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T 강국의 미래’가 걱정되는 이유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전문가 칼럼입력 :2021/11/15 14:37

최종욱 대표이사
최종욱 마크애니 대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IT 강국’이라고 믿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어디서나 빠르게 연결되는 초고속 인터넷, 언제든지 증명서를 출력할 수 있는 편리한 전자정부 서비스만 놓고 봐도 한국은 IT 강국임이 틀림없다. 이번 코로나 상황 속에서는 온라인으로 백신 접종을 신청하고, 잔여 백신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백신 접종 여부를 블록체인으로 일원화하여 관리하는 것을 보면 한국의 IT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늘의 IT 강국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차세대 시스템’이라는 대형 IT 프로젝트와 3D 직종으로 분류됐던 개발자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IT 서비스가 필요한 금융, 공공 서비스, 교육, 의료 현장의 ‘차세대 시스템’ 구축은 IT 업계의 오랜 관행으로 자리잡아왔다. 

차세대 시스템 프로젝트는 5년~7년마다 한번씩 새로운 IT 신기술과 업체의 변화된 프로세스, 사용자들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해서 진행됐다.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요구 조건을 정의하고, 설계하고, 2년 동안 전체 시스템을 완전히 갈아엎는 ‘대규모의 전면 보수’ 작업이다. 워낙 규모가 커서 한 기관에서 실시하는 차세대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시중의 프리랜서들을 모두 한꺼번에 빨아들이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하소연들이 자주 나오곤 했다.

그러나 차세대 프로젝트는 ‘갑을병정’으로 요약되는 고질적인 갑질과 저가 수주, 그리고 IT 업종 종사자들을 끝없는 밤샘과 개인 사생활이 전혀 없는 3D 업종으로 몰아넣은 오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금융기관이나 정부 공공 프로젝트, 대학의 대형 사업을 따내기 위해 대기업 SI 회사들이 저가에 수주하고, 저가로 따낸 사업은 다시 원가를 밑도는 저가에 하청과 재하청으로 이어졌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IT 인력들을 쥐어짜는 관행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차세대 시스템의 오랜 공식이 깨어지고, 3D 업종으로 분류되던 IT 업계가 와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졸 초임 6천만원을 제시하는 ‘네카라쿠배’ 덕분이다. 디지털 서비스 기업들이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왕성하게 확장하면서 IT 인력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DX)이 교육과 제조, 의료, 금융, 사회 전반에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IT 인력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한 것도 한몫 했다.

이런 변화에 기존 대형 차세대 시스템을 지탱하던 저임금 하청 구조도 무너지고 있다. 생산성과 수익성이 훨씬 높은 디지털 서비스 기업들이 높은 연봉으로 실력 있는 개발자들을 흡수하는 상황이다. 외주와 저임금 개발자들에 의존해온 교육, 금융, 공공 기관들은 운영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 

고급 인력이 부족해지면 부실한 IT 개발과 운영으로 이어진다. IT 업계의 빠른 인력 이동이 기존 차세대 시스템 기반 산업들에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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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과 외주에 의지해온 한국의 IT강국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는 두 가지 사건이 최근 있었다. 우선 지난 10월25일 KT의 유무선 인터넷 사고가 터진 뒤, 일주일 지나지 않은 30일 또다른 사고가 터졌다. 실무 역량을 평가하는 'TOPCIT' 시험에서는 도중에 서버 접속 오류가 발생했다. 컴퓨터 기반 평가시스템(CBT)에서 인터넷, 클라우드 기반 통합평가시스템(IBT)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대한민국 전자 정부, 의료 시스템 그리고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IT 강국을 유지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공공, 의료, 금융, 정부기관이 시스템을 구축해오던 예전 방식을 탈피하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 더 이상 저가 하청 구조 외주로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없다. 사회의 중추적인 시스템을 책임지고 개발 운영하고 있는 개발자들에게 저임금과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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