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생명을 건다.
암컷 거미가 교미를 마친 후 짝을 맺은 수거미를 잡아먹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수거미도 가만히 앉아 당하지는 않는다.
교미를 끝낸 수거미가 다리 관절을 접었다 펴 뛰어오르며 총알같은 속도로 암컷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처음 포착됐다.
중국 후베이대학 연구진은 특수한 초고속카메라를 활용, 왕관응달거미(학명 Philoponella prominens) 수컷이 분당 최대 90㎝의 속도로 암컷에게서 뛰쳐나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이 거미 수컷의 몸 길이가 3㎜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키가 180㎝인 남자가 펄쩍 뛰어 1초 만에 530m를 이동하는 것과 비슷한 거리다. 또 수거미는 점프하며 초당 평균 175번 회전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거미는 중족골을 접었다 펴며 유압 장치처럼 힘을 얻어 뛰어올랐다. 거미의 이같은 움직임은 그간 보고되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25일(현지시간) 실렸다.
연구진은 왕관응달거미 300마리가 사는 서식지에서 거미의 교미를 관찰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155건의 짝짓기 중 152건에서는 수컷이 교미 후 빠르게 몸을 날려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미처 피하지 못한 3마리는 암컷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연구자가 탈출을 방해한 수컷 30마리도 교미 후 암컷에 잡아먹혔다. 점프는 수컷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기능인 셈이다.
교미 후 살아남은 수컷들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같은 암컷에 돌아와 교미를 시도했다. 수거미는 교미 중 거미줄을 암컷 몸에 걸어두었다가 나중에 이를 타고 6번까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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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피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하는 마티아스 폴머는 "수거미는 정자를 주는 것 외에 번식에 거의 기여하는 바가 없다"라며 "암컷 입장에선 수컷을 잡아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사이언티픽아메리카에 설명했다.
연구진은 암거미가 수컷의 뜀뛰기 능력을 보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짝을 고를 가능성도 제기했다. 잘 뛰는 수거미와는 거듭 교미를 하고, 못 뛰는 거미는 잡아먹어 좋은 유전자를 남긴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