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데이터, 기업 줄까 말까

[이슈진단+]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민간 개방 과거·현재·미래(중)

헬스케어입력 :2022/03/08 11:12    수정: 2022/03/08 17:04

손희연, 조민규, 김양균 기자

문재인 정부는 정권 초부터 보건의료 빅데이터의 잠재가치를 높게 보고, 데이터 활용을 위한 여러 규제 개선을 추진했다. 지난 2018년 범정부 TF와 당정청 협의를 거쳐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 등 '데이터 3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2020년 2월 데이터 3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가명정보 이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공공데이터법 제1조는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데이터의 제공과 활용에 대해 “국민의 공공데이터에 대한 이용권을 보장하고, 공공데이터의 민간 활용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비록 법은 데이터 활용의 문을 개방해놓고 있지만, ‘허들’은 여전하다. 공공의료데이터의 민간 제공 및 활용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고, 제공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계속되고 있다.

사진=픽셀

■ 의료데이터, 심사평가원 제공 ‘승인’·건보공단 ‘미승인’

2021년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사평가원) 공공의료데이터를 요청한 삼성생명·한화생명·KB생명·삼성화재·메리츠화재·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에 대한 제공 승인이 떨어졌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공공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존 보험시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고령자·유병력자 등을 위한 모델개발을 중점 추진할 예정”이라며 “기존에 보장하지 않았거나 보장 시에도 보험료가 높았던 질환 등에 대한 정교한 위험분석을 통해 보장범위를 확대하고 보험료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같은 해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심의위)’는 6개 보험사가 원한 2002년~2019년 기간 동안의 환자 표본 코호트 자료 제공을 미승인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전까지 건보공단은 공익 목적에 국한해 일부 표본 데이터를 제공해왔을 뿐, 보험사에는 제공한 전례가 없다.

건보공단에 표본 데이터베이스(DB) 제공을 요청한 보험사들은 이를 활용한 연구계획서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연구 목적과 활용도는 각자 다르다. 예를 들어 표본 DB를 통해 A사는 한국인에게 맞는 암과 재무 상황을 분석하길 원하고, B사는 특이 질병과 병원 내원 횟수에 따른 새로운 보험 산출 등의 목적을 갖고 있는 식이다.

당시 자료제공심의위는 ‘연구계획서의 부실함’을 들어 의료데이터 제공 미승인 결정을 내리고, “학계의 검증을 거치고 대학‧공공연구소 등과의 협업연구를 통해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라”고 권고했다.

올해 1월 한화생명은 단독으로 대학 연구센터와 공동연구를 통해 연구계획서를 보완하고, IRB 심의를 획득해 건보공단에 의료데이터 제공을 재요청했다. 한화생명 측은 “심의위의 지적 사항을 받아들여 학계와 공동연구를 시행하는 등 ‘공정성’ 확보에 나섰다”며 “시민단체의 주장과 다르게 사전 간담회를 통해 의견 조율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심의위는 같은 달 11일 심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시 2주 뒤인 25일로 심의를 연기했지만, 시민단체 반발 등을 이유로 끝내 심의 소집은 취소됐다. 이후 건보공단은 2월 8일로 예정했던 심의위를 개최하지 않고 가입자·공급자·보험사·시민단체의 순차 간담회를 통해 합의안을 도출한 후 심의를 재개키로 했다.

현재 다른 보험사들은 일단 재요청은 하지 않고 있다. 한화생명 요청 건에 대한 처리 절차를 보고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료정보 기업 제공에 관한 인식 조사. 의뢰 지디넷코리아 (그래픽=송종근 차장)

■ 기약 없는 ‘의견수렴’…승인 부담되지만 미룰 명분도 없어

자료제공심의위 회의가 연기된 데는 시민단체의 반발, 즉 의료데이터 제공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컸다.

앞서 지디넷코리아가 마켓링크에 의뢰해 성인 20대~50대 6천23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의료데이터를 기업에 제공하는 것에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데이터 제공을 반대하는 쪽은 건보공단이 영리 목적을 가진 기업에 민감정보인 의료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 유출 등 여러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보험사는 사실상 건강보험과 경쟁관계인데, 보험회사가 건강정보를 이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건강보험이 약화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반면, 보험업계는 비식별화된 데이터인 만큼 정보 유출의 위험이 없고, 민감 데이터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금융위원회도 데이터 보안에는 문제가 없음을 강조해왔다. 앞서 심사평가원 데이터 제공 승인 당시 금융위는 “데이터가 엄격한 가명처리를 거쳤고, 특정 개인의 재식별이 불가하다”며 “재식별을 시도하면 형사처벌과 과징금이 부과된다”며 ‘안전장치’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일축했다.

또 보험업계는 국내 실정에 맞는,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는 보험을 만들려면 건보공단이 데이터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호주에서 사온 의료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험을 만들어왔는데 한국인의 특성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호주인과 한국인 특성이 100% 일치하지 않는다”며 “(데이터가 제공되면) 한국인에게만 보이는 특이점들을 보험에 녹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주 데이터로 만들어진 보험들은 그간 경험에 따라 보험료율이 조정됐다”며 “건보공단 데이터를 통하면 이 과정이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건보공단)

이렇듯 찬반 양쪽의 입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건보공단의 의료데이터 제공에 대한 시민단체 등과의 의견수렴 절차는 상당부분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심의위 개최일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해당사자 간 합의가 도출되면 심의 재개가 가능하지만 의견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회의를 미룰 명분이 없다. 한 비공개 간담회 참석자는 “(건보공단이) ‘법적 요건이 갖춰진 것(보험사의 자료제공 요청을)을 계속 거부하는 것은 부담되고, (반대 여론을) 이해하지만 심사를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건보공단 관계자도 “(한화생명은) 자료제공 요건을 다 갖춰왔다”며 “(찬반) 양쪽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한쪽이) 반대해야 한다고 그걸 명목으로 안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건보공단의 의견수렴 절차를 지원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보험정책과는 “복지부는 공단의 자료제공 심의위원회가 규정과 원칙에 따라 심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협력할 것”이라며 “민간보험사 대상 데이터 제공과 관련해 현재 공단에서 진행 중인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이 원만히 이뤄질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제공된 데이터도 보안 규정 까다로워 활용 어려워

현재 공공의료데이터는 제공받기도 어렵지만, 제공 및 활용 방식도 까다로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사평가원의 경우, 공공의료데이터를 ‘직접 제공’이 아닌, 사전에 허가를 받은 연구자가 폐쇄망에 접속해 데이터를 분석한 후 그 결과값만을 통계형태로 반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자가 USB를 들고 방문해 데이터를 받는 사실상의 오프라인 자료 열람 방식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감염 등의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진=픽셀

한 보험사 관계자는 “심사평가원의 데이터를 제공받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절차 및 (데이터) 제공 절차가 순탄치 않다”고 말했다. 심사평가원의 의료데이터를 일부 제공받은 보험사들은 아직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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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각각 다른 데이터가 한 곳이 모여 식별이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기 때문에 개선은 쉽지 않다.

더욱이 이러한 제공 방식이 법률에 명시된 방법이라는 점, 상급종합병원 등지로부터 X-Ray나 CT 등 환자 영상정보를 제공받아 의료AI 솔루션을 개발 중인 기업들도 해당 방식으로 분석·개발을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정안 시행 초기 상황에서 의료데이터 제공 방식 개선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손희연, 조민규, 김양균 기자kunst@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