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한 지 2년이 넘었다. 국내 기업은 1년도 안 돼 일본산을 대체할 제품을 개발하더니 2년 차에는 수준을 높였다.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을 비롯한 중견기업이 나선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은 협력사 지분에 투자하고 적극적으로 공급받으며 도왔다.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초고순도 불화수소와 감광액(PR·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플루오린폴리이미드) 한국 수출을 제한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10일 지디넷코리아와의 통화에서 “일본이 한국에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한 게 약이 됐다”며 “약이 쓴 만큼 국산화 의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을 준 일본에 고마울 정도”라며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국내 업계가 열심히 국산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수출 규제 3종 모두 국산화
SK머티리얼즈는 지난해 6월 순도 99.999%(5N) 기체 불화수소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시제품을 개발한 뒤로 경북 영주시 공장에 15톤 규모 생산 시설을 지어 국산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양산으로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솔브레인은 99.9999999999%(12N)급 고순도 불산액 생산량을 2배 늘렸다. 반도체 기판인 실리콘 웨이퍼 표면 불순물을 씻어내는 세정 공정과 웨이퍼를 회로대로 깎아내는 식각 공정 등에서 초고순도 불화수소가 쓰인다. 반도체를 만드는 데 불순물이 있으면 불량률이 높아진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불화수소 수입액은 938만 달러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기 전인 2018년 6천686만 달러보다 86% 줄었다. 2003년 738만 달러어치 수입하고서 17년 만에 1천만 달러 아래로 수입액이 떨어졌다.
동진쎄미켐은 지난 3월 불화아르곤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했다. 삼성전자 D램 생산라인에 불화아르곤 이머전(ArFi)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진쎄미켐은 정부가 출연한 연구원과도 손잡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SKC하이테크앤마케팅·동진쎄미켐과 함께 100도 이하 공정온도에서도 픽셀 크기를 3μm 이하로 만들 수 있는 포토레지스트 기술을 개발하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마이크로디스플레이에 적용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국내 기업과 독점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를 받은 회사는 스마트폰 모바일용 OLED 디스플레이 패널에 상용화했다. 포토레지스트는 웨이퍼 위에 회로 모양을 그릴 때 쓰인다. 빛이 닿거나 닿지 않은 부분만 남기 때문에 원하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불화폴리이미드 역시 국산화에 성공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직후 경북 구미시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양산에 들어갔다. 중국 샤오미 폴더블폰에 불화폴리이미드 필름을 공급한다.
부품·장비는 국산화 멀어
기업이 과감하게 나서고 정부가 뒷받침한 덕에 핵심 소재를 빠르게 국산화하고 있다.
2019년 1~5월 소재·부품·장비 16.8%를 일본에서 의존하다가 올해 1~5월 15.9%로 의존도를 0.9%포인트 낮췄다. 정부는 2019년 8월 기술 확보가 시급한 연구개발(R&D)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100개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R&D에 3조원 투자했다.
정부는 올해에도 6천억원 이상 추가 펀드를 꾸려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자금난을 겪지 않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부터 조성한 정책펀드 규모는 1조원 넘는다.
아직 일본산을 모두 대체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일본과의 정보통신기술(ICT) 무역수지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61억 달러 적자다.
특히 부품·장비 국산화가 갈 길이 멀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장비 산업 무역적자가 89억 달러다. 1년 전보다 적자 규모가 51억 달러 늘었다. 일본과의 교역만 보면 장비 산업 무역적자 규모는 1년 새 10억 달러 커졌다. 이 가운데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 무역적자가 28억 달러다.
소재·부품·장비 수요기업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극복하고 있다. SK그룹은 소재를 국산화하는 과정에서 얻은 역량을 중소기업과 나누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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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 관계자는 “투자비나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에 SK가 가진 것을 공유해 업계가 발전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중소기업과 상생하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겠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동진쎄미켐 등 지분에 투자하며 소재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