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인들은 본질적으로 철학자이자 혁명가"

[인터뷰] 조종암 엑셈 대표...'필리노베이터 선언문' 만들어 화제

인터뷰입력 :2021/07/20 09:32    수정: 2021/07/20 14:04

서울 지하철 9호선 증미역 근처에 있는 소프트웨어(SW) 회사 엑셈(EXEM, 대표 조종암)은 데이터베이스 성능 관리(DBPM) 분야 국내 1위 기업이다. 이 회사 사무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게 인상적인 문구다. 회사 설립자인 조종암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는 '필리노베이터(Philinnovator) 선언문'이다.

'필리노베이터'는 철학자인 필라서퍼(philosoper)와 혁신가인 이노베이터(innovator)를 합친 말이다. 일과 직장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이자 혁신가라는 조 대표의 평소 신념이 들어가 있다. 국내서 쓰는 경영 용어는 대부분 영어에서 왔다.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고안(디자인)한 건 드물다. 무언가를 고안한다는 건 창조 영역이다. 사상가의 경지이기도 하다. 건설용 시뮬레이션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한 마이다스아이티의 이형우 설립자도 30년 가까운 기업 경헙을 바탕으로 '자인(자연주의 인본경영)'이라는 개념을 고안, 경영 현장에 접목하고 있다. 

조종암 대표가 2001년 1월 설립한 엑셈은 최근 주 30시간 근무제를 전격 도입,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 대표는 서울대 외교학과(84학번)를 졸업하고 포항제철 정보시스템 개발자와 한국오라클 DB 컨설턴트를 거쳐 엑셈을 설립했다. '엑셈(EXEM)'이라는 회사 이름은 '전문가 제국(EXpert EMpire)'을 뜻한다. 코스닥 상장사인 엑셈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연결 기준 각각 392억과 96억을 기록,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도 작년 실적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9월에는 마곡에 새 사옥을 완공, 입주한다. 마곡 사옥에 대해 조 대표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건물을 설계한 사장이 있구나 하며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에게 '이노베이터'란 무엇인지, 또 마곡 사옥과 올해 경영 전망은 어떤 지를 들어봤다.

조종암 엑셈 대표. 상장사인 엑셈을 2001년 1월 설립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조 대표 사무실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필리노베이터'라는 새로운 경영 개념을 제시했다. 필리노베이터가 무엇인가?

"영감을 준 선배 경영자가 있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이형우 대표다. 이 대표가 쓴 '기술자의 길'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한동안 '기술자의 길'을 우리 사무실 정문에 걸어 놓았다. 그러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필리노베이터 선언문'을 2019년 11월 완성, '기술자의 길' 대신 걸었다. 지식 분야에 종사하는 SW산업인 모두는 혁신가이자 철학자다. 그래서 모두가 필리노베이터다."

-SW인들 모두가 혁신가라고?

"인간이 어디에서 왔나? 무기물, 물질에서 왔다. 이후 불과 도구를 만드는 등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지금은 인간이 물질에 지능을 입히는 단계까지 왔다. 스마트폰, AR 안경 등 디바이스들이 사람의 생각과 같아지고 있는 거다. 물질에 지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물질에 지능이 들어가면서 지능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더 이상 지능이 사람한테, 나한테 갇혀 있지 않게 됐다. 물질, 디바이스로 옮겨갔다.

이게 흔히 말하는 초연결이다. 또 내 기억 속에 있는 거랑 디바이스랑 똑 같아 지는 것, 이게 싱귤래러티(특이점)다. 물질에서 진화한 우리가 아이러니하게 다시 물질에 지능을 입히고 있다. 사람이, 내가 외부의 물질에 지능을 입히는 것, 이게 혁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 생각이 없는 물질(디바이스)에 지능을 입힌다는 점에서 SW산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위대한 혁명가다."

-SW산업인들이 철학자라는 건?

"철학자가 뭐하는 사람인가? 내가 누구이며 왜 사는지 삶의 본질을 찾는 사람이다. 삶의 본질은 기록이고 지식이다. 우리가 세종대왕을 어떻게 아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결국 기록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다 철학자다. 철학의 이유가 세상이 뭔지 아는 건데, 세상은 기록이고 기록의 정수가 지식이다. 지식을 통해 우리는 건물도 짓고 세상을 만들어간다.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는 철학자다. SW인들은 본질적으로 혁명가이기도 하다. "내가 본질적으로 철학을 하고 있고, 혁신하는 혁명가구나" 하는 걸 SW산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 이걸 깨달으면 일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필리노베이터라고 깨달으면 일하는 방식이 어떻게 달라지나?

"출근할때부터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의미와의 싸움이다. 어떤 의미를 깨달을 때 희열을 느끼고 사람이 달라진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에서 나의 삶의 완성을 느껴야 한다. 이런 역사적, 우주적 의미를 발견했는데 가슴이 벅차지 않겠나. 내가 하는 일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면 행동이 달라진다.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물질 세계에 휩쓸려간다."

-일의 의미를 강조하니 '왜 일하는 가'와 '카르마 경영'을 쓴 이나모리 가즈오 일본 교세라 창업자가 떠오른다. 직원 모두가 일에서 의미를 찾는 필리노베이터가 될 수 있나?

"물론 직원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한 회사에 20%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회사가 발전하고 성장한다."

-필리노베이터를 주제로 책도 출간한다고 들었다. 언제 나오나

"연내 출간하려고 준비중이다."

-최근 주 30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화제를 모았다

"이제 한달쯤 됐다. 직원들 반응은 좋다. 우리는 SW기업이고 SW는 지식 분야다. 기술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전문가가 되려는 욕망이 있다. 성장 갈망도 크다. 이런 사람들에게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라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었다. 

조종암 대표.

오전 9시라는 빽빽한 출근 시간에 맞추다 보면 에너지 낭비가 심하다. 출근만으로 방전이 된다. 반면 출근 시간을 한 시간만 늦춰도 여유가 생긴다. 창 밖을 볼 수 있고, 한강을 건넌다면 강을 볼 수 있다. 그 전에 안보이던 것들을 볼 수 있다. 이전에도 우리는 출근은 오전 9시 30분, 퇴근은 오후 5시 30분이였다. 주 30시간을 시행하면서 출근과 퇴근을 각각 30분 씩 더 늦췄을 뿐이다. 주 30시간을 시행해보니 이전과 다른 정밀한 프로세스와 시스템이 필요하더라."

-상장사이기도 하고 결국 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말해야 한다. 작년에 최대 매출과 이익을 거뒀다. 올해 전망은 어떤가

"소폭 성장하거나 작년 정도 할 것 같다. 작년에 연결 기준 매출과 이익에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올해도 영업 이익은 작년 만큼만 달성해도 괜찮을 듯 하다. 아직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같은 신사업 분야에서 고객이 지갑을 열고 있지 않다."

-민간과 공공간 매출 비중이 어떻게 되나. AI 등 신규 사업 매출은?

"우리 매출은 대부분 민간에서 나온다. 공공은 10% 안팎이다. 공공에서 클라우드 수요가 최근 많아져 대기업과 협력하려 하고 있다. AI를 이용한 지능형 관제는 시중은행 두 곳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능형 관제 분야는 우리가 가장 잘한다고 생각한다. 관제 시장에 플레이어들이 많은데 지능형 관제 시장은 결국 우리한테 올거다. 지능형 관제를 위한 데이터를 우리가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AI도 오래전부터 투자했다."

-해외 법인 현황과 실적은 어떤가

"미국과 중국, 일본에 법인이 있다. 외형상 큰 변화는 없고, 확산 기회를 보고 있다. 그 계기가 사스(SaaS)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SW를 서비스로 공급하는 사스는 기존 SW와 판이 다르다. 글로벌 스탠더드고 기술 지원을 본사가 직접 할 수 있다. 마곡에 짓는 새 사옥에도 클라우드 시설을 크게 갖춘다. 지상 8층 건물 중 한 층을 클라우드와 서버실로 꾸민다. 엑셈이 만든 클라우드 실에서 한국의 유수 기업뿐 아니라 세계 각국 기업들을 우리 손으로 원격 관리한다고 생각해보라. 가슴이 벅차고 팔닥팔닥 뛴다."

-소프트웨어를 서비스로 공급하는 사스(SaaS)시대다. 엑셈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우리가 개발한 클라우드 통합 관제 솔루션 ‘클라우드모아(CloudMOA)’ 먼저 사스 버전으로 한달전에 내놓았다. 10여개 기업이 테스트중이다. '클라우드 모아'에 이어 DB성능 관리 솔루션 ‘맥스게이지(MaxGauge)’와 E2E(End To End) 거래 추적 솔루션 ‘인터맥스’도 올해 안으로 사스 방식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맥스게이지'는 종류가 오라클, DB2, 티맥스 등 6가지고, '인터맥스'는 두 종류를 현재 공급하고 있다. 현재 우리 제품은 기업 규모가 어느 정도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데 사스로 내놓으면 소규모 기업도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전문 빅데이터기업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데...

"빅데이터 통합 관리 솔루션 '플라밍고'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플라밍고’는 지난 20년간 기업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분석하며 축적해 온 엑셈의 빅데이터 기술과 노하우를 총 동원해 만든 제품이다.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저장, 분석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한다. 빅데이터 전문 지식이 없어도 '플라밍고'를 활용해 손쉽게 빅데이터를 통합 및 관리할 수 있다. 한전과 에너지공단 등 에너지 관련 기관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며 축적해온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개발했다."

-마곡 사옥에 대해 말해달라. 독특하게 짓는다고 들었다.

"지난 3월 2일 착공식을 했다. 완공 예상 시기는 내년 9월이다. 지하 1층에 지상 8층 건물이다. 규모는 5700평(1만8843미터제곱)이다. 공간의 주인은 사람이다. 사람을 생각하며 수많은 연결과 관계를 담으려 한다. 우리가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은 다시 우리를 만들거다. 머물고 있는 곳을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다. 이런 철학을 담아 짓는다."

-새 사옥의 특징을 몇 가지 말한다면

"건물은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화장실이다. 건물 인상과 그 회사의 격은 이 세 가지에 달려있다. 주차장 입구가 좁고 공간이 빡빡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자 화장실은 확 터진 유리 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할 거다. 예전에 강남의 어느 건물을 방문했는데 여기가 그렇게 돼 있더라. 너무 좋았다. 이런 구조의 화장실은 쉼터가 될 수 있다. 볼 일을 보면서 쉼을 얻는, 한단계 늦춰가는 브레이크 포인트가 될 수 있는 거다. 비상 계단도 다른 건물과 다르게 만든다. 지금의 비상 계단은 비상한 상황 이외에는 죽은 공간이다. 문제가 있을때, 고민이 있을때, 비상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고민을 풀고 운동도 하는, 그런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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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공간도 독특하다고 들었다

"협업과 소통을 고려해 업무 공간을 설계했다. 업무 공간은 4~7층의 네 개 층을 사용한다. 층이 달라지면 사람이 격리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미국 글로벌 기업들은 건물을 평평하게, 횡으로 쫙 펼치는 구조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구조로 건물을 지을 수 없다. 그래서 4개의 업무 공간을 하나의 공간처럼 설계했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고, 계단을 특화했다. 특히 커피를 마시거나 회의를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오작교'라 명명한 공간을 만들었다. 여기를 거치지 않으면 커피를 마실 수 없고 회의를 할 수 없다. 모든 직원이 하루에 한번은 서로를 보게 하고 싶어 오작교를 만들었다. 가운데가 뻥 뚫려 있으미 전 직원 미팅이나 전 직원이 참여하는 행사를 할때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