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세대 사이의 선호 성향이 엇갈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많다. 국민의힘 후보가 결정되기는 했지만, 60대 이상에서는 윤석렬 후보 선호 층이 두텁고, 20대에서는 홍준표 의원이 바람을 일으켰었다. 40대와 50대는 국민의힘 후보보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선호도가 좀 더 높다는 조사가 많다. 조사결과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이 글은 여러 세대의 정치 성향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러니 정치를 해석하거나 분석하려는 목적은 더더욱 없다. 다만 인간은 나이에 따라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는지를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는 ‘나잇값 좀 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이 말을 흔하게 듣고 또 쓰는데 대개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들 한다.
‘나잇값’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면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애매하다. ‘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이 있다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나이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야한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든다. 나이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다른 게 과연 옳은 것인지의 문제 하나와 그 다름을 누가 어떻게 왜 규정했는지의 문제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나이에 따라 말과 행동은 반드시 달라져야하는 것인가. 찬반 어느 쪽이든 대답하기가 참 난처하다. 대답 뒤에 따라 붙을, 왜?, 라는 질문에 답할 준비가 미처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름을 당위로 생각하면 그 순간 나이에 따른 차별을 구조화하는 수렁에 빠지게 된다. 노인이나 미성년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거기서 비롯된다. ‘나잇값 좀 해라’는 말은 그래서 구조화한 차별을 통한 폭력이다.
달라질 필요가 없다고 답해도 골치 아픈 건 마찬가지다. 이 경우 인생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과 그 세월을 지나며 쌓아온 무거운 경험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세월과 경험은 우리 몸에 지문처럼 박혀있게 마련이다. 긴 세월동안 몸에 박힌 경험의 지문이 결국에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경험의 지문은 결국 그 사람의 마음이다. 경험만큼 마음은 자라나고 말과 행동도 달라진다.
경험의 지문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나이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당위라기보다는 자연이라고 보는 게 맞다. 문제는 ‘자연’을 ‘당위’로 바꿀 때 나타난다. 그것이 곧 폭력이다. 경험은 기본적으로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인간사회와 거기서 생긴 권력은 그것을 지나치게 집단화하곤 한다. 그리고 집단화된 경험은 ‘사회적 폭력’의 저수지가 된다.
6070은 4050을 빨갱이라 저주하고, 4050은 6070을 개돼지라 지탄하며, 2030은 4050을 위선자라 비판하고, 4050은 2030을 철부지라 힐난한다. 빗발치는 여론조사 뉴스와 저주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댓글을 보노라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전쟁에 동원돼 적군을 향해 난사하는 전사들 같다. 적지 않은 세월 고통스럽게 쌓아왔을 소중한 경험들이 집단화하며 폭력으로 돌변한다.
문제는 인간사회가 개별적 경험을 집단화하려는 경향성을 갖고 있으며 권력은 늘 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개인이 그 소용돌이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누구나 개별적인 우리는 그들에 의해 동원된 총알받이가 되고 내 가족과 내 이웃을 무차별적으로 난사하는 전사가 된다. 알고 보면 잔인하고 참혹한 일이지만 인간은 이 전쟁을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투표 또한 동원된 한 발의 총알이다.
‘나잇값’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은 그래서 바뀌어야 한다. 나잇값은 절대 측량할 수 없고, 특정할 수 없고, 구분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답을 찾을 수 없는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우리는 그 공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강요하며 내 이웃을 향한 총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그 비극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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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은 철부지가 아니다. 40506070과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경험은 ‘멋있는 일’이다. 그 경험을 장려해야 한다. 4050은 빨갱이나 위선자가 아니다. 많은 경험과 관록으로 아픔을 위로하려 할 뿐이다. 위로는 ‘맛있는 일’이다. 6070은 개돼지가 아니다. 돌아올 수 없는 경험과 영광을 아쉬워할 뿐이다. 아쉬움을 달래는 건 ‘향(香)이 퍼지는 일’이다. 모두 다 소중한 경험이다.
멋과 맛과 향은 경험이 마음에 그린 지문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사람에 따라 농도와 색깔이 다를 뿐이다. 그 모든 멋과 맛과 향을 서로 느끼려 한다면 경험은 집단화해도 ‘폭력의 저수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이를 따지는 정치놀음은 이제 그만하자. 나잇값 못한다고 욕먹는 우리 모두에게 비난의 총알보다 따뜻하게 데운 위로의 술 한 잔을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