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업 어디에 있나…헤매다 만난 '메타버스'

[메타버스로 출근하는 사람들] ③제페토 크리에이터 '인형새댁'

컴퓨팅입력 :2022/02/21 10:59    수정: 2022/02/22 15:33

메타버스는 인류가 기술로 확보한 새로운 시공간이다. 그곳을 유익하거나 재미있는 내용물로 채워 이용자 시간을 점유하기 위한 기업 간 전쟁이 시작됐다. 그 한편에서는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면서 돈까지 버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일과 놀이의 결합. 새로운 경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새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일상을 엿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사무실 한 곳에서 숨가쁜 오전을 보내고, 점심시간에 잠시 숨을 돌린 뒤 오후 6시를 전후해 귀가하는 그런 하루하루가 이어지는 삶. 그 속에서 소소한 희로애락이 따르는 일상. 취업준비생들이 합격한 회사에 출근하기 전 그려보는 미래가 대개 이럴 것이다.

이런 기대가 충족되는 회사만 있지 않기에 많은 비극들이 생겨난다. 지금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 '인형새댁'(이소담 씨)도 이런 사례 중 하나였다.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회사에 입사했으나, 줄퇴사가 나올 만큼 격무를 요구하는 회사를 다니다 건강을 잃었다. '돈보다 중요한 게 건강'이란 생각을 갖게 되면서 즐겁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나섰다.

여러번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다 메타버스를 접하고 일하는 즐거움을 찾았다.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3D 물체를 조형하는 것에 흥미를 느껴온 성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음에 반가움을 느꼈다. 아이템 제작을 넘어 메타버스 배경의 영상 제작, 맵 제작 등으로도 활동 반경을 넓혔다. 직장인으로서의 경력이 단절된 사실에 걱정했던 적도 있었지만, 가상세계에서 수익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메타버스를 직장으로 고르게 된 사연을 자세히 들어봤다.

인형새댁

회사를 관두고 처음 이씨가 준비한 직업은 웹툰작가였다.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들을 그려내고자 들인 구체관절 피규어가 돌이켜보면 출발점이 됐다. 웹툰을 공부하는 와중에 이 피규어를 보다 사실적인 형태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3D 디자인에 대한 흥미를 느꼈던 지점이었다.

생계 차원에서 번역 프리랜서로도 일하고 있었지만, 결국 두 가지 모두 전업이 되진 못했다. 관심을 가졌던 피규어가 머릿속에 떠올라 그 다음으로 도전한 것이 인형 제작이었다. 하나하나 인형을 제작해 판매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2년여간 인형 제작가로 활동했지만 여기서도 한계가 따랐다. 제작 시간에 비해 적은 판매 수익,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작업이 끼어 있는 점 등이 문제였다.

3D 형태로 무언가를 그려내는 것은 즐겁지만 보다 안전하고, 빠른 시간에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직업으로 발견한 것이 제페토 크리에이터였다.

"주식 방송에서 메타버스를 접했다. 3D 아바타를 꾸미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 전에도 제페토를 써본 적은 있었는데 아바타가 입는 아이템을 만들어 팔 수 있다는 이야기를 솔깃하게 듣고 관심을 가졌다. 당장 아이템 제작을 할 줄은 모르지만 방법만 배우고 나면 남들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작년 여름 몇 달간 정부 지원 증강·가상현실(AR·VR) 수업을 배우며, 여러 방면으로 독학도 한 끝에 제페토 아바타용 아이템들을 제작해 판매했다. 제일 많이 판매된 아이템의 경우 53만원의 수익을 냈다. 플랫폼과 크리에이터 간 수익 배분 비율이 7대 3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판매액은 약 3배 정도인 셈이다. 이씨는 아이템 판매만을 수익 창출 수단으로 삼는다면 매달 수십 개 정도의 아이템을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씨가 제작한 모자

수익 창출 수단으로 접속했지만, 메타버스라는 공간에도 흥미를 느끼면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용자가 됐다.

"일반 사용자라면 '크루'에 가입해보면 좋다. 관심사 등에 따라 크루가 생성돼 있는데 오픈카톡방, 네이버 밴드처럼 소통할 수 있는 기능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접근하면 크루 구성원들과 친목을 다지며 재미를 붙이기 쉽다. 친해진 이용자끼리 새로 나온 맵에 들어가 어울리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유튜브, SNS 피드 등에 올리면서 제작한 아이템을 홍보하는 데에 활용하고 있다."

제페토를 비롯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이 느는 상황이다. 인형 제작가 시절부터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 덕에 강의 요청, 행사용 영상·맵 제작 의뢰 등 메타버스 관련 외주 요청도 많이 받게 됐다. 수익 창출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일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됐다.

"구독자가 어느 정도 있는 이용자라면 외주 요청을 많이 받는다. 제 경우 제페토 외부 채널도 운영해왔던 터라 그런 연락을 받기 쉬웠던 것이 이점으로 작용했다. 외부 채널이 없는 경우라면 꾸준히 활동하다 방학 시기에 열리는 멘토링 프로그램인 '제페토 클래스'를 노려보면 좋다. 멘토로 선발되면 프로그램 과정을 유튜브에 올리게 되니까."

이씨가 제페토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기간은 현재 반 년여 정도다. 여러 방향으로 구직 활동을 해오는 동안 걱정은 없었는지 물어봤다.

"인형 제작가를 관두면서 여러 가지로 회의가 들었다. '직장을 계속 다녔다면 돈도 조금 모았을 거고, 좋아하는 인형 제작은 취미로 할 수 있는 건데 현실성이 없었나' 싶었다. 남편과 얘기했는데 후회하는 건 별 의미가 없고, 경력 단절이 꽤 길어진 마당에 괜찮은 회사에 입사하긴 어려우니 잘할 수 있는 걸 찾는 데까지 찾아보자고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씨와 같은 직업 활동에 도전하기 적합한 유형으로는 기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되 프로그램 공부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꼽았다.

"안정적 생활을 중시한다면 제페토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고려하긴 힘들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거나 한 업무에만 머무르는 것을 숨막혀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맞을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주말에 집중적으로 활동하고 주중에는 들어오는 문의나 트렌드를 따라잡는 정도만 가능할텐데 뭔가 쌓아올리는 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봐도 처음부터 전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남는 시간에 해보다가 점차 비중을 키우는 식으로 한다.


관련기사

강의 수강생을 보면 경력단절여성이 많은데, 디자인에 종사했다거나 꾸미기를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또 컴퓨터를 다루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한 성향이라면 추천한다. 이런 류 분야에 관심도 없고, 모든 것이 영어로 적혀 있는 소프트웨어(SW)를 다루기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면 억지로 도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올해 계획으로 이씨는 제페토 속 가상공간인 '제페토 월드'를 코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아이템 제작에 쓰는 SW인 '3DS 맥스', '마야' 외 게임 개발 도구 '유니티 엔진'도 배워야 한다. 아바타용 패션 아이템과 달리 아직 이용자가 직접 만든 결과물이 흥행한 적이 없는데, 그 성공 사례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