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확실성은 바닥을 쳤고, 선택의 자유는 최고치에 다다랐습니다."(유발 하라리)
코로나로 인해 세계가 멈춰 섰지만 유일하게 멈추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용트림 치는 것이 있다. 바로 온라인을 숙주로 팽창하고 있는 데이터다. 온라인 데이터의 생산은 오프라인과 무관하다. 아니, 오프라인을 걸어 잠그면 잠글수록 데이터는 온라인 세상에서 더욱 팽창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이라는 실체가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겠지만, 이미 세상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사람과 사람이 대면해서 생산하는 오프라인 데이터보다 의도를 숨길 수 있는 온라인의 데이터가 더 진실에 수렴한다는 사실을 '구글 트렌드' 분석을 통해 증명했다. 구글이 검색엔진으로 쓰레기의 바다, 인터넷에서 대어를 건져 올렸지만, 그건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이전까지만 유효했다. 대중들은 이제 데이터를 검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이유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데이터를 생산하는 행위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앞에 화두로 던졌던 유발 하라리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자. 오프라인의 규칙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규칙은 여전히 오프라인의 규칙 안에 묶여 있다. 스마트폰은 개인에게 정보 권력을 쥐어준 판도라의 상자다. 정보 권력을 손에 쥔 개인은 더 이상 그 누구의 관리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쥐고 있는 손을 펼지, 아니면 계속 쥐고 있을지는 증명도, 확신도 불가능한 영역이다. 전지전능한 개인의 등장으로 인해 확실성은 확실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일신우일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중이다.
오래된 규칙을 의심하자
새로운 규칙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먼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오래된 규칙들은 의심해야 한다. 중세의 경제적 토대는 18세기 산업혁명과 부르주아혁명으로 무너졌지만, 신을 앞세운 중세의 단단한 규칙들은 19세기까지 구질구질하게 이어졌다. 니체가 1882년 ‘즐거운 지식’에서 신의 죽음을 선언하지 않았다면 근대로의 이행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그리고 2020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던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록다운에 돌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토드 로즈의 말처럼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과거의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규칙은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뉴 노멀'이 아닐지도 모른다. 뉴 노멀은 새로운 규칙과 기준으로 이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규칙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과 기준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노멀의 다음 단계는 뉴 노멀이 아니라 '포스트 노멀'이다. 포스트 노멀을 이야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오래된 규칙을 진단하고 의심해야 한다.
동전의 양면을 살피자
기대와 우려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공존한다. 경제의 파이는 시장의 자유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지만, 어쩔 수없이 양극화를 초래한다. 파이의 분배는 국가의 몫이지만, 분배의 평등은 자칫 시장을 경직시킬 수 있다. 자유와 평등은 충분히 서로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대와 우려의 한 쪽 면만을 살피는데 익숙한 우리의 편견은 늘 둘 사이를 투쟁 관계로 인식한다. 인류는 매우 오랫동안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실험을 해 왔으며, 만약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효과적으로 융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가 세계를 멈춰 세웠지만,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세계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다. 코로나가 마침내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는 인류의 질주를 멈춰 세운 것이다. 불확실성의 저편에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알파고가 인간 바둑 최고수, 이세돌을 물리쳤을 때도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에 대해 우려했지만, 다른 누군가는 비로소 인류가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진단과 의심에 이어 필요한 것은 포스트 노멀이 가져다 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편견없이 살피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불확실한 세계를 개척하자
데이터의 내용이 농경시대처럼 반복되거나, 정보혁명 이전처럼 일정 양에서 머물러 있을 때는 주어진 보기에서 답을 찾으면 된다. 그러나 지금은 데이터가 우주처럼 팽창하고 있는 데이터 빅뱅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조사기관 IDC는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연간 디지털 데이터가 2025년에는 163조기가바이트(GB)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음악파일로 따지면, 281조5천억곡의 음악을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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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주어진 보기 안에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로운 답이 매일매일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이끌어내기 위해 산파술을 썼던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뻔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고대 그리스는 자연과학의 발달로 이미 정해져 있는 다양한 진리를 앞 다퉈 '발굴'하던 시대였다. '피타고라스'는 소리의 진동비를 계산해 음계를 발굴했다.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는 '히에론2'세의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부력을 발굴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발굴했다.
정보 빅뱅의 시대, 어제의 답은 오늘의 답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답도 내일 당장 부정당할 수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의 저자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곤란에 빠지는 이유는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근대 인류는 확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데에만 익숙해졌다. 기업의 경영 이론 또한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경험 데이터 안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다만 예측이 불가능한 데이터의 팽창으로 인해 그 답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인류가 포스트 노멀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선 확신에 찬 답이 아니라 질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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