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데이터시대다.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디지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4차산업혁명을 목도하고 있다. 인류가 문자와 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5천년 동안 문명의 흐름이 지구촌 곳곳에서 큰 강을 이루고 이제는 모이는 바다에 이르렀다. 데이터가 원유가 되어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바로 '데이톨로지(Datalogy)' 사상의 연원(淵源)이다. 데이터에 대한 철학적, 인문학적, 과학적인 성찰의 결과라 봐도 좋을 것이다. 데이터와 관련된 키워드를 중심으로 제4차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지적 탐구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에는 역사속에서의 다양한 인포그래픽스 사례와 함께 단 한 컷의 시각화 이미지가 시사하는 의미를 되짚어 본다. <편집자>
미국에는 '천 마디 말보다 그림 한 장이 낫다(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수많은 텍스트와 문자로 설명하기에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아주 간단한 한 컷의 상징으로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미지 데이터는 텍스트 정보에 비해 사람들의 흥미를 더 유발하고 정보 처리에 유리함은 물론 기억을 유지하는 시간도 더 길다.
최근에는 정보(Information)와 그래픽(Graphics)의 합성어인 ‘인포그래픽’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복잡한 데이터 분석결과를 쉽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차트나 그래픽 이미지 등으로 축약해서 표현하는 시각화(Visualization) 기술 얘기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현재 우리는 문자와 숫자 위주의 텍스트 기반 사회에서 이미지와 동영상이 더 강조되는 시각적 정보 사회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는 인간의 평균적인 뇌의 용량 측면에서도 이성적이고 논리적 정보를 주로 처리하는 좌뇌(左腦)의 역할이 감소하고 이미지와 감성 위주의 정보처리를 담당하는 우뇌(右腦)의 기능이 점점 더 활성화 되는 흐름을 반영한다. 우뇌가 예전에 비해 더 커지고 있다는 연구결과에 다름 아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필자는 대학 시절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되는 서양철학사 교양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라파엘로(Raffaello Sanzio)가 그린 ‘아테네 학당’이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시기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이 한데 모여 토론을 벌이는 라파엘로의 상상력에서 만들어졌다. 한 컷의 그림 속에 헤라클레이토스, 피타고라스, 디오게네스 등과 같은 그리스 로마와 중세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수천년 동안의 철학사상을 하나의 그림으로 정리했는데, 그림 속의 각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포즈와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알고 나면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움마저 들게 된다.
그림은 가운데서 걸어 들어오며 얘기를 나누는 플라톤과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이 매우 상징적이다.
자신의 저서인 ‘윤리학’을 들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를 중시했기에 땅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는 동작을 하고 있다. 반면, 한 손에 ‘티마이오스’를 들고 있는 플라톤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추상적 세계를 논하는 그의 철학적 접근을 암시한다.
두 철학자의 대조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서양철학사를 통해 끓임 없이 반복돼온 관념론과 경험론의 패러다임 경쟁을 보여주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오랫동안 수천 페이지의 글보다 이 그림 한 컷이 아직까지도 더 명료하게 기억되고 있다.
존 스노우의 펌프지도(Pump Map)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어떤가.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저서 ‘총, 균, 쇠’에서 전쟁을 의미하는 ‘총(Guns)', 흑사병과 콜레라와 같은 ‘균(Germs)', 과학적 기술을 의미하는 ’쇠(Steel)'를 인류문명의 진보를 주도한 세 가지 동력으로 지칭했다. 코로나19를 경험하고 있는 지금에는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주장이다.
대규모 유행병으로 인한 팬데믹은 인류 역사와 항상 함께 했다. 18세기초 유럽에서 만연한 콜레라 유행병은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수세기 반복돼온 콜레라는 1831년부터 30여년 동안 영국에서 유행하며 지속적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혔다.
원인에 대한 일반적인 주장은 그 당시 콜레라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낸 유독한 악취에서 공기로 전염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1854년 영국 런던 브로드가(Broad Street)에 인접한 소호 지역에 대규모 콜레라가 강타했을 때 의사인 존 스노우(John Snow)는 이 지역 콜레라 사망자의 위치를 추적 조사하게 된다.
당시 그린 지도를 보면 검은색 점들은 그 주소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를 보여주고 있고 가운데 넓은 거리가 유행의 중심이었던 브로드가이며, 그 가운데에 있는 펌프를 중심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도시의 상수도원인 펌프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집중돼 있음을 이 한 컷의 역학지도로 발견하게 된다.
데이터 분석의 결과다. 존 스노우의 현장 조사와 사망자에 대한 데이터는 수세기 동안 인류를 괴롭혀왔던 콜레라의 원인이 식수원 오염임을 입증하게 된다. 이후 독일 세균학자 필리포 푸치니(Filipo Pucini)에 의해 비브리오 콜레라라는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그의 분석 결과는 이 병의 예방법과 치료제 개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존 스노우의 콜레나 역학지도는 지금도 현대 공중 보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위대한 한 컷으로 평가받고 있다.
나이팅게일의 ‘로즈 다이어그램’
역사를 변화시킨 위대한 한 컷은 전쟁 상황에서도 계속됐다. 19세기 중반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터키의 영국군 야전병원 간호사로 자원했다. 이 때 군대 병원의 위생 환경은 매우 열악하였는데, 수년 동안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한 나이팅게일은 사망한 군인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인포그래픽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원그래프의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에 나온 ‘로즈다이어그램’은 19세기 최고의 통계그래픽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녀는 일 년을 원 모양의 그래프로 나눠 매달 사망한 사람들의 사망 원인과 사망자 수를 표시했다. 원의 중심에서부터 세 개가 겹쳐진 모양으로 그려진 부채꼴의 넓이는 월별 사망자 수를 나타낸다. 파란색 부채꼴은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고, 빨간색 부채꼴은 부상으로 죽은 사람, 검은색 부채꼴은 기타 이유로 죽은 사람을 나타낸다.
나이팅게일은 이 그래프를 통해 전쟁터에서 죽는 군인보다 치료과정에서 감염으로 죽는 군인의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야전 병원의 시설 개선을 이끌어낸 계기다. 이런 나이팅게일의 노력으로 치료중 질병으로 인한 군인들의 사망률은 기존의 42%에서 2%로 극적으로 감소했다.
후에 버나드 코헨(I. Bernard Cohen)은 그의 저서 ‘수의 정리’에서 "나이팅게일은 통계 정보를 잘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도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 점에서 개척자나 마찬가지였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통계를 향한 열정은 진실로 숫자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적기도 했다.
조셉 미나의 프랑스-러시아 전쟁 시각그래프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통계학자이자 토목공학자인 찰스 미나(Charles Joeseph Minard)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전쟁 중에 42만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사망하고 1만 명만 생환하는 과정을 단 한 장의 통계그래픽으로 정리했다.
이 속에는 변동이 심했던 날씨, 시간대별 군대의 이동과 위치, 사망자 증가로 인한 병력의 감소 등의 데이터 분석 결과가 일목요연하게 표현돼 있다. 러시아의 추운 겨울 날씨와 싸운 프랑스군의 역경을 그 어떤 설명보다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현재까지도 데이터 분석 결과를 정리한 통계그래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 컷으로 손꼽히고 있다.
매년 최고의 저널리스트와 사진작가에게 수여되는 퓰리처상을 만든 미국의 저명 언론인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지금에 와서도 더욱 와닿는 명언이다.
디지털시대에 더 필요한 ‘인포그래픽’
필자는 위에서 살펴 본 그림과 그래프를 보면서, 데이터 분석이나 시각화(Visualization)를 위한 아무런 컴퓨터 기술도 없던 시절에 오로지 수작업을 통해 이런 위대한 컷을 창안한 그들에게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 또한 그들의 노력들이 분명 디지털 중심의 빅데이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좀 더 임팩트 있는 인사이트를 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즈’의 온라인 기사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기사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더니, 2013년 미국의 각 지역별 방언 분포를 지도위에 시각화한 인포그래픽스 뉴스보도였다.
이는 다양한 색채를 통해 미국의 지역별 방언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 언어가 어떤 지역 경로로 전파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방언 엑센트 속성을 바탕으로 어떤 지역들이 서로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언어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한 컷이라 할 것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텍스트로 된 긴 문장의 기사는 더 이상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단 한 장의 시각화된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속에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숨은 가치가 담겨졌을 때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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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으로 올수록 AI 기반의 이미지 검색기술이 발달하면서 좋은 사진 혹은 이미지 한 장이 비즈니스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벌써 네이버와 구글과 같은 포털이나 주요 온라인 시장에서는 이미지를 통한 정보 서치가 텍스트 기반의 검색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분명한 건 앞으로의 세계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 그 속에 스토리를 전달하는 ‘데이터 텔러(Data-Teller)’ 역할과 가치 있는 메시지를 담은 한 컷을 창조해내는 '인포그래픽'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