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개념이 시장에 나온지는 오래됐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유형과 규모를 막론하고 모든 기업이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온 것이 사실이다. 올해 초 발발해 아직도 전 세계를 옭아매고 있는 코로나19는 촉진제가 됐다. 이제 도태되지 않으려는 기업에게 디지털 우선 경영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리테일 업계는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업계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재빨리 디지털 접점을 늘려야 했다. 올해 그 트렌드가 가속화된 것은 분명하나, 리테일 업계의 디지털 전환은 이미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다고 봐야 한다. 백화점의 등장부터 슈퍼마켓의 부상, 대량생산, 세븐일레븐으로 대표되는 체인형 매장의 유행 등 지난 70년 동안 여러 단계에 걸쳐 큰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은 아마존, 알리바바 등의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들이 주도하는 전자상거래 기반 제4차 리테일 혁명을 맞이하고 있다. 현재의 리테일은 기술을 소비자의 수요 예측 및 충족을 위해 사용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소매 공급망 전체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까지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매장(또는 사이트), 판촉, 고객 등 유통의 3요소를 보다 잘 관리하기 위해 데이터 사용이 급격히 늘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인공지능(AI)이다. AI는 인간이 수동으로 수행하기는 불가능한 수준으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 세트를 굉장히 광범위한 시각으로 검토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보다 패턴과 인사이트를 훨씬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AI 모델을 조정해 복잡한 고객 여정 분석 등 특정 목표를 수행하도록 할 수도 있다. 또 AI는 숫자와 텍스트 데이터 뿐 아니라 고객이 상품을 둘러볼 때 보내는 시각적 신호 등 '감각' 데이터도 분석할 수 있다.
AI는 유통망 전반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는 범용 기술이다. AI가 리테일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분야가 디지털 마케팅인데, 그 이유는 많은 양의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수집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리테일 업계에 속한 마케터라면 무엇보다 새로운 고객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 AI는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모두 집계하여 통합 고객 프로필을 구성하고, 상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리테일 마케팅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는 고객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다. 효과적인 참여 유도는 정확한 타깃 고객을 선정해 해당 고객과 관련성 높은 정보를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채널로 적절한 기기를 통해 보내야 가능하다. 인간이 직접 수행하기에는 버거운 일이다. 아주 적은 수의 사용자 그룹에 도달할 리소스밖에 없는 데다 활용할 수 있는 채널도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AI는 모든 가용 정보를 활용해 고객에게 다가갈 정확한 시점을 파악함으로써 사용자 참여 유도를 자동화한다.
참여 유도 다음 마케팅 초점은 전환으로 옮겨간다. 여기서 AI는 온라인 탐색 행동을 실시간 분석하여 망설이는 고객을 가려낼 수 있고, 이를 통해 쿠폰이나 할인 혜택을 주면 전환될 것 같은 고객에게만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이처럼 특별 혜택을 주면 결정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높은 고객만 선별하여 쿠폰을 제공하면 마케팅 예산은 절약하면서 매출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테일 마케터는 과거에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했지만 이후 사이트를 떠났거나 휴면 상태인 고객에 주목한다. AI는 이런 사람을 찾아내고 데이터를 통해 어떤 메시지나 혜택으로 이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지 분석하여 과거 고객을 다시 끌어들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디지털 마케팅 외에도 AI가 전체 유통망을 간소화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품질관리 관련 데이터 등 생산 단계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분석하고, 제품을 보다 효율적으로 찾아 꺼내오는 창고 로봇을 움직여 인력을 줄이고, 자원 계획에 도움이 되는 사용자 쇼핑 패턴을 분석하고, 효율적인 챗봇 활용을 통해 고객 경험과 서비스 단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
AI를 잘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패션 체인 자라다. 자라는 로봇을 활용해 셀프 계산대를 운영하며 고객 서비스 데스크의 대기 시간을 줄였다. 가구 판매업체 웨스트 엘름과 의류 소매업체 유니클로는 AI를 활용해 고객의 얼굴 표정 등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에게 가장 연관성 높은 제품을 추천한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약국 체인 월그린스는 AI를 활용해서 항생제 및 기침감기 치료제 구매를 모니터링해 계절성 독감의 확산을 추적하는데, 이는 재고관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 정보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자연어처리(NLP)의 발달로 AI는 이제 예전보다 진짜 인간 같은 답변을 훨씬 잘 모델링한다. 즉 다국어로 보다 향상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 브랜드와 리테일러가 더 많은 고객에게 빨리 대응하고 더 높은 고객 만족을 이끌어내게 해 준다.
데이터와 AI는 온라인에서부터 오프라인까지 다양한 소비 패턴에 대응하고 향후 자원 배치를 계획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AI는 자원 할당을 보다 잘 식별하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영역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이는 글로벌 팬데믹으로 빠르게 변화 중인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특히 중요하다. 강화학습은 주어진 환경 또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지에 집중한다. 기업 입장에서 이 획기적인 기술로 인력, 재고, 차량, 창고 등 자원 할당 영역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물품의 배송 또는 운송 등 물류 부문을 다루는 기업(전자상거래 기업, 음식 배달업체 등)은 일반적으로 현재 패턴과 과거 경험을 보고 자원 할당을 어떻게 할지 의사결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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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강화 학습을 추가로 활용하면 이런 기업은 이제 미래의 자원 할당을 예측하고 예상되는 미래의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액션을 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 체증이 심한 시간에 운전기사를 더 투입하거나, 특정 재고에 수요가 몰리는 상황 등을 예측할 수 있다.
데이터는 스마트 리테일 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자원 할당부터 물류, 사용자 경험, 고객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며, 리테일러들은 2020년 들어 디지털 퍼스트 경영을 펼쳐야 한다는 긴박함을 느끼고 있다. 리테일 업계는 팬데믹에서 회복하고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쇼핑을 더 즐겁고, 몰입감 있고, 효율적인 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첨단 기술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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