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뭐 먹었더라?"...오징어는 늙어도 잘 기억한다

더 좋아하는 먹이 먹고자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

과학입력 :2021/08/20 14:35    수정: 2021/08/20 17:31

사람들은 지난 주말 저녁 무엇을 먹었는지 얼마나 잘 기억할까?

일반적으로 특정 사건의 시간과 장소를 잘 기억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반면, 오징어는 나이가 들어도 이런 능력이 감소하지 않는다는 논문이 영국 왕립학회 회보에 발표됐다. 이 소식은 아스테크니카 등 외신을 통해 19일(현지시간) 전해졌다.

인간의 ‘일화기억’(에피소드 기억)은 나이를 먹으면서 쇠퇴하지만, 오징어는 이 같은 일화기억이 노화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에 발표된 논문의 핵심이다. 일화기억이란 개인의 경험, 즉 자전적 사건에 대한 기억을 뜻한다. 이 기억에는 사건이 일어난 시간, 장소, 상황 등의 맥락이 함께 포함된다.

건망증(이미지투데이)

캠브리지 대학교의 알렌산드라 슈넬 교수는 “오징어는 자신이 무엇을, 어디서, 언제 먹었는지 기억하고 이를 사용해 미래에 먹이를 결정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면서 “놀라운 것은 근육 기능, 식욕 상실과 같은 노화의 다른 징후가 나타나도 이 능력(일화기억)은 잃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연구팀은 올해 초 다른 대학팀과 함께 오징어가 덜 좋아하는 먹이를 바로 먹기보다, 조금 기다려서라도 선호하는 먹이를 먹는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학습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보인다는 것도 확인했다. 자기 통제와 지능 사이의 연결이 포유류가 아닌 종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다. 이 실험에서 오징어는 두 가지 다른 먹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생 왕새우를 즉시 먹거나, 기다렸다 선호하는 생 홍다리 얼룩새우(grass shrimp)를 먹는 두 선택이 가능했는데 이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나아가 연구팀은 오징어가 침팬지, 까마귀, 앵무새와 같은 대뇌 척추동물에 필적하는 더 나은 보상을 기다리고, 최대 50~130초 동안 지연을 참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최신 이뤄진 연구는 갑오징어가 어떤 형태의 일화기억, 즉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에서, 언제 일어났는지에 대한 맥락과 함께 독특한 과거 사건을 회상하는 능력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진행됐다. 사람은 4세 무렵 이 능력이 발달하는데, 일화기억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감소한다. 이는 공간과 시간의 맥락 없이 일반적으로 학습된 지식을 회상하는 능력인 ‘의미론적 기억’과는 대조적이다. 인간의 의미 학습은 나이가 들어도 상대적으로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유지된다.

갑오징어(픽사베이)

특정 생물이 일화기억을 갖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특정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이런 일화기억의 확인이 어렵다. 그러던 1998년 캘리포니아 덤불어치가 일화기억을 가진 증거가 확인된 것을 시작으로, 까치나 유인원, 생쥐, 얼룩말, 물고기 등이 일화기억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자들은 동물이 말로 일화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해 이들의 기억을 ‘일화적 기억’이라고 부른다.

일화적 기억은 오징어의 먹는 행동에서도 포착 됐다. 과거 먹는 행동이 미래의 먹는 행동을 최적화할 수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인간은 일화기억의 형성이 해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노화에 의해 해마 기능이 저하되면 일화기억도 떨어진다. 하지만 오징어는 해마가 존재하지 않는 대신 ‘수직 엽’이라는 뇌 구조가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 연구에서도 오징어는 먹이 찾기 행동을 최적화할 수 있고, 과거에 무엇을, 어디서, 언제 먹었는지 등 세부 사항을 기억할 만큼 충분히 똑똑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아가 이번 연구는 ‘일화기억 능력이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을까’에 주목해 실험이 진행됐다. 갑오징어는 상대적으로 짧은 수명(약 2년) 때문에 연구에 적합한 후보였다.

실험을 위해 슈넬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24마리의 일반적인 오징어를 사용했다. 그 중 절반은 10~12개월 사이, 나머지 절반은 22~24개월(사람의 90세 정도)이었다. 모두 해양 생물 연구소에서 사육됐으며 개별 탱크에 보관됐다. 팀은 먼저 오징어가 시각적 신호(흑백 깃발을 흔드는 것)에 반응해 각 수조의 특정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훈련했다. 이어 특정 깃발이 있던 자리에서 1시간 후 오징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먹이를, 다른 깃발이 있던 자리에 3시간 후 오징어가 좋아하는 먹이를 설치하는 훈련을 4주간 진행했다. 오징어에게 ‘언제, 어디에서, 어떤 먹이를 구할 수 있나’를 가르친 것이다. 각각의 깃발이 나타나는 장소는 매번 달랐기 때문에 오징어는 깃발의 색을 보고 얼마나 시간이 경과한 뒤 어떤 먹이가 나타날지를 판단해야 했다.

관련기사

기억(이미지투데이)

4주간의 훈련을 마친 후 오징어가 얼마나 훈련의 기억을 갖고 있는지를 시험하던 중 어린 오징어도, 늙은 오징어도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오징어가 특정 깃발이 있던 자리에 먹이가 나타나는 시간이나 먹이의 종류를 기억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특정 사건을 기억하는 일화적 기억에 관해 오징어가 나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최초로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오징어의 일화적 기억이 노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수직 엽의 능력이 죽음의 2~3일 전까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슈넬 교수는 “이 능력은 야생의 오징어가 어떤 개체와 교미했는지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되고, 같은 파트너와 교미하지 않게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이런 행동은 같은 지역에 사는 광범위한 개체에 대한 유전자 확산을 촉진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