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코인지갑 실명제 도입...한국만 갈라파고스 될라

코인원·빗썸, NH농협은행 실명계좌 계약에 따라 정책 도입 준비중

컴퓨팅입력 :2022/01/07 18:08    수정: 2022/01/08 15:13

4대 가상자산 거래소 중 코인원과 빗썸이 본인 소유를 입증할 수 없는 외부 지갑으로 코인을 전송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일종의 코인 지갑 실명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개인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 생성한 외부 지갑으로는 코인 전송이 불가능해질 예정이다. 메타마스크, 마이이더월렛 등 글로벌 인기 지갑 서비스도 여기에 해당한다.

해외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코인 전송을 제한한 전례가 없다. 이에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한국만 동떨어진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코인원과 빗썸이 등록된 외부 지갑에 한해 코인 출금을 허가하는 '지갑 화이트리스트' 정책을 도입한다.

두 거래소 모두 NH농협은행에서 '실명확인 입출금계정(실명계좌)'을 이용하고 있는 곳으로, 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계약 조건에 외부 지갑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도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인원은 이미 홈페이지를 통해 이달 24일부터 등록되지 않은 지갑으로 입출금을 제한한다고 공지했다.

빗썸도 외부 지갑 화이트리스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빗썸 관계자는 "두 거래소가 (코인 출금 정책에 대해) 은행과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안다"며, 외부 지갑에 화이트리스트를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빗썸은 코인원과 같은 날에 은행 실명계좌 계약을 맺었지만,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는 2주 늦었다. 따라서, 코인원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늦게 외부 지갑 화이트리스트를 실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 KYC 안된 지갑으로는 코인 전송 불가...사실상 코인 지갑 실명제

외부 지갑 화이트리스트가 도입되면 거래소 회원들은 등록된 지갑으로만 코인을 전송할 수 있게 된다.

코인원 공지에 따르면 등록할 수 있는 지갑은 반드시 본인 소유 것이어야 하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지갑 서비스 가입 시 등록한 개인정보(이메일 주소, 휴대폰 번호, 이름 중 1개 이상 충족)가 일치하는지 확인 받아야 한다. 반대로 개인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 지갑은 등록할 수 없고, 코인 전송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개인 지갑에 대한 실명제가 도입되는 셈이다.

빗썸 역시 은행과 동일 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와 비슷한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절차를 따르면 해외 거래소로 코인 전송은 불편해지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바이낸스 등 대부분 해외 거래소가 가입 시 본인 식별 정보를 받아 고객확인(KYC)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인지갑이다. 메타마스크나, 마이이더월렛 같은 탈중앙화된 비수탁형 개인 지갑 서비스는 지갑 생성 시 어떤 개인 식별 정보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KYC가 안된 지갑이기 때문에, 이들 지갑으로는 코인 전송이 불가능하다.

■한국, 글로벌 블록체인 생태계서 고립될 우려 제기

업계에서는 메타마스크 등 KYC 안된 개인 지갑으로 코인 출금을 막는 정책이 한국 블록체인 산업을 갈라파고스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체불가토큰(NFT)이나 탈중앙금융(DeFi·디파이) 등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개인지갑 서비스 연동이 필수적인데, 글로벌에서는 메타마스크나 마이이더월렛 같이 KYC가 필요 없는 지갑들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세계 최대 NFT 마켓인 오픈씨도 메타마스크 지갑 없이 이용하기 어렵다.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의 한재선 대표도 최근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해 "국내 블록체인 산업을 제대로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목소리를 냈다. 

한 대표는 "개인 지갑에 KYC를 강제하겠다면, 국내 지갑이야 원하든 원치않든 어쩔수 없이 따라가지만, 메타마스크가 과연 한국 거래소만을 위해 그런 기능을 추가할지 의문"이라며 "블록체인 시장에서 한국은 철저히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고, 어쩌면 블록체인 서비스는 안 쓰고 거래소에서 주구장창 거래만 하는 나라가 될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고 거래소들만 탓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에 필수적인 실명계좌를 발급 여부를 은행이 결정하는 구조에서, 거래소들도 고육지책으로 택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당초 은행은 코인을 이용한 자금세탁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거래소에 코인 입출금을 전면 중단할 것을 요구했었다. 거래소들은 이로 인한 고객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해 추가 협상을 요청했고, 양측이 찾은 절충안이 화이트리스트로 알려졌다. 실제 코인원과 빗썸은 이 문제를 놓고 은행과 협상에 어려움을 겪으며, 실명계좌 발급과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일정이 지체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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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개인 지갑의 자금세탁 우려를 줄이기 위한 기술적 대안이 있는 만큼, 은행과 거래소의 전향적인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목소리 내고 있다.

백용기 체이널리스트코리아 대표는 "KYC를 하지 않는 개인지갑이라도 트랜잭션 분석을 통해 90% 이상의 정확도로 돈 세탁과 관련된 지갑인지 파악할 수 있다"며, "이미 기술적인 대안이 나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만 고립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은 미래지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