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규제 없는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毒 된다"

[대선기획/학회장에게 정책을 묻다⑥] 도준호 한국방송학회장

방송/통신입력 :2022/02/21 16:38    수정: 2022/02/21 16:48

20대 대선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다. 디지털 강국, 벤처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다. 과학과 기술 분야 부총리급 정부 부처를 약속한 후보도 있다. 학계는 대선 주자들의 공약을 어떻게 평가할까. 또 어떤 공약과 정책을 원할까. 지디넷코리아는 대선기획 차원에서 국내 주요 학회장들에게 대선 후보들의 정책 평가와 바라는 정책을 들어봤다. 이를 차례로 소개한다. <편집자>


대선을 앞두고 미디어 정책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개편’의 요구가 높다. 정부조직부터 규제체계는 물론 산업지원 정책에 대한 논의도 다양한 편이다. 기술의 발전이 빠르고 산업 지형이 역시 빠르게 변화기 때문이다. 또 여론 형성 기능을 가진 미디어의 공공성 논의 중요도도 커지고 있다.

특히 미디어 정책 조직개편 논의는 매번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화두가 됐는데,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현 정부에서는 이 같은 논의가 누적된 측면이 크다.

그런 가운데 한국방송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도준호 교수는 외려 성급한 거버넌스 개편에 우려를 표했다. 전담부처를 세우거나 부처 간 협의 체계를 갖는 방안 이전에 관련 법제도 개편이 우선이란 이유에서다.

도준호 교수는 “ICT의 발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분야는 방송이다”며 “ICT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 개편에 거는 기대가 어느 대선보다 높은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학자로서 개인적으로 바라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있지만, 학회를 대표하고 관련 단체 이해관계도 듣는 입장에서 섣불리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디어 관련법에 수평적 규제체계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의 시점에서 조직개편을 하더라도 동일한 문제가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정부조직 개편 이전에 관련 법제 개편이 선결돼야 한다는 뜻이다.

도준호 한국방송학회장

도 교수는 “아무리 부처가 ICT와 미디어, 규제와 진흥 업무를 분리하고 통합하는 작업을 하더라도 결국 진흥이나 규제법에 의해 정책을 펼치게 돼있는데,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한 거버넌스 개편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입법작업이 서둘러 시행돼야 하고, 정부는 국회와 논의를 거듭하면서 조직을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새로운 기술이 들어올 때마다 부처 간 갈등이 조성되고 업무중복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결국 입법 지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방송학자의 이 같은 진솔한 우려가 선거라는 정치행위에서는 우선순위에 놓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도 교수의 표현처럼 미디어 정책은 부동산이나 금융, 복지와 같이 일반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에서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는 그럼에도 “미디어가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로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영향력 때문이다”며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인식의 틀을 결정하는 것이 미디어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모든 편견과 고정관념, 인식의 범위는 미디어에 의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큰 미디어로 꼽히는 유튜브를 고려하면 선호하는 콘텐츠를 찾아주기도 하지만, 관심사에 대한 의식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각 정당의 대선 캠프에서도 미디어의 영향력에 무거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도 교수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우선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듯이 방송과 미디어에 대한 규제, 진흥 업무가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에, 차기 정부에서는 기능의 통합과 정리가 가능한 콘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상대적으로 미지어 관련 공약을 내놓은 거대 양당 캠프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도 교수는 “양당 후보 모두 나뉘어진 미디어 정책 통괄 전담부처를 신설하겠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ICT와 미디어의 분리와 규제·진흥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국민의힘은 ICT와 미디어를 통합하고 규제와 진흥까지 큰 틀에서 통합하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 안은 ICT와 미디어의 경계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며 “국민의힘당 안은 초거대 미디어 관련 부처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상파와 종편의 인허가와 인사 문제를 합의제 위원회로 두고 있는데, 거대 부처에 비해 공적 영역을 다루는 위원회의 위상과 기능이 너무 빈약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각 대선캠프에는 OTT 정책에 대한 고민을 당부했다.

도 교수는 “방송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영향력도 커지고 대부분이 해외사업자인 OTT라고 생각한다”며 “양 캠프 모두 OTT 정책을 준비 중이지만 현재와 같은 거버넌스 체계에서는 OTT를 법제화하는데 어려움이 예상되기에 거버번스 개편과 법제 마련으로 시급한 OTT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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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수평규제 체계에 대한 논의를 더욱 활발하게 해야 한다”며 “IPTV가 도입되던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됐지만 결국 부처 간 대립과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으로 각론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고 입법화는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는데 제대로 된 법 개정이 마련되지 않아 사업자도 관련 부처도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라며 “하루 빨리 유연한 법제 시스템이 마련돼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동일 시장에서 제도화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