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 커뮤니케이션의 3요소를 대상, 목적, 그리고 불완전성이라고 이야기했다. 커뮤니케이션의 한 축을 이루는 요소가 불완전성이지만, 때때로 커뮤니케이션은 예상치 못한 기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과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이라는 신화를 이뤄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 변화의 가속도가 인간의 인지능력을 훌쩍 넘어서고 있는 이 때, 18년이나 지난 케케묵은 사례를 다시 끄집어내는 이유는 전국을 붉게 물들였던 그 당시의 경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변곡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이 이룬 기적, 월드컵 4강 신화
월드컵 4강이라는 경험은 단순한 ‘국뽕’이나 추억의 의미를 훌쩍 넘어선다. 적어도 그 시기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일본에 대한 다른 태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한 노년 세대는 평생을 일본에 대한 공포감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어느새 중년의 나이로 살고 있는 나 또한 소니(Sony)나 아이와(Aiwa) 같은 전자기기를 생산해 내는 경제 대국 일본을 동경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이후 세대는 일본을 대하는 태도가 그 이전 세대와 같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삼성에서 만든 스마트폰과 빌보드 1위를 석권한 방탄소년단(BTS)을 동경하는 일본 젊은이들에 대해 역전된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2020년이라는 동시대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 다양한 세대가 바다 건너 존재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 살아간다는 것은 당연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월드컵 4강이 과연 기적이나 신화일까?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한국의 축구선수들은 이미 월드컵 4강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고, 히딩크는 그 가능성을 끄집어냈을 뿐이다. 그렇다고 히딩크 감독의 업적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그 역할은 히딩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축구 선수와 네덜란드 감독이 만나 일으킨 화학적 시너지가 월드컵 4강이라는 기적 같은 신화를 이룬 것이다. 물론 홈그라운드라는 이점과 붉은 악마들의 극성스러운 응원도 충분히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① 기울어진 운동장
히딩크가 감독으로 오기 전 한국의 축구 선수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 왔다. 이전까지 한국 최고의 골게터라고 알고 있던 최용수는 내내 벤치를 지키다 월드컵의 김이 다 빠진 마지막 터키전에서야 출장할 기회를 얻었으며, 대한민국 최고의 문지기였던 김병지는 이운재에 밀려 단 한 번도 골문 앞에 서지 못했다. 축구 천재라고 불리던 박주영과 라이온킹 이동국은 아예 국가대표로 선발조차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월드컵 4강 이후 차범근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성장한 박지성의 국가대표 선발은 히딩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온갖 비리로 얽힌 한국축구협회의 관행에 대해선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한국 축구와 완벽하게 객관의 위치에 있던 히딩크는 누구보다 공정하게 월드컵에서 뛸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했다.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선수들은 월드컵 4강으로 히딩크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②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운동선수들의 선후배 위계는 매우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강력한 위계는 경기장으로 이어진다. 히딩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배들이 그렇게 무서워하는 홍명보 선수가 선배인 황선홍 앞에서는 온순한 양처럼 변한다며 의아해하기도 했다. 히딩크는 선수들에게 선후배를 떠나 경기장에서는 이름을 부르라고 요구했다. 당시 국가대표 막내였던 박지성이 최고참 황선홍에게 "황선홍 선배님 저한테 공을 패스해 주세요"가 아니라 "선홍 패스"라고 할 수 있도록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 것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이런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경기장에서 선수들 간의 효율적 연결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과거의 위명이 현실세계에선 위계가 되어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방해한다. 소통을 하기 위해 내용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을 이끌어 낼 수 없다.
③ 그리고, 시간…
히딩크가 감독이 되고 나서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축구가 월드컵 4강의 실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 축구팀이 2002년 1~2월 골드컵 출전을 겸한 북중미 전지훈련에서 2무 4패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조중연' 당시 축구협회 부회장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히딩크 해임안을 논의하겠다고까지 했다. 우리가 나침반을 신뢰할 수 있는 건 나침반의 바늘이 북을 가리키기 위해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방향만 제대로 잡았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방향보다 속도가 더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시간 안에 똑같은 결과를 요구하는 것을 평등이라고 착각한다. 어른의 시간과 아이들의 시간이 같을 수 없다. 흔히 결혼한 부부가 가장 먼저 싸우는 요인 중 하나도 바로 외출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발표한 출사표의 내용을 소개한다.
내가 처음 한국대표팀을 맡았을 때 그 확률은 미미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 팀은 그 어느 때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며 그 확률이 서서히 높아져 가고 있고, 지금 시점에는 16강 진출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라는 점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세대를 연구하는 사회학자 전상진은 실력주의(meritocracy)가 불평등을 정당화시키고 있다며 실력, 지위, 보상을 실력주의의 삼위일체라고 주장한다. 실력과 실력에 따른 지위, 지위에 따른 보상의 순환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평등을 확대시킨다는 것이다. 전상진 교수는 불평등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평등의 저울에 올려놓으려는 시도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모두가 평등하다고 병에 걸린 환자를 의사가 아닌 판사가 치료하거나, 법률적 판단을 판사가 아닌 의사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단 실력과 지위가 반드시 필연적인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상을 실력과 지위로부터 분리시켜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마찬가지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요구가 역할의 평등으로 나아가는 것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방해한다. 커뮤니케이션이 수평적이라고 상사의 정당한 지시를 무시해서는 안 되며, 직원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하찮게 여겨서도 안 된다. 즉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은 역할이 아닌 태도의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역할은 사실상 위계와는 무관하다. 용에 눈에 점을 정하기 전까지는 그림을 완성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눈에 점을 찍어 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밑그림이 있어야 한다. 둘의 역할 사이에 위계를 정하는 일은 매우 무의미하다. 그런 무의미한 일이 우리의 일상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축구에는 포지션이라는 역할이 있다. 군대에서는 실력과 무관하게 계급에 따라 포지션이 정해진다. 수비는 후임병이, 최전방 공격수는 실력과 무관하게 전역이 가장 가까운 고참이 맡는다. 실력보다는 악으로 깡으로 해야하는 군대 축구에서는 그게 더 효율적일 지도 모르겠지만(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준 칼럼에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다니…), 그것은 군대 안에서만 적용되는 룰일 뿐이다. 다른 환경에서 축구를 해 온 선수들과 경기를 하려면 보편화된 역할의 룰을 따라야 한다. 만약 기업이 독점이 아닌 경쟁을 해야 한다면, 시장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룰을 따라야 더 효율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수평성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위계를 전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모티콘 시장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서의 감정 전달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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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의 3요소는 대상과 목적, 그리고 불완전성이다.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갖는 역할은 모두 다르다. 다른 역할을 가진 대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이유는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당사자가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태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쪽으로만 흐르는 커뮤니케이션은 효율성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은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이다. 커뮤니케이션이 갖고 있는 불완전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좋은 커뮤니케이션의 충분조건까지 갖춰지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로 불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은 의도와 무관하게 의외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으며, 위에 언급한 2002년 월드컵 4강의 사례처럼 예기치 못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