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칼럼] 데밍과 능력주의(Meritocracy)

전문가 칼럼입력 :2020/12/16 11:05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다가오는 12월 20일은 품질경영의 구루인 윌리엄 에드워드 데밍(William Edwards Deming)이 1993년 93세의 나이로 소천한 날이다. 데밍이 유명해진 이유는 1, 2차 오일쇼크 이후에 급등한 일본 자동차의 인기를 의아하게 여긴 미국 자동차업계가 일본의 품질경영을 벤치마킹 하면서부터이다.

한반도는 전쟁의 도가니였던 시절, 태평양전쟁의 폐허에서 부흥을 꿈꾸던 일본의 산업계 리더들은 데밍(1950년)과 조셉 주란(1954년)을 초대하였고, 그들에게서 미국을 이길 해법을 통계적 품질관리에서 찾았다. 데밍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일본의 품질관리대상은 ‘데밍상(Deming Award)’으로 명명되었다.

데밍이 주장한 과학적 품질관리 경영은 그의 말대로 슈와르츠(Walter Shewhart)의 연구에 빚을 지고 있지만, 일본의 전문가들은 데밍의 가르침을 PDCA(Plan, Do, Check, Act) 사이클로 축약하여 이를 ‘데밍사이클’이라 불렀다. 그러나 정작 데밍은 PDCA 사이클이란 용어를 자신이 만든 바가 없다고 이야기했으며, 자신의 이론적 유산을 슈와르츠에게 돌리는 겸손함을 보였다.

윌리엄 데밍

데밍은 PDCA 사이클은 자신의 철학을 오염시켰다면서, 구지 데밍사이클을 정의하여야 한다면, 검증(Check)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으며, 그 대신에 학습(Study)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한다고 피력하였다. 데밍의 이러한 생각은 동료학자인 모엔(Ronald D. Moen)이 201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데밍의 편지(1990년)를 인용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PDCA사이클은 계획-실행-검사-수정의 의미이다. 반면 데밍의 PDSA사이클은 계획-실행-학습-개선의 의미가 된다. 데밍은 마지막까지 직원이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능동적 학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견지했으며 이러한 그의 생각이 왜곡된 품질경영의 단어인 ‘Check”을 배제하고, “Study”로 대체한 것이 아닌가 후학들은 생각하고 있다.

내게는 Check라는 단어가 항상 어딘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Check는 문제점이 상존한다는 가정에 기반하며 -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는 - 상사가 부하의 잘잘못을 따져 본다는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 ‘모엔’의 논문이 알려준 90세 데밍의 편지는 그가 40년이 넘도록 구성원들의 전향적인 학습문화를 품질경영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기쁘게 생각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 ‘린사이클’을 주창한 에릭 리스(Eric Ries)는 스타트업 기업의 경영철학으로 능력주의(Meritocracy)를 표방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능력주의는 좋은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을 일과 업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창업가로서 우리는 타 산업에서보다도 강한 능력주의 비즈니스에 있다. 회사는 직책, 정치와 계층조직이 아니라, 능력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마이클 샌들’교수는 Tyranny of Merit(능력의 폭거)이라는 책(한글책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삐뚤어진 능력주의가 배태하는 사회적 문제를 비판했다. 사람의 능력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성장한 환경, 부모의 영향력과 교육혜택, 그가 가진 네트워크 자산 소위 “빽”과 때때로 “운”까지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없는데, 실패 혹은 성공을 개인의 역량 프레임만으로 덧씌운다면,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예전에 GE와 같은 다국적 기업은 개인성과로 측정되는 능력주의에 함몰되어, 매년 저평가 직원의 5%씩 해고하는 정책을 자랑스럽게 전파했다. 당시에 IBM을 포함한 많은 다국적 기업의 경영자들이 이러한 인사정책을 기꺼이 수용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직장 동료는 경쟁자였으며, 서로간의 협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단기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해쳤다.

데밍이 후학들에게 존경 받는 이유는 품질경영의 철학을 과학적 합리성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에 대한 깊은 존중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밍의 14훈은 지금도 회자되는 인간중심적 품질경영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는 직장에서 두려움을 제거하고, 과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의 팀워크를 강조했으며, 재무목표에 직원들을 내몰아 전문가로서의 자존감을 깨부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습과 끝임 없는 재교육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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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밍의 14훈은 너무나 단순하고 명료하지만, 이를 실행 옮기는 다국적기업, 대기업의 경영자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누군가 내리 사랑은 자연스럽지만, 위로 향하는 효도와 공경은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닌 고결한 덕성이라 말한 것을 기억한다. 경도된 능력주의의 잣대는 들이대기 쉽다. 그러나 조직원에 대한 존중에 기반한 협업공동체의 구현은 쉽지 않으며 품격 있는 경영철학이다.

승자와 패자의 철학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본성의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내어 공동 선을 지향하려 했던 데밍의 한결같은 품질경영 철학이 그가 떠난 27년의 오늘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정규 비즈니스 IT컬럼니스트

(현)사이냅소프트 경영혁신담당 중역. 경영정보학 박사, 정보관리기술사, 미국회계사. IBM, A보안솔루션회사 및 보안관제회사, 기술창업 스타트업, H그룹 계열사, 비영리 D재단, 감리법인 등에서 제조산업전문가, 영업대표, 사업부장, 영업본부장 및 컨설팅사업부장, 대표이사, 기술연구소장, 사무국장, 수석감리원을 역임했다. KAIST 기술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벤처창업의 이론과 실제'를 가르쳤고, 국민대 겸임교수로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IT컨설팅'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동시병행설계', '딥스마트', '비즈니스 프로세스', '프로세스 거버넌스', '실전IT컨설팅' 등이 있다. 프로보노 홈피 deepsmar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