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형 쇼핑몰 화장실 앞에서 한 여인이 쪼그려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곁의 유모차에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오가는 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꼴에 옷은 좋은 것을 입었네.” 여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도 숟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딱 소리를 내면서 플라스틱 숟가락이 부러졌다. 여인은 두 동강이 난 숟가락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손으로 밥을 움켜쥐고는 입에 쓸어 넣기 시작했다. 밥알을 씹느라 얼굴은 일그러지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두고 국회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전 국민에게 주자는 쪽과 소득하위 80%에게 선별 지급을 하자는 쪽 사이의 견해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스웨덴 웁살라대학의 요아킴 팔메 교수에게 사회보장을 위한 지급 방식을 물어본 적이 있다. 팔메 교수는 스웨덴 복지모형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금을 내는 다수는 이렇게 세금이 사용되는 데 불평을 할 수 있지만, (선별지급을 하면) 대상은 그 사회의 소수자로 전락시켜 정책 효과를 약화시킨다”고 했다.

영화 ‘희극지왕’(1999년)에서 삼류배우 사우(주성치)는 출연 배우에게 나눠주는 점심밥에 집착한다. 흰색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풀풀 날리는 밥 한 덩어리와 간장 몇 숟가락, 고기 몇 점이 전부인 초라한 한 끼를 갈구하는 그에게 누군가 비웃으며 말한다. “밥은 배우만 먹을 수 있다.” 사우에게 밥은 그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행위였던 것이다.
돈은 밥이다. 밥은 생존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생계형 범죄 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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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세상의 모든 밥이 개별성과 보편성을 갖는다고 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만들어낸 결핍은 개별적이겠지만, 이를 채워주는 행위는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난지원금이 누군가에게는 요긴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한 끼 이상의 의미가 될 수 있다.
돈은 밥인 동시에 생존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재난지원금이 누구에게 더 절실한지를 따지는 것은 그래서 좀 치사하다. 국회에서의 설전이 화장실 앞에서 밥을 먹던 여인을 향한 조소와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