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연내 추진을 목표로 했던 전기요금 개편이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이달 내 열릴 올해 마지막 이사회에서도 전기료 개편안이 상정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속도가 붙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전기료 개편이 가져올 편익을 둘러싼 정부 부처 간 이견이 팽팽한 점, 그리고 개편 당사자인 한국전력의 고심이다. 연료비와 연계한 새로운 요금제도의 특성상, 저(低)유가 기조가 끝나면 전기료가 다시 상승할 수 있어 소비자의 반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이달 말 정기 이사회를 열고 전기료 개편안을 심의할 예정이다. 다만, 이날 개편안이 상정돼 의결되더라도 본격적인 개편 작업은 내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추진에…"코로나 이후 물가 인상 우려"
한전이 전기료 개편과 관련한 정부의 인가를 받기 위해선 이사회 의결 외에도 전기위원회의 심의와 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최종적으로 산업부의 인가까진 수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유가 영향을 받는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연료비를 전기료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와 탄소 배출권 구매비용 등의 '환경비용'을 전기료에 별도로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 점에 대해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기재부의 의견이 엇갈린다. 산업부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저(低)유가 기조와 한전의 경영실적 개선을 근거로 연료비 연동제 도입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면 국민들이 전기료 인하 혜택을 볼 수 있고, 전력 과소비도 막을 수 있다는 것.
반면, 기재부는 전기료가 물가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는 요소인 만큼, 제도 개편 논의에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 한 관계자는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유가가 올라 전기료 인상 폭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전력도매가격(SMP)에 시장 경쟁 요소를 부과하는 방법 또한 아직 열려있다"고 말했다.
연내 전기료 개편안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한전으로선 시한이 다가와 초조한 모습이다. 한전은 유가와 환율 변동에 취약한 경영 여건을 바꿔보자는 목적으로 전기료 개편안을 추진해왔다. 전기료와 연료가격을 연동해 요금결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저유가로 연료 구입비가 줄면서 실적 흑자를 달성 중인 현재가 적기라는 의견이다.
한전, 전기료 개편 시한 또 미룰 가능성
결정권을 가진 정부가 개편안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한전 내부에서도 동요가 일고 있다. 코로나 이후 유가가 오르면 전기료는 자연스럽게 오를 여지가 있다. 자칫 전기료 인상을 유도하는 개편으로 비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이에 전기료 개편 시한이 한 차례 더 미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사회 내부에서도 전기료 개편안이 늦어지는 점에 대한 반발이 점차 커지고 있다. 한전 이사회 사외이사인 최승국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이사장은 지난달 25일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의 핵심 열쇠는 전기요금 정상화"라며 "정부에 정책 의지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를 과도기로 삼아 장차 '전압별 요금제'로의 개편을 추진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전압별 공급원가의 차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것이 전압별 요금제의 핵심이다. 현재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식을 전기료 체계에 적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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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10월 말 이사회에서 오는 2025년까지 전압 수준에 따라 요금을 매기는 전압별 요금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는 내년부터 2025년까지의 중장기 경영목표에 포함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시 말해 산업용·주택용 등으로 분리돼 있는 전기료를 전압별로 묶어 요금을 재책정하겠다는 것"이라며 "흩어져있는 계약종별 요금제를 최대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인데, 원가에 기반을 두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 후 중장기적으로 전압별 요금제를 확대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