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채널사용사업자(PP)-플랫폼 간 유료방송 콘텐츠 대가산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IPTV 측이 사업 정보를 공개할 의사를 밝혔다.
지난 5월 PP-플랫폼 업체 각각이 대가산정과 관련해 앞다퉈 상대 측 주장이 불합리하다고 입장문을 내세우던 때보다 전향적인 태도다.
김혁 SK브로드밴드 미디어플랫폼본부장은 8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실 주최 ‘유료방송 시장 콘텐츠 거래 합리화 방안’ 세미나에서 “지상파, 종편, PP, 홈쇼핑을 포함한 라운드 테이블이 필요한데 이를 통해 우리 회사는 마케팅 비용, 인프라 투자, 서비스 개발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생각이 있다”며 “객관적으로 보고 어떻게 분배하는 게 맞을지 서로 보고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이 말하는 사업 정보는 PP나 정부 측에서 이전부터 요구해오던 것이다. PP 업체들은 케이블TV(SO), IPTV, 위성TV 등 플랫폼 사업자 측에 콘텐츠를 먼저 공급한 후 1년 뒤 사용료를 정산 받는데, 계약 과정에서 플랫폼 측이 시청률, 비용 구조 등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불만이 많았다.
또한 김 본부장은 “ARPU를 높이면 OTT와 가격 역전될까 우려되며, 콘텐츠 제값 받기가 되려면 OTT 요금을 올리거나 IPTV플랫폼에 OTT를 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 PP인 CJ ENM은 IPTV 3사가 채널 수신료 매출과 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 중 16.7%만 지급하고 있으며, 여기에 25%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IPTV 측의 콘텐츠 사용료 비율은 SO나 위성 플랫폼과 비교해도 가장 낮다.
아울러 SK브로드밴드 측은 이른바 ‘선계약 후공급’ 원칙이 방송시장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면서, 다만 평가 기준 등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본부장은 “(지난 1년 동안 유료방송 콘텐츠를 공급받은데 대한) 방학숙제를 1년 안 한거나 다름없다”며 “향후 선계약 후공급 원칙을 따르게 되면 2년 치 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 기준은 플랫폼 평가에 정부 혹은 한계가 제안하는 평가기준들을 반영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에 서장원 CJ ENM 전략지원실장은 “앞서 연초만 하더라도 선계약 후공급에 대해서는 IPTV 등 플랫폼 업체들은 많이 반대했었는데, 입장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어떤 산업에서도 먼저 계약하지 않고 공급하는 것은 살펴볼 수 없다”고 말했다.
콘텐츠 대가산정 문제의 근원 '낮은 ARPU'
학계 "소비자에게 요금 올려받을 이유 분명해야"
이날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플랫폼이 PP에게 충분한 콘텐츠 사용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구조적 원인은 플랫폼 업체 측의 낮은 가입자당매출평균(ARPU)에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유료방송 역사를 살펴보면, 플랫폼 업체들은 저렴한 수신료로 제공되던 지상파 방송에 비해 공급력을 높이기 위해 저가형 상품 위주로 판매해왔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유료방송 ARPU가 현저히 낮다.
서 실장은 “광고 시장이 25% 감소하는 상황은 바꿀 수 없고, 매출의 60%를 광고와 협찬에 의존하고 있어 수신료 쪽으로 회수가 안 되면 콘텐츠를 제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플랫폼이 벌어들이는 수익 중 (시청자가 납부하는 수신료가 아닌)대부분이 홈쇼핑 송출수수료인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혁 본부장 말대로 IPTV 등 플랫폼이 기여 많이 해준 것은 사실이고, 저가 ARPU인 상황에서도 방송 광고로 보전해온 것”이라면서도 “(광고 수입 하락 등) 시장이 변했다는 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건데, 콘텐츠 공급 회수율이 3분의 1밖에 안 되는 상황에서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픈루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PP사업자들의 사업수익성(EBITDA)은 9.00%을 기록했다. 미국 등 미디어 산업이 발전한 해외 국가들과 비교 시 현저히 낮은 수준이고, 비슷한 GDP 규모의 나라들과 비교 시에도 최하위에 머물렀다. 반면 국내 IPTV 사업자들의 EBITDA 마진율은 20.19%로 PP에 비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고 정부가 소비자들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 요금을 걷을 수 있도록 제도화 하기도 어렵다. 이에 학계, 소비자단체 측은 PP, 플랫폼 업체들 모두 이용자들에게 명확한 효용을 주면서도 차별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돈 내는 플랫폼 회사만 바뀔 뿐 콘텐츠는 변한 게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다가는 ARPU를 높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프로그램 수신료를 높일 수 있는 설득적인 구조를 내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대학원장은 “PP가 차별화 해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려 해도 유료방송 규제가 강하다”며 “내년 차기 정부에서 방송법을 개혁한다면 이런 관점에서 편성 규제 등에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어 “(ARPU를 높이기 위해)요금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이라며 “유료방송 플랫폼 수가 적은데 비해 PP 수는 많아 이 시장이 불완전경쟁시장이기 때문에, 정부는 일단 콘텐츠 업체와 플랫폼 양쪽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울어진 유료방송 시장…정부 "시장 개입 조심스럽지만 기준은 필요"
정부 관계자들은 장기적인 유료방송 플랫폼의 ARPU 인상 등을 위해 시장의 회복성을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콘텐츠 대가산정을 위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진흥정책관은 “현재 유료방송 시장의 자정능력은 떨어졌다고 본다”며 “정부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성과를 계량할 수 있는 척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모수를 선정하고, 그 모수에 제한을 두는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양 측 정보 비대칭을 어떻게 합리화 하고 PP 평가 기준을 고도화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배중섭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국장은 “정부는 방송시장이 어느 정도 자율에 맡겨졌던 것에서 콘텐츠 거래 대가와 관련해서는 어느정도 개입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실제 대가를 얼마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관여할 수 없지만 최소한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고, 논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선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콘텐츠대가산정협의회에서 실무적인 초안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며 “방통위, 과기정통부 내부 보고와 사업자 토론을 거쳐 최종안을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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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학계·업계 간 매출 대비 배분율을 산정시 모수 선정에 이견이 많은 상황이다. 가령 현재까지 CJ ENM은 IPTV 사업자들로부터 기본채널 수신료 매출과 홈쇼핑 송출수수료 매출액을 합산한 매출액의 16.7%만 채널 대가로 지급받고 있다. 반면 IPTV 측은 매출 대비 콘텐츠 대가 비중을 산정하면서 콘텐츠 사업자의 프로그램 사용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홈쇼핑 송출수수료를 반영하지 않는다.
김용희 오픈루트 전문위원은 “콘텐츠 사업 매출에 대한 기여분을 인정해 모수를 정한다면 기본채널수신료에서 홈쇼핑 송출 수수료까지도 늘리는 방안도 있다”며 “채널평가를 정량화 할 때도 검증 가능한 항목을 개발해 70% 반영하고, 30%는 사업자가 특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정석적 평가나 협상의 영역으로 둬 시장 역동성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