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IT기업 독점’ 문제는 요즘 미국 정가의 핫이슈다. 민주, 공화 구분 없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원에선 두 당이 독점규제 관련 5개 법안을 한꺼번에 공동 발의했다. 굉장히 이례적인 행보다.
상원에선 ‘아마존 저격수’ 리나 칸을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 인준을 69대 28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의원 50명 중 투표 불참자 2명을 빼고 전원이 찬성했다.
더 놀라운 건 공화당이다. 50명 중 21명이 찬성했다. ’28명 반대, 1명 기권.’
리나 칸은 파키스탄 출신 이민 여성이다. 나이도 32세에 불과하다. 그 뿐 아니다. 급진적인 사상을 갖고 있다. 아마존을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들을 분할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공화당 상원의원 42%가 찬성표를 던졌다. 거대 IT 기업 독점 견제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는 것 외엔 달리 해석하기 힘들다.
트러스트의 횡포, 미국 첫 독점금지법 '셔먼법'으로 결실
이런 움직임은 1890년 미국 연방 차원의 첫 독점규제법인 ‘셔먼법(Sherman Act)’ 탄생 때를 연상케 한다. 이 법은 공화당 상원의원인 존 셔먼이 발의했다.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 의원이란 점부터 놀랍다.
더 놀라운 건 당시 분위기다. 에이미 클로버샤가 쓴 ‘Anti Trust’에 셔먼법 통과 당시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
하원에선 242대 0으로 통과됐다. 85명이 기권하긴 했지만, 의원 어느 누구도 반대표를 던지지 못했다. 당시 곡물, 철도 등 주요 산업의 독점폐해가 워낙 심했다. 치솟는 곡물 값 때문에 서민들은 아우성을 쳤다. 독점규제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강했다. “재선을 원하는 의원은 감히 반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분위기는 상원도 마찬가지였다. 찬성 52대 반대 1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9명은 반대해서 유권자들의 미움을 받는 대신 기권하는 쪽을 택했다.
법을 발의한 존 셔먼 의원은 이런 분위기를 잘 이용했다. 그는 미국 독립혁명을 거론하면서 애국심을 자극했다.
“왕을 정치적 권력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면 생필품 생산, 수송, 판매의 왕을 용인해서도 안된다. 황제에게 굴복하지 않았다면, 생필품의 경쟁을 방해하고 가격 담합을 일삼는 무역 독재자에게 굴복해서도 안 된다.” (Klobuchar, 79쪽)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셔먼법’은 미국 연방 차원의 첫 독점규제법으로 자리매김했다. 법무부가 독점금지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소권을 갖고, 독점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선 피해액의 3배에 달하는 징벌적 제재를 가하는 조항이 이 때 처음 탄생했다. 클레이턴법, 연방거래위원회법 등 이후 제정된 독점금지법은 모두 셔먼법을 토대로 했다.
‘셔먼법’은 ‘트러스트’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의 산물이다.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도 당시 악명높은 트러스트였다. 농업, 운송 등 전통산업 분야도 트러스트의 폐해가 컸다. 독점금지법이 ‘Anti-Trust’로 불린 것도 이런 사정과 관련이 있다.
IT 빅4의 독점 횡포, 어떤 결실로 이어질까
올해로 셔먼법이 탄생한 지 131년이 됐다. 독점금지법 131년 역사는 영광도 많았지만, 한계와 상처가 더 컸다. 최근 들어선 독점금지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 하원이 민주, 공화 공동으로 5개 독점금지법안을 무더기 발의한 것이나, 상원이 급진적 기업 분할론자인 리나 칸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건 그 때문이다.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IT 기업들의 경쟁 방해 행위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131년 전 ‘셔먼법’을 압도적으로 밀어주던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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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은 과연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IT 시장의 독점적 구조를 개혁할 수 있을까?‘제2의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이 나오기 힘들게 만들고 있는 독점 기업들의 경쟁 방해행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보면 이런 질문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리나 칸을 비롯한 ‘개혁 주체’들의 행보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