장 석권…아이폰 탄생 밑거름 

아이팟이 처음 나온 건 2001년 10월 23일입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높이 들고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 시장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선언했습니다. “음악 감상이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실제로 아이팟은 시장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당시 MP3 플레이어 시장은 한국 업체들이 선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렵 MP3 플레이어는 기껏해야 노래 몇 십 곡 정도만 담아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팟은 5GB 저장 용량을 제공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움직이는 음악 감상실’이었습니다.

아이팟 터치 제품들. (사진=애플)

아이팟의 가장 큰 장점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유기적인 결합이었습니다. 아이튠즈란 전용 소프트웨어를 함께 내놓으면서 음악 저장과 관리를 엄청나게 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무렵 무단 복제가 횡행하던 디지털 음악 시장의 질서를 바꾸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만으로 제가 ‘아이팟의 죽음’을 애도하는 건 아닙니다. 아이팟은 애플, 특히 아이폰에겐 ‘세례요한 같은 제품’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세례요한은 ‘예수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지금 애플의 간판 상품인 아이폰에게 아이팟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 얘기를 한번 해 볼까요?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은 것은 2007년입니다. 미국 통신사 AT&T를 통해 첫 출시했습니다.

당시 아이팟 터치 최첨단 모델은 아이폰의 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빠진 기능은 ‘통화’였습니다. 오리지널 아이폰은 아이팟 터치에 통화 기능을 덧붙인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2010년 1월 아이폰의 음악, 사진 파일 정리 기능을 소개하면서 “아이팟과 똑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이패드, 애플TV를 비롯한 애플의 이후 혁신 제품들에도 아이팟의 그림자가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회사명에서 '컴퓨터'를 떼어낸 이후 나온 애플 제품의 기초 공사를 담당한 제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아이팟 없었다면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도 태어나기 힘들었을 것"

애플이 아이폰 개발을 결심하게 된 뒷 얘기도 흥미롭습니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 회사에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팟을 중심으로 한 매출이 매킨토시를 비롯한 컴퓨터 매출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애플을 이끌던 스티브 잡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막 영향력을 키워가던 스마트폰 때문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될 경우 아이팟 같은 MP3 플레이어가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잡스는 AT&T에 아이팟을 독점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이팟이 없었다면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란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애플은 2007년 1월 아이폰을 공개했습니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을 공개하면서 '애플컴퓨터'란 회사명에서 '컴퓨터'를 떼내버렸습니다. 컴퓨터 회사였던 애플은 이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정체성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2007년 오리지널 아이폰을 소개하던 스티브 잡스의 모습.

‘아이팟의 아버지’ 토니 파델은 “아이팟이 없었다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도 파델의 이 말에 흔쾌히 동의합니다.

한 동안 잊고 있던 아이팟의 죽음에 제가 유난히 감상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입니다.

‘아이팟의 죽음’을 알리는 애플의 보도자료에도 이런 정서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애플은 “아이폰, 애플워치, 홈팟 미니, 아이패드, 맥, 애플TV 등 모든 기기에 놀라운 음악 경험을 통합했다”면서 “아이팟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전 앞에서 아이팟이 애플에겐 ‘세례요한 같은 제품’이라고 비유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이 비유가 탐탁하지 않은 분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이팟이 21세기 애플의 혁신을 연 선구자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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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잊고 있던 연인’ 아이팟의 죽음이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아듀 아이팟. 그 동안 수고했네. 자네 덕분에 우린 더 큰 혁신을 즐길 수 있었네. 자네는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TV 같은 혁신의 밑거름이었네. 잘 가게.”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