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출장길에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보고 와서 마음이 무겁다"고 언급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선택은 세대교체와 세트(SET)부문 통합을 통한 미래 준비였다.
삼성전자가 7일 단행한 사장단 인사는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과 미래에 대응하는 이재용의 '뉴삼성'에 방점이 찍혔다. 반도체(DS)·가전(CE)·모바일(IM) 사업 부문장을 모두 바꾸고, 가전과 모바일 부문을 SET(통합) 부문으로 합쳐 기존 3대 사업부문을 2대 사업부문 체제로 정리한 것이 핵심이다. 4년째 유지돼 오던 김기남·김현석·고동진 체제가 한종희·경계현 투톱 체제로 바뀐 셈이다.
□ 가전·모바일→'세트(SET)' 사업부문 출범...왜 통합했나
삼성전자가 이번에 반도체 부문을 제외한 가전과 모바일 부문을 묶어 'SET사업' 단일 사업부문으로 통합한 것과 관련 몇 가지 해석이 제기된다. 우선 이번 통합이 경계가 모호해지는 IT 기술 변화와 이종기기 간의 컨버전스를 통해 시너지를 도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최근 '비스포크' 가전 브랜드가 갤럭시Z 플립3에 적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 측은 "조직 간 경계를 뛰어넘는 전사 차원의 시너지 창출과 고객경험 중심의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 기반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리더십이 단일화되고 모바일과 가전 기기 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결합에 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뉴삼성'의 사업구조 개편과 맞닿은 미래 비전의 밑그림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부품과 세트 부문의 별도 분리를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스마트폰 및 TV 가전으로 대표되는 세트 부문과 반도체·디스플레이 부품 부문을 서로 가치사슬로 엮어 사업을 운용해 왔다. 반도체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세트에서 돈을 벌고, 세트가 안 좋을 때는 반도체가 만회하는 양수겸장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수직계열화된 사업 포토폴리오가 이미 분업화되고 세분화된 글로벌 경쟁 관계에서 얼마나 경쟁력 있게 유지될 수 있을지가 고민의 지점이다. 전세계에서 반도체와 세트 제품 생산을 한 회사가 모두 영위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텔, 퀄컴 등 반도체 회사가 세트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기업들도 자체 대량 생산체제를 갖춰 세트 사업을 하지는 않는다.
전기차 산업에 비유하면 배터리를 공급하는 회사가 완성차도 만들고 있는 격인데, 그동안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협력과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 모두에게 잠재적 이해상충이 존재해 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통해 반도체 패권에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여러 지점에서 견제와 충돌이 많아져서 좋을 것은 없다. 이 부회장이 아마도 이번 미국 출장에서 백악관 인사와 구글, MS 등 글로벌 CEO들을 만나고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논의하면서 이같은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전통적인 가전과 모바일 세트를 합친 것은 장기적으로 급변하는 시장의 위기 대응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부품 공급망에 더 힘을 싣고, 세트 부문은 통합해 글로벌 협력을 확대하고 상품기획이나 개발 단계에서 내부적인 이해관계나 상충관계가를 줄여나가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측은 "과거에도 가전과 모바일 부문을 통합해 운용한 적이 있다"며 "그 당시에도 이같은 해석은 있었다. 처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DMC' 부문으로 가전과 모바일 사업을 함께 합쳤다가 2011년 다시 분리한 바 있다. DMC 부문에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디지털프린팅사업부·생활가전사업부·무선사업부·네트워크사업부·컴퓨터시스템사업부 등 6개 사업부가 함께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DS와 DMC 부문으로 조직을 나눈 것은 부품과 완제품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는 취지다"라고 했다. 부품은 B2B이고 완제품은 B2C사업인 만큼 고객도 다르고 마케팅 방식도 달라서 이원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품과 세트의 향후 분리 개편 여부는 자본 투입과 시장경쟁 구도 등을 고려하면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체 틀을 바라봐야 할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세트와 반도체 부문장을 각각 맡아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뉴삼성'을 이끌어갈 쌍두마차로는 한종희(59) 부회장과 경계현(58) 사장이 낙점됐다. 한 부회장과 경 사장 모두 업계에서 비즈니스 역량과 기술 리더십이 검증된 경영진이다.
이번에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SET(통합)부문장,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게 된 한 부회장은 TV 개발 전문가 출신이다. 2017년 11월부터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아 TV사업 15년 연속 세계 1위를 달성하는 등 리더십과 경영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장 겸 대표이사에 오른 경 사장은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D램 설계, 플래시 개발실장, 솔루션 개발실장 등을 역임하며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또 과거 그룹 미래전략실 출신인 정현호 사업지원T/F장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도 눈에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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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인 대표이사 교체 초강수 인사...후속 임원인사 '주목'
이날 대표이사 전원 교체 인사에 따라 이번 주 후속으로 단행될 임원 인사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미 지난달 5년만에 손질한 인사제도 혁신안을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같이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과감히 중용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인재 등용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021년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부사장 31명, 전무 55명, 상무 111명, 펠로우 1명, 마스터 16명 등 총 214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실시한 바 있다. 사업 부문이 반도체와 세트 등 2개 부문으로 줄어들면서 부문별 별도 조직이 신설될 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