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가 메타버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애플이나 구글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과 연결하기 위한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해 '메타버스 퍼스트'를 선언한 직후 미국 IT 매체 리코드가 내놓은 분석이다. 조금은 엉뚱해 보였던 페이스북의 '메타 변신'이 사실은 절박한 생존 본능에서 나온 조치라는 분석이었다.
페이스북이 회사명을 ‘메타’로 바꾼 건 굉장히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알파벳으로 개명한 구글 사례도 있다. 하지만 구글은 핵심 수익원인 구글과 다른 성장 업종을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산업 때문에 구글의 수익성이 가려지는 것을 상쇄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그냥 회사명을 메타로 바꿨다. 물론 메타 내엔 페이스북 외에도 인스타그램, 왓츠앱 같은 다른 서비스도 있다. 또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같은 미래 성장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리얼리티 랩스도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회사 구성은 구글과는 조금 다르다. 알파벳 산하에는 딥마인드, 칼리코, 웨이모, 구글 피버 등 다양한 독립회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반면 메타는 사실상 페이스북이 전부나 다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북’이란 매력적인 브랜드 대신 ‘메타’라는 다소 생소한 브랜드로 바꿨다.
기업 구조를 명확하게 하려는 구글과 달리 페이스북의 회사명 변경은 ‘철학’과 ‘미래 비전’ 변화와 관련이 있다. 새로운 회사명인 메타에는 세계 최고 소셜 미디어 기업에서 ‘메타버스 선도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 애플의 앱추적투명성 때문에 촉발된 페이스북의 위기
남 부러울 것 없는 페이스북은 왜 한창 잘 나갈때 회사 이름까지 바꾸면서 새로운 비전을 내걸었을까? 3일(이하 현지시간) 메타의 주가가 26% 가량 폭락하면서 벌어진 한바탕 소동에 이 질문의 답이 담겨 있다.
이날 메타는 미국 증시 사상 단일 기업의 하루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 시가총액 2천370억 달러(약 284조 6천억원)가 사라졌다. 오라클, 시스코 같은 대표 IT 기업들의 시가총액에 버금가는 금액이 증발해 버린 것이다.
메타의 축인 페이스북의 기본 비즈니스 모델은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페이스북이 띄워주는 광고는 이용자들의 반응도를 극대화하면서 높은 효과를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 해 애플이 앱추적투명성(ATT) 정책을 도입하면서 이런 비즈니스 모델이 사실상 붕괴됐다. 앱추적투명성은 개인정보를 추적할 때 반드시 이용자 동의를 거치도록 하는 조치다. 방대한 빅데이터를 무기로 최적의 맞춤형 광고를 제공해 왔던 메타에겐 직격탄이나 다름 없는 조치였다. 이용자들이 정보 수집에 선뜻 동의할 가능성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해 애플이 iOS14.5를 출시한 이후 미국 이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이런 우려가 괜한 걱정이 아니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플러리 애널리틱스가 지난 해 5월 조사한 결과 미국 이용자 중 데이터 추적에 동의한 사람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타가 이번 실적 발표 때 "앱추적 투명성 때문에 올해 100억 달러 가량의 매출 차질이 우려된다"면서 이런 우려를 사실상 인정했다.
페이스북의 성장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또 다른 근거는 '이용자의 노령화 현상'이다.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은 '아재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젊은층들은 틱톡이나 스냅챗 같은 새로운 소셜 미디어에 몰려 들었다.
지난 해 4분기 페이스북의 하루 이용자 수가 16년 만에 처음 감소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상 포화 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젊은층이 더 이상 유입되지 않고 있어 미래 성장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보다는 미래 가치에 더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보기에 메타의 투자 가치가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퍼스트'는 호들갑이 아니었다
메타의 분기 실적을 둘러싼 이번 소란은 왜 페이스북이란 ‘세계 최고 브랜드’를 포기하면서까지 '메타버스 퍼스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마크 저커버그가 '플랫폼 독립'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2013년 ‘페이스북 홈’(facebook home)을 내놓으면서 애플과 구글이 지배하는 모바일 생태계에서 독자 노선을 추구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홈은 스마트폰 첫화면을 페이스북 기능에 최적화해 주는 일종의 ‘런처’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홈이 단순한 앱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을 페이스북과 완벽하게 통합해 스마트폰 자체가 페이스북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페이스북의 독립 시도는 실패했다. ‘페이스북 홈’은 iOS나 안드로이드를 대체하기엔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지난 해 '메타버스 퍼스트'를 들고 나온 것도 이런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페이스북이 지난 해 ‘메타버스 퍼스트’를 선언하자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차세대 플랫폼 전쟁'의 신호탄이라고 분석했다. 아예 경쟁의 문법을 바꿔버리겠다는 거대한 야심의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애플, 구글이란 거대 플랫폼의 지배를 받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하기 싫다는 독립선언이란 의미다.
■ 구글과는 너무나도 다른 메타의 현 상황
메타를 구글과 비교해보면 현재 상황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구글 역시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광고가 중요한 수익의 원천이다.
하지만 구글은 두 가지 측면에서 페이스북과는 다르다. 무엇보다 구글의 검색 광고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입력하는 정보다. 이용자들이 뭔가를 찾기 위해 구글 검색엔진에 입력하는 정보가 타깃 광고의 기반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과 달리 동의 절차가 필요 없는 소중한 개인 정보다.
더 큰 차이는 두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구글 역시 iOS에 의존하긴 하지만,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안드로이드란 자체 모바일 플랫폼을 갖고 있다. 게다가 구글은 사파리 브라우저에 자사 검색엔진을 기본 탑재하는 대가로 애플에게 매년 수 십억 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달리 애플과는 비교적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두 회사의 미래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메타는 100억 달러 매출 차질 발표 이후 주가가 26% 가까이 떨어졌다. 1분기 매출 성장률도 3~11%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은 1분기에 23% 성장세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번 호들갑을 통해 저커버그는 ‘메타버스 퍼스트 선언’이 근거 없는 모험은 아니란 점만은 분명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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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틀리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천과 성과다. 메타에서 메타버스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리얼리티 랩스는 2021년 손실액만 100억 달러(약 12조 450억 원)를 웃돌았다. 비교 대상인 알파벳의 기타 부문 손실의 두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과연 저커버그는 이런 단기 압박을 이겨내고 ‘메타버스 퍼스트’란 또 다른 비전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앞으로 2, 3년 동안 저커버그가 풀어야만 할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