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요한슨, 스트리밍 '영화흥행'에 질문 던지다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달라진 흥행 공식 놓고 공방

데스크 칼럼입력 :2021/08/06 09:53    수정: 2021/08/06 15:36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영화 '블랙 위도우' 제작사인 디즈니를 제소한 사건은 여러 모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표면상으론 ‘수익 배분 분쟁’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좀 더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달라진 영화 배급 패러다임을 둘러싼 공방이기 때문이다.

잘 아는대로 요한슨은 지난 달 디즈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 ‘블랙 위도우’ 개봉 때 약속을 어겼다는 게 소송 이유다. 

'극장에서만 개봉'한다는 약속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에서 동시 개봉했다는 것. 이 때문에 거액의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영화 '블랙 위도우'의 한 장면. (사진=디즈니)

스트리밍 동시 개봉 놓고 공방…속내엔 흥행공식에 대한 이견 

주연배우가 영화사와 분쟁을 벌이는 건 드문 일은 아니다. 수익 배분부터 홍보 방식까지 다양한 쟁점을 놓고 수시로 다툰다. 그런데 이번 건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스칼렛 요한슨과 디즈니의 계약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더버지에 따르면 요한슨이 디즈니와 ‘블랙 위도우’ 출연 계약을 체결한 것은 2017년이었다. ‘디즈니 플러스’란 스트리밍 서비스가 거론되기 전이었다. 극장 배급 외 다른 방식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당시 양측은 ‘블랙 위도우’를 “극장에 널리 개봉(wide theatrical release)”하기로 합의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요한슨 측은 ‘wide theatrical release’를 ‘극장에만 개봉’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디즈니는 ‘극장에 널리 개봉’한 만큼, 디즈니 플러스라는 새로운 채널에 개봉하는 건 계약을 위반한 게 아니라고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충분히 주장해 봄직한 논리다.

하지만 이번 공방은 더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블랙 위도우’처럼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동시 개봉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박스오피스 중심으로 계약했던 그 동안의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 동안 감독, 주연배우 등은 영화사와 박스오피스 흥행 실적을 기반으로 수익 배분 계약을 해 왔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영화사 입장에선 초기에 과도한 비용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있다. 또 감독이나 배우가 영화 흥행에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갖도록 하는 효과도 적지 않았다.

감독이나 배우 입장에서도 박스오피스 흥행 실적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 모두가 공감할 흥행 방정식 필요성 커져 

스트리밍 서비스 쪽은 이런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버지에 따르면, 넷플릭스 같은 기업들은 배우들과 계약할 때 ‘고정 출연료’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앞으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에서 동시 개봉되는 대작들이 늘어날 경우엔 흥행을 기반으로 한 계약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방식이 바뀌더라도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성과를 측정할 지표가 애매모호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청 건수는 그나마 쉽게 공유할 수 있다. 그런데 해당 영화가 가입자 증가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평가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들이 이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보장도 없다.

박스오피스를 기준으로 한 흥행 성적은 영화 산업이 자리 잡은 이래 변하지 않는 성과 지표였다. 그런데 스트리밍 서비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 방정식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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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해 관계가 극명하게 대립한 부산물이 스칼렛 요한슨과 디즈니 간의 소송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영화계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다.

어쩌면 그 부분이 이번 소송의 승패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