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영화 개봉,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선언'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영화 사상 첫 페북 개봉의 의미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04 21:01    수정: 2021/08/05 10:1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코로나19는 영화 산업을 완전히 뒤흔들어 놨다. 블록버스터 대작을 극장에서 개봉하던 기본 문법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젠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개봉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게 됐다.

콧대 높은 아카데미도 넷플릭스에 문호를 활짝 개방했을 정도다.

전통 영화 문법에 익숙하던 사람들에겐 이 정도만 해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페이스북 플랫폼에서 영화를 개봉하기로 했다.

영화 '디 아웃사이더'가 사상 최초로 페이스북을 통해 개봉된다.

페이스북 온라인 유료 이벤트 통해 시청가능 

사상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개봉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 ‘디 아웃사이더’다. 뉴욕 맨해튼의 9·11 테러 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 영화다.

이 소식은 미국의 인터넷 전문매체 악시오스가 특종 보도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일단 보도 내용부터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영화 개봉 시간은 19일 오후 8시(미국 동부시간 기준). 요금은 3.99달러(약 4600원)다. 입장료를 지급한 고객들에게 배급사인  아브라모라마가 링크를 보내준다. 이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영화를 감상하면 된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패널 토론도 예정돼 있다.

페이스북의 온라인 유료 이벤트

페이스북을 활용한 이번 영화 개봉은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온라인 유료 이벤트(Paid Online Events) 서비스가 되는 지역에 거주하는 이용자여야 한다.

‘온라인 유료 이벤트’는 페이스북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핵심은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인앱결제 수수료 면제’다. 현재 온라인 유료 이벤트는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물론 한국도 서비스 대상지역이다.

영화 문법 변화와 페이스북의 미래 전략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

페이스북을 통한 영화 개봉은 ‘영화 산업’과 ‘페이스북의 미래 전략’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첫번째. 영화 산업의 지형 변화.

이번 개봉은 ‘영화 시장의 또 다른 변화’의 신호탄이란 점이다. 이번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엔 페이스북 영화 개봉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를 수 있다.

특히 배급망이 취약한 독립 영화 제작사나 중소 영화사들에겐 해볼만한 시도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이스북이 2023년까지 ‘온라인 유료 이벤트’에서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한 점도 영세 영화 사업자들에겐 솔깃한 조건이다.

영화사들에겐 제작 못지 않게 배급이 중요하다. 국제적인 배급사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런데 페이스북은 전 세계 모든 관객들에게 영화를 배급해줬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사진=씨넷)

‘디 아웃사이더’를 만든 스티븐 로젠바움 감독이 악시오스와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이 없었다면 중소 시장에선 이 영화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고 말한 건 이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두번째. 페이스북의 미래 전략.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이른 시일 내에 페이스북을 메타버스로 변화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달 미국 IT전문매체 더버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번 영화 개봉은 저커버그가 이야기한 ‘메타버스 전략’의 초보적인 형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메타버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이스북의 메타버스 전략, 영화도 중요한 축이 될수도 

메타버스는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전 세계, 우주 등의 의미를 담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공간과 가상의 공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3차원 가상 세계를 의미한다.

물론 메타버스는 저커버그가 처음 사용한 용어는 아닌다.

닐 스티븐슨이 1992년 발표한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 사용됐다. 그러다 지난 해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우리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고 선언하면서 뜨거운 용어로 떠올랐다.

페이스북은 연구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저커버그가 ‘메타버스’란 비전을 던졌을 땐 기본적으로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메타버스 개념을 처음 언급한 닐 스티븐슨의 스노우크래쉬 표지.

간단하게 생각하면, 메타버스는 현실의 삶을 가상의 공간에 옮겨 놓는 것이다. 현실공간과 마찬가지로 서로 교제하고, 게임을 즐기며, 상거래를 한다.

초기엔 그 중에서도 엔터테인먼트가 특히 중요하다. 게임업체들이 메타버스에 한 발 앞서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영화 개봉 역시 그 일환이 될 수도 있다. 한번 생각해보라. 페이스북에서 영화를 성공적으로 개봉했다. 영화를 다 본 뒤엔, 전문가들이 패널 토론을 통해 영화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 재미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각종 캐릭터나 아바타를 판매한다면? 인기 영화 팬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준다면? 배우들과의 만남의 공간을 마련해준다면?

언뜻 생각해도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번에 ‘디 아웃사이더’ 영화를 개봉하는 건 이런 큰 그림을 염두에 둔 실험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이 중소 독립영화 한 편 개봉하는 사건을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하지만 미래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그리고 그 미래의 단서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저커버그의 ‘메타버스 선언’과 연이어 진행되는 ‘영화 개봉 실험’이 별개의 사건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왠지 거대한 스토리 속에 서로 연결돼 있는 두 사건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