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은 깔끔하다. 접합 나사 하나 찾기 힘들다. 그게 애플 제품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았다. 한번 고장 나면 무조건 애플 수리점을 찾아야 했다. 게다가 수리 비용도 비쌌다. 그나마 집 근처에서 수리점을 찾기 힘든 경우가 태반이었다.
사설 수리점을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애플이 공인 수리점 아닌 곳에서 아이폰 같은 것들을 뜯을 경우 더 큰 고장이 날 우려가 있다고 협박해 왔기 때문이다.
그랬던 애플이 17일(현지시간) 자가수리(Self Service Repair)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했다. 당장 내년부터 아이폰12와 13에 한해 자가 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미국에서만 적용한 뒤 세계 전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대상 역시 M1 맥북을 비롯한 애플 전 제품으로 점차 늘려나간다는 방침이다.
■ "안전문제 우려" 반대해 왔던 애플, 안팎 압박에 결국…
애플은 왜 갑자기 ‘비밀의 문’을 열었을까?
당연히 제기되는 질문이다. 그 동안 애플은 ‘수리권’ 요구 주장이 고개를 들 때마다 “소비자들에게도 좋을 것 없다”고 반박해 왔기 때문이다. 보안이나 고장 우려 등 안전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많다는 애플의 반대 논리였다.
그랬던 애플이 왜 정책을 바꿨을까? 그 사이에 안전문제를 모두 해결한 걸까? 당연히 그랬을 리 없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최근 미국의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월 의미 있는 행정명령을 하나 발령했다. 소비자들이 전자기기를 수리해 사용할 권리를 확보할 것을 촉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행정명령이었다.
이 행정명령은 자가 수리를 제한하는 애플 같은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의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기 위해 마련됐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도 행정명령에 따른 위원회 정책 성명서를 만장일치로 승인하면서 화답했다. 정책 성명서는 FTC의 규제 집행 지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연방정부 뿐만이 아니다. 현재 미국에서 소비자의 자가 수리권 보장 관련 법안을 발의한 곳만 27개 주에 달한다. 전자제품 ‘자가수리권’은 최근 IT 업계에선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수리권 보장’을 요구하면서 애플을 압박했다.
■ 아이폰13 페이스ID 논란으로 한바탕 홍역 겪기도
최근 들어 전자기기 사용자들에게 ‘수리할 권리(right to repair)’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비자들은 돈을 지불하고도 구매한 제품에 대한 소유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자제품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도 수리할 권리 보장은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애플은 많은 사람들의 타깃이 됐다. 소비자들의 중요한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최근 여론 흐름도 애플에겐 불리하게 돌아갔다. 미국 전자기기 자가수리법 공유 사이트인 아이픽스잇(iFixit)은 이달 초 애플이 사설수리점에서 아이폰13 페이스ID를 수리할 경우 기능을 정지시켜버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자 애플은 닷새 뒤 문제가 된 부분을 개선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이런 압박에 직면한 애플은 어쩔 수 없이 그 동안 고수해 왔던 ‘자가 수리 금지’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외신들이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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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 27개 주에서 추진되고 ‘수리권’ 관련 법들이 통과될 경우 어떤 형태로든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 정책 변화에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던 애플이 '수리권 보장' 요구에 사실상 굴복하면서 이제 다른 기업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