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론의 두 얼굴…리나 칸 FTC 위원장과 이준석 대표

[김익현의 미디어 읽기] 젊음 보다 더 중요한 '새로운 비전'

데스크 칼럼입력 :2021/06/22 11:33    수정: 2021/06/25 15:01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론의 효시는 ‘40대 기수론’이었다.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 김씨’(김영삼, 김대중)가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40대의 참신함으로 유진산으로 대표되는 구태 정치를 일소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한국 정치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됐다.

최근 30대인 이준석 씨가 제1 야당 대표가 되면서 또 한번 세대교체론이 소환됐다. 이준석 대표가 어느 정도 변화를 이끌어낼 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나이는 진정한 세대 교체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신선한 비전’이란 충분조건이 뒤따라야만 진정한 세대교체를 이끌어낼 수 있다.

리나 칸, 독점금지법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

그런 측면에서 미국의 최근 행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압권은 32세 이민자 여성인 리나 칸을 ‘경제 검찰’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임명한 사건이다.

리나 칸의 물리적 나이는 젊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더 젊다. 새로운 시대 정신을 대표하기에 부족함 없어 보인다. 

최근 미국 정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거대 IT기업 독점 규제다.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독점 횡포를 적절하게 견제할 묘안을 짜내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리나 칸 FTC 위원장

리나 칸은 이 문제를 누구보다 깊이 탐구한 인물이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알린 것은 예일대학 로스쿨 재학 당시 쓴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논문 때문이었다. 이 논문에서 칸은 미국의 독점금지법이 21세기 IT 기업의 경쟁 방해 행위를 규제하기엔 너무 낡았다고 비판했다.

리나 칸이 FTC 위원으로 지명될 때부터 언론들은 이 논문을 많이 거론했다. 바이든 행정부 경제 검찰의 칼날이 어느 쪽을 향할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논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카 칸이 관심을 끄는 건 그 논문 때문만이 아니다. 2019년 ‘하버드 로 리뷰(Harvard Law Review)’에 쓴 ‘정보 수탁자의 비관적 관점(A SKEPTICAL VIEW OF INFORMATION FIDUCIARIES)’이란 논문에는 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부분은 IT 전문매체 프로토콜이 잘 지적했다.

미국 FTC 본부.

프로토콜에 따르면 리나 칸은 콜롬비아 로스쿨 교수인 데이비드 포즌과 공동 저술한 이 논문에서 소셜 미디어 경영자들을 중고차 거래상에 비유했다.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개인 맞춤형 광고로 돈을 버는 한 ‘프라이버시 퍼스트’ 전략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특히 그는 이 논문에서 '정보 수탁자(information fiduciaries)’ 개념에 대해 비판한다. 이 개념은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잭 볼킨이 대중화시킨 용어다. 사람들의 플랫폼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다양한 개인 정보를 제출하는 만큼, 피해를 막기 위해선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수탁자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게 핵심 골자다. 

그런데 리나 칸 교수는 이 이론이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은 주주들에게도 수탁자 의무를 갖기 때문이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무다.  

수탁받은 이용자 데이터에서 최대 가치를 뽑아야 하는 의무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프라이버시 보호’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개인 맞춤형 광고를 주 비즈니스 모델로 갖고 있는 소셜 미디어들은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와 '가치 극대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는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한국의 30대 당 대표는 어떤 비전을 보여줄까 

이런 논리가 왜 중요할까? 그 동안 미국 독점금지법은 ‘경쟁 방해 행위’를 판단할 때 소비자 이익이 중요한 잣대가 됐다. 그리고 소비자 이익을 판단하는 잣대 중 하나는 '가격'이었다. 20세기 초 석유나 철도 기업들이 카르텔을 형성한 뒤 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세기 독점 기업들은 그런 횡포와는 관계가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소비자를 편리하게 해 준다.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공짜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관심 가질만한 광고도 딱 알맞게 띄워준다.

그 대가로 소비자들은 ‘프라이버시’를 포기해야만 한다. 전통적인 독점금지법은 이 부분을 제대로 규제할 수가 없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지난 13일 오전 서울 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리나 칸은 독점의 폐해를 판단할 때 가격이 유일한 잣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IT 기업 독점이 소비자들에게 입히는 피해는 좀 더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그는 지금 미국에서 ‘신선한 30대 경제 수장’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어린 나이란 필요 조건에다 ‘새로운 시대 정신’이란 충분 조건을 함께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 모처럼 ‘세대 교체론’이 거론되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20년 이상 계속된 ‘386 주도 시대’에 정면 도전하는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세대 교체론에서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다. 나이에 걸맞은 비전과 철학이다. 

리나 칸에게선 그 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구세대의 독점 규제 논리와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새로운 비전이다. 물론 더 중요한 건 이 철학을 현실 정치에서 제대로 구현하느냐다. 앞으로 관심을 갖고 그 부분을 지켜보려 한다. 

그 점에서 한국의 30대 야당 대표 이준석은 조금 아쉽다. 그는 아직까지 새로운 시대 정신을 제시한 적 없다. 참여금지법이나 젠더 문제 같은 중요한 사안에서 '젊은 세대 다운' 신선한 감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회한 전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진정한 세대 교체의 기수가 되기 위해선 '나이'란 필요조건에 더해 '새로운 감각과 비전'이란 충분 조건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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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준석은 이제 막 스타트라인을 떠났다. 앞으로 여러 주머니를 풀어놓을 시간은 충분하다. 그래서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려 한다.

다만 나이에 걸맞은 참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 예리한 눈길로 그의 행보를 지켜볼 생각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