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봐. 우선 제일 앞에 선 사람이 중요해. 그 사람이 약해보이거나 기가 꺾여보이면은 그땐 이미 승부는 끝난 거야. 제일 뒤에는 마치 배의 닻처럼 듬직한 사람이 맡아줘야 해. 그리고 사람을 배치하는 게 중요한데 줄을 사이에 놓고 한명씩 오른쪽·왼쪽으로 나눠서 서는 거야.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신호가 울리고 처음 10초는 그냥 버티는 거야. 이때 자세는 눕는 자세. 그러면은 웬만해서는 안 끌려가. ‘이상하다, 왜 안 끌려오지’하고 상대편이 당황을 해. 그렇게 버티다 보면 상대편 호흡이 깨지는 순간이 분명히 올 거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주인공 성기훈의 깐부(짝꿍) 오일남이 줄다리기에서 이기는 비결을 설명한 대사다.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은 목숨을 걸고 줄다리기 게임을 했다.
현실에야말로 목숨을 건 줄다리기가 있다. 협상하거나 교역할 때 그렇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9월 말 관보를 통해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인텔 등 세계 반도체 회사에 최근 3년간 매출과 고객 정보, 주문·판매·재고 현황 등을 요구했다. 기한은 11월 8일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들은 난감해하면서도 내도 될 만한 자료를 제출하려고 준비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이 정보 제출을 강제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은 지구 보안관을 자처하면서도 자국 이익을 우선했다. 이번에도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시킨다는 구실로 기업 영업 정보를 요구했다. 비밀에 부치는 계약 내용을 공개하면 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 애플만 해도 비밀 유지 약속을 어기면 계약을 깨기로 유명하다.
미국 정부는 줄다리기 상대를 잘못 찾았다. 공급망을 위해서라면 기업끼리 이어주거나 정부가 나서야겠다면 나라 대 나라로 마주 서야 한다. 마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번 주 미국에 직접 간다.
세계 2대 강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한국은 오일남처럼 전략을 짜 놓아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성기훈 후배 조상우처럼 ‘딱 세 발만 앞으로 가서 상대방을 먼저 넘어뜨리는’ 지략이라도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