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을 보면 '메타버스의 미래'가 보인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소셜 네트워크→VR→상거래 의미심장한 행보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17 15:40    수정: 2021/08/19 13:54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메타버스가 세상을 삼키고 있다. 너도 나도 ‘메타버스’를 외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회사 이름 뒤에 닷컴을 붙이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했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전 세계, 우주 등의 의미를 담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공간과 가상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세계를 의미한다.

잘 아는대로 메타버스는 어제 오늘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의 ‘스노 크래시’란 소설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다 지난 해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우리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뜨거운 용어로 떠올랐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사진=씨넷)

그런데 지난 7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5년 내에 메타버스 기업으로 변신하겠다”고 깜짝 선언하면서 또 한번 관심을 모았다.

페이스북이 ‘유행어 비즈니스’에 나선 걸까?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아니 저커버그는 왜 “메타버스 기업 변신"이라는 거대 담론을 던졌을까? 

메타버스는 체화된 인터넷…존재감이 중요하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메타버스의 정확한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흔히 메타버스를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같은 서비스를 메타버스와 동일시하곤 한다.

물론 포트나이트나 로블록스 같은 서비스들이 메타버스의 중요한 요소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메타버스는 그보다 훨씬 큰 의미다.  

잘 아는대로, 메타버스는 물리적 현실과 가상현실의 긴밀한 연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공간에 몰입하는 게 아니다. 현실과 연결된 또 다른 공간으로 존재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공간 안에 AR, VR, 게임, 상거래, 소셜 네트워킹 같은 모든 요소가 들어가게 된다.

저커버그는 더버지와 인터뷰에서 “메타버스는 분산된 방식으로 여러 주체들이 운영하는 체화된 인터넷(embodied internet)이다”고 주장했다. 그냥 옆에서 보는 수준이었던 그 동안의 인터넷과 달리 직접 그 속에 들어가는 공간 같은 존재라는 의미다.

포트나이트를 서비스하고 있는 에픽게임즈 역시 메타버스를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존재감이다. 어떤 공간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만 진정한 메타버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최상의 비전이라면 현실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편안한 존재감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혼동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페이스북이 일찌감치 VR기기 전문업체 오큘러스를 인수한 게 유난히 눈길을 끄는 건 이런 점 때문이다. (물론 이 때는 과몰입이란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배경 지식을 깔고 페이스북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페이스북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큘러스 인수→암호화폐 프로젝트→영화 상영으로 이어지는 페북의 행보 

페이스북은 2014년 오큘러스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잘 아는대로 오큘러스는 VR 기기 전문업체다. 물론 오큘러스 인수는 별 다른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페이스북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에 큰 역할을 한 왓츠앱, 인스타그램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메타버스 기업 변신’ 선언을 지켜보면서 오큘러스 인수가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페이스북에게 오큘러스는 다가올 미래를 구현할 중요한 요소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저커버그는 일찍부터 VR 플랫폼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여 왔다. 2016년엔 VR 플랫폼의 미래를 보여주는 깜짝 쇼를 펼치기도 했다. 

저커버그는 오큘러스 인수 2년 뒤인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열린 갤럭시S7 언팩 행사에 깜짝 등장했다. 그런데 당시 무대 입장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삼성 기어VR에 몰입해 있는 관객 사이로 유유히 등장했다. 

그리곤 “VR은 가장 뛰어난 소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모두가 VR 세상에 몰입해 있는 사이를 유유히 걷는 저커버그의 사진은 '세상의 지배자'를 연상케한다. 

2016년 갤럭시S7 언팩 행사장에 깜짝 등장한 마크 저커버그. (사진=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은 건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견제로 지지부진 하긴 하지만 암호화폐 프로젝트인 '디엠(Diem)’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현실과 가상의 공간, 상거래와 커뮤니티가 결합된 메타버스에선 어떤 ‘화폐’를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다. 전 세계 사용자 20억 명을 웃도는 페이스북 정도 되는 플랫폼이라면 단일 화폐는 꼭 필요하다. 디엠 역시 그런 측면에선 페이스북이 그리고 있는 메타버스란 큰 비전의 한 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또 19일 오후 8시(미국 동부시간 기준) 다큐멘터리 영화 ‘디 아웃사이더’를 상영한다. 요금은 3.99달러(약 4600원)다. 입장료를 지급한 고객들에게 배급사인 아브라모라마가 링크를 보내준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영화를 감상하면 된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패널 토론도 예정돼 있다.

온라인 유료 이벤트(Paid Online Events) 서비스가 되는 전 세계 130개국 거주자는 누구나 영화를 볼 수 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할 수 있는 플랫폼이 얼마나 될까?

이런 여러 이유 때문에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변신 선인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저커버그 "존재감 느끼는 인터넷은 중학교 때부터 꾸던 꿈"

저커버그는 “메타버스는 어느 한 업체가 주도하지 않고, 여러 사업자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저커버그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저커버그의 속 마음엔 “페이스북의 우산 아래 있는 메타버스"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다만 페이스북이 최근 경쟁방해와 독점 기업이란 공격을 강하게 받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그런 수사를 구사한 것 아닐까?

저커버그는 더버지와 인터뷰에서 “중학교 시절 코딩을 시작할 때부터 생각해 왔던 꿈”이라고 털어놨다.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공간으로 쉽게 이동해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물화된 인터넷을 구현하는 꿈을 키웠다고 강조했다.

최근 너도나도 메타버스를 이야기하고 있다. 메타버스 기업을 표방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하지만 페이스북과 저커버그 만큼 분명한 그림을 제시하는 곳은 많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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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커버그는 지금 메타버스란 거대한 비전을 차근 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저커버그에게 메타버스는 페이스북을 처음 만들 때 가졌던 원대한 꿈의 종착점일 지도 모른다. “5년 내 메타버스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선언도 그냥 나온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만들어갈 메타버스가 살짝 두렵기도 하다. ‘나보다 더 내 취향을 잘 아는' 페이스북이 만들어 갈 ‘몰입 가능한 공간’이 몰고올 폐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