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이후 국가 자살률 통계를 보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인 시기는 1975년도이다. 전후 복구와 경제 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사회와 국민이 내몰리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던 시절, 도시에서 20대의 자살률이 치솟았다.
5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또다시 젊은이들의 자살로 인하여 깊은 우려를 하고 있다. 2030세대의 키워드는 생존과 불안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며 가장 짧은 시간 동안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비약했다.
보릿고개를 겪은 노년층과 베이비부머들이 선진국에서 태어나 1인 가구를 이루고 혼자서 지내는 욜로족이 대부분인 MZ 세대의 외로움과 고립감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서 오슬로대학 박노자 교수는 양극화 속의 빈곤, 불안 노동의 증가, 노동시장 진입 실패자로 규정된 이들의 자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타자의 관심과 존중, 소속감 결여가 선진국 대한민국을 자살공화국으로 만들어 심리적 사막 속에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게 우리의 민낯이다.
여기에 더해진 코로나 감염병 위기는 신체질환을 넘어서 정신건강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교가 폐쇄되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취학 전 아동의 분노와 파괴적 행동이 늘고, 초중고생은 자해와 우울,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고 있다.
가정학습과 재택근무, 무급 휴가의 증가로 여성의 가사 스트레스·수입 감소·양육 부담은 아시아 많은 국가에서 젊은 여성의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고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사회의 미래를 10년은 앞당겼다고 회자되고 있다. 1인 사회로의 분화는 더 빨라지고 가족은 해체되어 이제는 효도 시스템이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하고, 장수사회가 되면서 사회 변화는 모든 연령층을 포괄하고 연령대별 차이는 줄어들고 있다.
또한 비대면이 확산되어 무인화가 일반화되어 관계에 대한 우리 생각의 변화가 있어나고, 선택적 대면으로 대인관계를 제어하고 싶은 욕망이 표출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의 회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위기와 파국 상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꿈일까?
새로운 체제와 제도를 누가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로 디자인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회복을 넘은 초회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전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국가는 개인에게 자유와 안정을 제공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기본소득을 포함한 복지지원이 절실하고, 노동시장의 다양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은 능력에 따른 보상을 위한 무한 경쟁에 전력하기 보다는 공동체 의식과 협력을 통하여, 대런 애쓰모글루가 제시했듯이 시민사회의 힘을 키워 국가의 힘과 균형을 이룬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끌었던 세계화는 이제 디지털 시대를 맞아서 지역과 세계, 지역과 지역의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사이버공간을 따라 우리의 효능감과 영향력을 얼마든지 세계 곳곳에 미칠 수 있다. 우리 음악과 드라마, 문화에 열광하는 세계인들은 이제 세계의 중심이 대한민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코로나19로 인하여 전 인류가 공통의 경험을 하는 이때는 우리 사회와 시민이 과거의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fast follower’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 ‘fast mover’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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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룬 문화적 성공에 대한 자신감과 혁신에 대한 수용성이 그 어느 나라 국민 보다 뛰어나고, 국민 모두가 과학상식과 이성적 사고를 키워온 경험이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관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자살에 내몰리는 사회가 아닌 새 희망이 충만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곳을 위해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자.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