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재정준칙 및 운영성과를 비교한 결과, 미국은 의무지출에 ‘페이고’를 적용하고 채무총량에 상한을 뒀으나 의무지출 증가를 막지 못해 재정적자가 쌓이고 채무가 늘어 채무한도를 올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반면, 스웨덴과 독일은 총지출 증가를 억제하는 준칙 또는 재정적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준칙을 도입해 실질적으로 채무를 감축하고 재정건전화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이정희 서울시립대 교수에게 의뢰한 '재정준칙 해외사례 비교 및 국내 도입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정부의 재정준칙(안)은 재정적자 기준을 GDP 대비 ▲3% 이내로 정했는데, 이는 스웨덴(GDP 대비 흑자 1/3% 이상)이나 독일(GDP 대비 적자 ▲0.35% 이내)과 비교하면 느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채무 기준은 GDP 대비 60%로 올해 전망치(43.9%) 대비 한도가 늘었는데, 스웨덴과 독일이 준칙 도입 후 재정건전화 노력으로 4~7년 만에 부채비율을 20%p 가량 낮춘 것과 대조적이었다.

■ "재정준칙이 재정건전성 담보하지 않아…관건은 총지출 억제·재정적자 방지"
1990년대 초반 과도한 복지비 부담과 경제 역성장에 따른 세수 감소, 공적자금 투입이 더해져 재정이 악화됐다. 이에 1990년대 중반 스웨덴 정부는 재정건전화 개혁을 단행하며 강력한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중앙정부의 향후 3년간 총지출 및 연금지출에 상한을 두어 정부지출이 이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지출제한준칙‵, 일반정부 재정흑자가 GDP의 2%(‵19년부터 1/3%로 완화) 이상이 되도록 목표를 설정하는 ‵재정수지준칙‵ 등을 실시했다. 이러한 준칙들이 무분별한 정부지출 확대 및 재정적자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정부부채는 자동적으로 감소해, 일반정부 부채는 1996년 GDP의 79.5%에서 2000년 58.7%까지 하락했다.

독일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사회안전망 강화, 공공투자 등 경기부양책 시행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독일 정부는 2009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GDP의 ▲0.35%(2016년부터 적용) 이내, 주정부는 GDP의 0%(2020년~)로 제한하는 ‵재정수지준칙‵을 헌법에 도입했다. 또 2011년 개정된 EU 안정성장협약 상의 재정준칙에 따라 정부부채가 GDP의 60% 기준 초과 시, 과거 3년 평균 초과분의 20분의 1을 감축하면 ‵채무제한준칙(60%)‵을 지킨 것으로 보기로 했다. 재정적자를 엄격히 통제하는 ‵재정수지준칙‵은 신규채무 증가를 예방했고, 과다부채 감축을 독려하는 ‵채무제한준칙‵은 기존채무를 실질적으로 감소시켰다. 일반정부 부채는 2012년 GDP의 90.4%에서 작년 69.3%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진원지였던 미국은 부실기업 구조조정, 경기부양책 실시로 일반정부 부채가 2007년 GDP의 64.4%에서 2010년 95.2%로 늘었다. 이에 미국 정부는 복수의 재정준칙을 법제화했다. 정부예산은 법률에 의해 지출의무와 규모가 정해지는 의무지출1)과 정부의 필요에 따라 조정 가능한 재량지출2)로 나뉘는데, 2010년 의무지출에는 ‵페이고 준칙‵을, 다음 해 재량지출에는 ‵지출제한준칙‵을 도입했다. ‵페이고‵는 지출을 늘리는 법안을 발의할 때 세입증가 또는 다른 지출감소 같은 재원조달방안을 마련해야하는 제도이다. 정부부채는 의회가 채무총액 한도를 정하는 기존의 ‵채무제한준칙‵(1917~)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제도운영 결과, 재량지출은 ‵지출제한준칙‵으로 재정적자를 관리할 수 있었지만, 의무지출은 ‵페이고 준칙‵이 기존지출은 존속시키고 신규지출만 제한해 고령화에 따른 기존 지출이 불어나는 상황을 막지 못하면서 의무지출 총량이 늘고 재정적자가 지속됐다. 적자누적으로 채무가 늘어 채무한도에 다다르면 재정건전화 정책을 펼칠 시간은 없고 재정절벽 등 혼란이 발생해, 의회는 채무한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고 ‵채무제한준칙‵은 무력화됐다. 미국 일반정부 부채는 2010년 GDP의 95.2%에서 작년 108.5%로 늘어 재정준칙 효과가 미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 "韓 재정준칙, 재정수지 기준 느슨하고 국가채무 기준 모호"
정부의 재정준칙은 재정수지적자(GDP의 ▲3%), 국가채무(GDP의 60%) 각각의 기준을 제시하고 이 두 개 지표를 이용해 '국가채무비율/60% × 통합재정수지비율/▲3%' 공식을 만들어 값이 1을 넘지 않으면 준칙을 충족한 것으로 보는 내용이 골자다. 이정희 교수는 “독일, 스웨덴과 비교하면, 정부 재정준칙은 재정적자 허용폭이 크고, 국가채무비율은 산식에 따라 이론적으로 GDP 대비 100%도 허용하도록 설계돼 채무한도도 사실상 더 큰 셈”이라고 평가했다.
한경연은 정부안은 재정준칙의 한도, 산식 등을 시행령에 위임하며 예외범위가 모호해 정부가 재량껏 규정을 바꿔 준칙을 무력화 또는 우회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독일은 재정수지목표 등을 헌법에 명시하고 구체적인 예외규정은 연방법률로 정하며, 스웨덴은 재정수지 흑자목표를 국회가 최종결정하고 제도설계상 예외가 적다”며 “한국도 재정준칙을 국회 통과가 필수인 법률에 규정하고 적용예외는 최소화, 명문화하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한국 재정준칙, ‵의무지출 페이고, 총지출 제한, 채무제한‵ 결합해야"
이 교수는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면 총지출을 적절히 통제하거나 재정적자를 엄격히 관리하는 재정준칙이 필요하다”라며, “한국의 입법·예산 의사결정 특성을 고려하면 「의무지출에 대한 페이고 원칙, 총지출 제한, 국가채무비율 제한」의 세 가지 재정준칙을 결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제시했다.
우선, 한국처럼 국회 내의 예산 총괄조정기능이 약하고 각 상임위가 소관분야 예산 확대 지향적이면, 국회가 현 세대 이익에 충실하게 예산을 편성하고 재정부담을 미래 세대에 전가할 우려가 높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무지출에 페이고 준칙을 도입해 재정지출을 늘리는 신규입법 시 기존제도 축소나 세입확충 같은 ‵비용‵이 명시적으로 고려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의무지출에 페이고 적용만으로는 의무지출 분야의 총액증가 및 재정적자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의무지출과 재량지출을 합한 총지출을 제한하는 준칙을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스웨덴이 3년 단위로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만들어 정부지출을 통제하는 것처럼, 한국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대상기간을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소개했다.
아울러 채무제한제도를 두고 선진국 채무비율기준(독일, 스웨덴 GDP의 60%) 및 한국의 경제수준을 반영해 기준선을 선진국보다 낮추고 기준 변경 시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관련기사
- 전경련 "택배업 외국인 고용 늘리고, 물류시설 확충해야"2020.11.16
- 전경련, '기업규제3법' 긴급 좌담회…"지배구조 규제 위헌성 논의"2020.11.10
- 전경련 "亞 국가간 정치적 상황, 경제교류와 분리해야"2020.11.06
- 전경련 "21대 국회 국난 극복에 초당적 노력 기울여달라"2020.04.15
한경연은 우리나라도 재정적자를 엄격히 규율하거나 총지출 증가를 적절히 통제하는 준칙을 통해 국가채무를 적절히 관리하고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전세계 92개 국가에서 재정준칙을 도입했지만 모든 나라에서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며 “스웨덴이나 독일은 엄격한 재정수지준칙 또는 지출제한준칙을 도입해 과도한 재정적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실질적인 국가채무 감축을 이루어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