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권익 증진을 목표로 제정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대응해 금융권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곳곳에선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위법한 계약을 해지하거나 청약을 무르는 권리가 확대되면서 소비자 권익이 개선되긴 하겠으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고 사각지대도 존재해 시행 초기 혼란이 예상되는 탓이다.
또한 금융사가 판매 절차를 보다 면밀하게 운영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소비자로서는 계약서 서명에 앞서 상품을 제대로 알고 명확하지 않은 내용을 재차 확인하는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6대 판매 규제' 전 금융상품으로…"대출도 2주 내 철회"

이달 25일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일부 상품에만 적용하던 적합성·적정성 원칙과 설명 의무, 불공정영업·부당권유·허위과장광고 금지 등 '6대 판매 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금융사는 이를 위반해 금융상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물어야 하며, 판매한 직원에게도 최대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시에 소비자에겐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자료열람청구권 등이 주어지고, 불완전판매 입증 책임은 소비자에서 금융사로 넘어간다.
또 소비자는 금융사가 6대 판매규제를 지키지 않는 등 정당한 해지사유가 발생했다면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 사실을 안 날부터 1년 안에 위법계약해지권을 청구할 수 있다.
청약철회권의 경우 대출은 가입 14일, 보험과 같은 보장성 상품은 15일, 투자성 상품은 9일 이내에 행사하면 된다. 금융사는 소비자의 청약 철회 신청을 접수한 후 3영업일 이내에 수수료를 포함해 받은 돈을 모두 돌려줘야 한다.
단, 이들 권리는 금소법 시행 이후에 이뤄진 가입 건에 대해서만 행사 가능하다. 과거의 계약에까지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위법계약해지권 가이드라인 부재에 분쟁 걱정↑
우려스런 부분은 금소법 시행 가이드라인이 아직 나오지 않아 소비자가 어느 정도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예금·펀드·보험 등 상품별로 중도해지 수수료가 다르나,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했을 때 금융사로부터 얼마를 돌려받는 게 타당한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사실 이를 걱정하는 쪽은 금융사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소비자 역시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가령 보험의 경우 소비자가 지불하는 보험료에 보험금 지급을 위한 위험보험료와 함께 여러 비용이 포함돼 있지만 세부적인 환불 규정은 없다. 예금 상품은 중도 해지 시 이자를 얼마나 지급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일단 금융위원회는 대출 이자나 카드 연회비, 펀드 수수료·보수, 투자손실, 위험보험료 등 비용은 원칙적으로 소비자에게 반환할 금전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분쟁의 소지가 있는 만큼 서둘러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수협 등 상호금융은 금소법 적용 대상 제외
소비자는 같은 금융서비스라 할지라도 금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단위 농협과 수협,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이 대표적이다. 금융위가 관리하는 일반적인 금융기관과 달리 이들은 금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행정안전부 등 각 기관의 감독과 행정처분 권한을 지닌 정부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한 탓이다. 상호금융 중 금소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 곳은 금융위 소관인 신협이 유일하다.
때문에 해당 기관 상품에 가입한 소비자는 조합의 위법 행위가 드러났다 해도 금소법 테두리 안에서 보장하는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현재 관계 부처는 금소법 주요 내용을 상호금융에도 적용하기로 하고 세부 방안을 논의 중이나, 방법론에 대한 이견으로 인해 금소법이 확대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밖에 금융위는 카카오페이처럼 현금을 미리 입금해 놓고 쓰는 직불·선불 결제 서비스도 금소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금융상품이 아닌 지불 수단이라는 판단에서다.
"권한 만큼 책임도 커져…상품 가입 시 신중해야"
아울러 간과하지 말아야 할 대목은 금소법으로 권한이 강화되는 만큼 소비자 스스로의 책임도 커진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각 금융사가 분쟁에 대비해 판매 과정을 녹음하고 계약 내용을 확인하는 등 방법으로 설명 의무를 지켰다는 증거를 확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도 상품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가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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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비자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적합 상품에 가입 가능하다. 다만 이 때 금융사가 이를 추천하지 않았고, 상품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거듭 알렸다면 판매 원칙을 준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소법이 시행되지만 세부 사항에 대한 협의가 부족해 한동안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새로운 문화를 안착시키고 피해를 막기 위해 금융사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