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 같은 숫자는 원래 소프트웨어 버전을 표시할 때 주로 사용됐다. 일반인들에겐 소수점 아랫 부분까지 표기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문송족이나 수포자들에겐 특히 당혹스러운 표기법이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표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정책 3.0, 홍보 4.0 같은 방식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개발자들이 주로 쓰던 표기 방식이 일상용어로 자리 잡은 보기 드문 경우다.
그 연원을 찾다보면 15년 전 널리 회자됐던 ‘웹 2.0 열풍’과 만날 수 있다. 참여, 공유, 개방을 기치로 내세웠던 웹 2.0은 오라일리란 미국 출판사가 만든 용어였다. 닷컴 붕괴 이후에도 더 번성했던 아마존, 구글 같은 인터넷 강자의 특성을 분석한 끝에 나온 용어였다.
당시 웹 2.0 열풍은 꽤 거셌다. 너도 나도 웹 2.0을 표방했다. 출판계 뿐 아니라 학계에도 ‘2.0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 15년 전 웹 2.0 열풍, 또 다시 고개드는 웹 3.0 담론
웹 2.0 선두주자로 거론된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들은 그 이후 인터넷의 지배자가 됐다. 참여, 공유의 가치를 담은 페이스북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소셜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웹 2.0 열풍은 딱 거기까지 였다. 웹 2.0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거론됐던 ’열린 인터넷’은 슬그머니 실종됐다. 그 때 이후 인터넷은 구글, 페이스북 같은 강자들의 안마당이 됐다. 그들이 구축한 정원(walled garden)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웹 2.0 열풍 15년 만에 웹 3.0 담론이 고개를 들었다. 웹 3.0은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일부 거대 회사들의 사유물로 전락한 중앙집중화된 인터넷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거론되는 개념이다.
웹 3.0은 블록체인과 분산 기술을 기반으로 한 지능화된 개인맞춤형 웹이란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웹 2.0이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읽기’에서 ‘읽고 쓰기’로의 진화였다. ‘쓰기’가 활성화돼야만 이용자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웹 3.0은 여기에다 ‘소유하기’란 새로운 가치를 덧붙였다. 중앙 집중에서 분산 구조로의 전환도 중요한 명제다. 블록체인은 특정 기업이 절대 독점할 수 없는 기술이란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처럼 블록체인과 대체불가능 토큰(NFT) 같은 기술이 새로운 인터넷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는 것이 웹 3.0의 핵심 비전이다.
웹 3.0 담론이 내세우고 있는 가치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일부 업체들의 ‘안마당’으로 전락한 인터넷을 원래 취지에 맞게 되살려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관심을 끌기 시작한 ‘웹 3.0 담론’은 왠지 불안해 보인다. 또 다른 거품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안드리센 호로위츠를 비롯한 벤처캐피털(VC)들이 웹 3.0 논의에 적극 뛰어들고 있는 것도 수상쩍다. 마케팅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 것 같아서다.
■ 거창한 구호보다 더 중요한 실체적 진실
일론 머스크와 잭 도시가 이런 상황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특히 최근 트위터 최고경영자(CEO)를 사임하고 암호화폐, 블록체인 사업에 올인하고 있는 잭 도시는 “여러분이 아니라 VC와 그 투자사들이 웹 3.0을 소유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그들이 주도하는 웹 3.0은 ‘다른 명칭을 붙인 또 하나의 중앙집중적 인터넷’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소 머스크와 잭 도시에 크게 동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 주장에는 흔쾌히 동의한다.
이제 막 바람이 불기 시작한 웹 3.0 담론에서 ‘웹 2.0에서 맡았던 냄새’가 강하게 풍기는 듯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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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지만, 중요한 건 용어나 구호가 아니라 실천이다. 소수 대형 기업들의 안마당으로 전락한 인터넷을, 모든 사람들의 공간으로 되살려야 한다는 큰 명제에서 논의를 출발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
그건 웹 3.0이나 NFT, 블로체인할 것 없이 모든 용어나 기술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모든 사람들, 특히 업계를 이끄는 사람들이 그 원칙에 좀 더 주목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