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돈이다…산업 전반에 사회적가치 열풍

[대한민국 2030 넥스트노멀] ⑩ESG경영

디지털경제입력 :2021/05/29 09:00    수정: 2021/05/29 20:30

박영민, 주문정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산업 어젠다를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자본시장의 단기적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던 기업이 환경파괴와 경제적 불평등, 제도 붕괴를 목도하면서 공유가치 극대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시스템상 잘 운영되는 기업은 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만약 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해도 당장 변화한 기업 사례도 거의 없다. 변화한 기업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기업은 '지금은 너무 바쁘다'고 일관해왔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단기적인 이윤 창출이라는 기업 본래 목표를 넘어, 장기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방향일 것이다. 이윤을 내면서도 책임을 다하는 기업, '착한 기업'이 1등을 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란 전망이다.

사진=Pixabay

경영환경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고객,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산화탄소(CO2) 배출 저감 요구가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망과 제품의 100%를 탄소중립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애플에 제품을 공급해야 하는 기업 역시 CO2를 감축하고 친환경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델도 1차 소재 공급사와 협력해 단위 유닛당 온실가스 배출을 60% 감축하기로 했다. 블랙록도 최고경영자(CEO)가 공개서한으로 협력사에 온실가스 제로 계획을 요구했다.

투자사들도 기후관련 재무정보 공개 대책반(TCFD)을 도입하는 등 관련 정보 공시 확대를 요구하는 시대가 됐다.

환경·사회·지배구조의 첫 글자를 딴 'ESG'는 이같은 현안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친환경주의, 사회적책임, 건전한 지배구조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ESG경영을 외치는 기업들의 새로운 성과 목표가 됐다. ESG경영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산업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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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기업경영 화두는 '친환경'…ESG 경쟁 닻 올라

올해 국내 기업 경영계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친환경'이다. 환경 가치는 그동안 비재무적인 성과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기업 수익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화두가 됐다.

많은 기업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지금처럼 탈(脫)탄소 중요성이 부각된 적은 없었다. 기업이 '값싼 에너지'란 인식을 한 꺼풀 벗겨내자, 미래 세대에 부과될 비용을 보게된 것이다.

석탄 연소를 통해 전기를 생산할 때 기후에 미치는 피해는 1킬로와트시(kWh)당 적어도 4% 수준에 이른다. 비용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기업이 지구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지만, 경제 전반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가격을 부과하지 않아 생기는 왜곡은 엄청난 수준이다.

LNG 벙커링 선박 조감도. 사진=가스공사

현재 국내 기업의 친환경 노력은 제조업계에 집중돼 있다. 일례로, 조선업계는 올해 1분기까지 친환경연료 추진선박 수주 비중이 2년 만에 18%포인트 증가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친환경 선박 수주에 집중한 결과다. 같은 기간 친환경차 수출대수도 지난해보다 57.2% 증가했다.

코로나 확산 여파로 지난 한 해 영업부진 터널을 지난 정유업계도 이산화탄소(CO2)와 온실가스 저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는 공장-산단 내의 열 통합을 통한 에너지 절감과 고탄소연료(B-C유)에서 저탄소 연료(LNG)로의 전환, 공정상 배출되는 CO2 포집을 통해 배출 감축 노력을 해왔다.

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에도 기업 참여가 활발하다. SK하이닉스·SK텔레콤 등 SK그룹 6개 관계사가 첫발을 내딛고, 수자원공사가 뒤를 이었다. LG화학·LG에너지솔루션·한화큐셀 등도 정부가 RE100을 국내 실정에 맞게 바꿔 도입한 한국형 RE100(K-RE100)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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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도 ESG 가속페달…석탄투자 접는다

탈석탄을 위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금융기업도 늘고 있다.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도 내에서 석탄발전의 환경 비용 부담이 더 가중되는 만큼, 석탄발전 분야 투자를 줄이는 것이 결과적으론 합리적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중론이다.

종합금융그룹을 필두로 주요 보험사와 증권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공제회 등 다양한 금융업종 관계사들이 기후금융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동참한 100여 곳 금융기관의 지난해 말 기준 총 운용자산 규모(AUM)는 약 5천564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9월엔 전국 56개 지자체·교육기관이 탈석탄 금고를 선언하기도 했다.

국내 석탄발전산업이 지금의 전력시스템상에서 2030년 무렵부터 경제성을 잃을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환경단체 기후솔루션 등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석탄 이용률 감소에 따라 국내 석탄화력 58기의 수익 회수는 2030년경부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행 환경정책과 전력시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2030년이면 석탄발전이 경제성을 상실한다는 게 요지다.

석탄을 넘어서(전국 탈석탄네트워크)가 지난 2월 5일 서울 중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피켓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석탄을 넘어서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이 보고서에 대해 "한국이 석탄을 고집할수록 더 큰 손해를 볼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며 "탈석탄이 가능한 옵션인지에 대한 논의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탈석탄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야만 에너지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도 신규 해외 석탄발전사업에 공적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기후정상회의에서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발전소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면서 "석탄발전 의존도가 큰 개발도상국의 어려움이 감안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석탄발전 투자 중단 추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국내외에 신재생에너지로의 방향 전환이라는 신호를 보내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계획한 사업 중단은 어렵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된 사업인 삼척화력 1·2호기와 고성하이1·2호기, 강릉안인 1·2호기, 신서천 1호기 등의 석탄화력발전소 공사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전력도 10월 신규 해외 석탄발전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자바9·10 사업과 베트남 붕앙2 사업은 상대국과의 신뢰관계를 고려해 계획대로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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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 수준인 지배구조 혁신…공정경제 3법이 물꼬틀까

주주가치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운영해왔던 기업은 지배구조 건전성에도 집중하는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착한 기업이 1등하는 시대가 온다'는 판단에 따라, 그간 주류 경제학을 지배해온 주주우선주의를 넘어서보자는 시도도 나온다.

각 기업들은 전사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며 대응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카카오는 이사회 산하에 ESG 위원회를 최근 신설했다. ESG위원회는 회사의 지속가능경영 전략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성과와 문제점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네이버 역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산하에 지난해 10월 ESG 위원회를 신설, ESG 경영 추진 전략과 주요 활동 현황과 계획을 총망라한 ESG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게임 기업인 엔씨소프트도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3월 ESG 경영위원회를 구축했다. 실무를 담당할 ESG경영실도 브랜드전략센터 산하에 신설했다. 사회공동체 내에서 기회와 경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미래 사회를 위한 근본적이고도 질적인 변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다. 넥슨과 넷마블도 ESG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운영하고 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경제 3법' 관련 합동브리핑에서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의결된 '공정경제 3법'이 결국 기업 지배구조 혁신에 물꼬를 틀어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공정경제3법은 '상법' 일부개정안, '독점규제·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 제정안 등을 말한다.

3법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선임·해임 규정을 개선했다. 또 전속고발제 폐지와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법집행 체계 개편, 사익편취 규제 강화·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기업집단의 규율·법제를 전반적으로 개선한 법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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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집단 규율 법제를 개선하겠다는 시도는 기업 지배구조 혁신을 가속할 신호로 읽힌다.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편법적 지배력 확대를 억제하는 등 부당한 경제력 남용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규제대상 총수 일가 지분 기준을 20%로 일원화하고, 이들이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대상에 포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의 과징금 등 행정제재 위주 집행 체계로는 불공정 행위 근절과 국민의 신속한 피해구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형사·민사·행정 등 다양한 집행 수단을 제도화하고, 경쟁법 집행에 경쟁원리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